국회의원님들은 못말려!

잡기 능해야 민심도 잡지! 국회의원들의 숨은 끼·숨은 재능 엿보기

"머리에 뿔 달린 사람들 아니야?"

정치인을 놓고 흔히 하는 말이다. 실제 숨 쉬는 것 빼놓고는 밥 먹고 술 마시는 등 모든 행위가 ‘정치’라는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나와 회의에 참석하고 국회에선 목청을 돋우는가 하면, 지역행사에 참석하느라 늘 피곤한 인생이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것은 국민의 따가운 시선뿐이다. 이런 이들에게도 평범한 삶은 있다.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바둑 두는 ‘보통 사람’의 모습 말이다.

정치인의 취미와 장기, 잡기를 취재해보니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과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단연 다방면에 소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 의원은 본인 말대로 “사형선고 받았다가 살아나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여겨선지 욕심없이 자유인처럼 사는 편이다. 그는 사석에서 “정치는 모범생도 하지만 우리 같은 잡기쟁이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진 의원은 “정치야말로 종합예술이 아니냐”며 “정치 외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있어야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크게 보는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치 외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 않은 재능과 기를 뽐내는 정치인의 모습을 살펴봤다.

■ 골프

골프 하면 열린우리당에선 신학용·김종률 의원이 단연 1~2인자로 꼽힌다. 둘 다 싱글 핸디캐퍼다. 해병대 출신인 신 의원은 원래 운동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가 지난해 국감에서 “정부가 ‘골프 공화국’ 건설에 나선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했을 때, 지인들은 “바른말이지만 골프 잘 치는 사람이 그런 말 하니 왠지 좀…”이라고 했다.

평균 드라이빙 거리가 300야드에 달할 정도의 장타자는 왕년의 김원기 국회의장과 자민련 김학원 대표가 손꼽힌다. 김학원 대표는 골프에 입문할 당시, 추운 겨울에 난로에 손 녹여가며 연습하고 이론서를 수십 권 독파해 입문한 지 10개월 만에 싱글 핸디에 올랐다고 한다.

선배에게 깍듯하기로 소문난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골프장에만 가면 왕따를 당한다. 늦게 골프에 입문하고도 운동 감각이 좋아 싱글에 빨리 올라서다. ‘훈수 한번 둬볼까’ 하던 선배 의원은 그의 실력에 배 아파한다는 후문이다. 임 의원은 족구와 축구도 잘해 “(학생 운동권 출신이 아니라) 진짜 운동권 출신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한다.

골프에 관한 한 실력보다 기(氣)싸움에 강한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의 스토리가 빠지지 않는다. 유 의원은 공이 그린 위 홀컵 가까이에 놓여도 웬만해선 절대 오케이를 주지 않는다. “성격은 안그런 양반이 필드에만 나가면 원칙주의자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거울 보고 수건으로 스윙 연습을 했다는 노무현 대통령도 골프 입문 초기에 “내가 89타 쳤어. 그것도 유인태 (정무)수석이랑 쳐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 의원과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평소 친분이 두텁지만 승부욕이 강해 골프장에서만큼은 자기가 맞다며 으르렁거린다고 한다.

한나라당 쪽에선 강재섭, 이방호, 고흥길 의원 등이 80타 초반을 친다고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부분 웬만큼 잘 치고, 골프 실력은 선수(選數)에 비례한다고 한다.

■무예

태권도 3단인 열린우리당 박기춘 의원은 지역에서 ‘태권도 대부’로 통한다. 중·고교 시절 유도부와 배구부에서 체력을 단련했다. 지역구 태권도장 관장들은 대부분 그의 태권도 후배들이다. 지역의 태권도협회 회장도 맡았다. 박 의원은 “속셈학원, 유치원 등을 겸한 태권도장을 통해 소외된 계층의 학부모들을 자주 만난다”며 “좋아하는 일을 통해 지역 민심도 듣고 표로도 연결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무소속 정진석 의원은 태권도, 유도, 합기도를 다 합하면 10단은 훌쩍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가 경찰기자 시절, 시위현장 취재를 막는 전경들과 맞붙어 몇 명을 때려눕혔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자민련 김학원 대표는 합기도 3단이다. 또 서울대 법대 시절, 교내 체육대회에 나가 100m, 400m 계주, 넓이뛰기, 씨름 분야에서 4관왕에 올랐다. 100m를 11.0초에 주파한 실력이다.

서울대 역도부 주장 출신인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지금도 150㎏이 넘는 역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학생운동하면서 좌절과 방황을 겪었으나 역도를 하면서 심신을 단련했다”고 써놓았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요즘 다이어트를 겸해 하루 30분~1시간씩 지역 체육관에서 권투를 배우고 있다. 그가 서울 종로 ‘황학정’이란 국궁장에서 익힌 국궁 실력도 만만치 않다. 그는 “활시위 당길 때의 마음가짐으로 살면 정신건강에 참 좋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서재관 의원도 검도 2단의 검객이고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검도 수련을 해왔다.

■마라톤·축구 등

마라톤 풀코스를 몇 번씩 완주한 매니아도 있다.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최재성 의원, 한나라당의 원희룡·홍문표·권철현 의원 등이다.

최재성 의원은 1991년 처음으로 5㎞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뒤 공식적으로 다섯 번 풀 코스를 완주했고 하프 코스는 수십 번 뛰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프리챌의 ‘챌린저 마라톤’ 클럽도 그의 작품이다. 최 의원은 “운동은 잘하는데 원 정치를 잘해야지…”라면서도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마음 다지기엔 마라톤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축구는 별도의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즐기는 의원도 많다. 열린우리당 장영달·정봉주·한병도·오영식·유시민·최성·임종석 의원과 한나라당 권오을·유정복 의원 등이다. ‘국회의원 축구연맹’ 회장인 장영달 의원은 전주고 1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는 “정치와 축구는 닮은 점이 많다”며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세비를 털어서라도 의원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싶다”고 할 만큼 소문난 ‘자전거 전도사’다. 강남 개포동 집에서 여의도 국회 사이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발언권만 주어지면 자전거 예찬론을 편다. 올해 초 의원총회 자리에서 “자전거 타기를 당론으로 정하자”고 했다가 일부에서 “뜬금없이 무슨 자전거?”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도 자전거 순례를 한 지 햇수로 10년이 됐다. 새벽 5시 시작하는 자전거 타기는 선거 때면 지역구 순찰용 교통수단으로 바뀐다.

이밖에도 열린우리당 김낙순 의원은 전국소년체전 때 복싱 금메달을 수상한 이색경력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을 필두로 같은 당 진영 의원과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인라인스케이트 매니아다.

서울스쿼시연맹의 회장직을 7년간 맡았던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은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당시, 사람만 만나면 스쿼시 라켓을 선물했다. 우 의원은 “소속 상임위가 법사위라 좀체 짬을 못내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격렬한 스쿼시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해군 출신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수영 솜씨가 수준급이고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있다.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국회에서 달리는 조깅파다. 중학교 시절 배구선수였던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는 지금도 족구와 볼링은 30대 젊은이보다 잘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전날 과음했어도 이튿날 40분씩 수영으로 몸을 다진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아침에 두 팔을 위로 뻗은 채 앉았다가 일어서는 체조를 하루 100회씩 하며 건강을 챙긴다. 고문 후유증으로 격렬한 운동은 못한다고 한다. 국회 의원회관 헬스클럽에 가면 늘 노란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헬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다.

■등산·단전호흡·요가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은 1999년 히말라야 K2(8611m)봉을 등반했었다. 그는 “지리산, 백운산이 가까운 섬진강 부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산을 이웃집 다니듯 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의원 10여명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 트래킹을 다녀온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도 등산을 좋아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산을 넘어 통학했다는 그는 “은퇴하면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일하면서 등산이나 하겠다”고 말한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도 한 달에 두세 번 이상 꼭 청계산을 오른다고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매일 아침 단전호흡을 하고,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요가, 명상, 풍욕으로 건강을 챙긴다.

■외국어

1994년 3월 영국 다우닝 10번가에 자리한 영국 수상 관저. 당시 영국을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과 존 메이저 영국 총리의 회담 자리였다. 회의 도중 메이저 총리가 쪽지를 써돌렸고 배석한 주한 영국대사가 다시 써 쪽지를 돌렸다. 첫 번째 쪽지는 “저 사람 누구냐. 우리 장관보다 영어 실력이 좋다”였고 두 번째 쪽지 내용은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대통령 공보비서관 박진”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청와대 해외공보비서관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유학, 뉴욕주 변호사 등 경력도 화려하다. 박 의원은 “영국서 7년간 공부하기도 했지만 뉴캐슬대학서 3년간 영어로 가르칠 때 실력이 좀 늘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일어 스페인어에도 조예가 있는 그는 요즘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의 사무실에 가면 각종 사전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북아 지역의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며 다시 이 대학 일문과 3학년에 편입했다.

프랑스에 잠시 유학했던 박근혜 대표는 영어 외에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잘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뉴질랜드인 인턴에게서 영어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노래

“나에겐 연예인의 피가 흐른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말이다. 그는 요즘 2집 앨범 작업 때문에 바쁘다. 8월 말 작업을 마치고 9월 말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가 처음 낸 앨범은 ‘정두언과 함께 떠나는 추억의 팝송 여행’(2003년). 정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 이임식 때 서울시 직원 1만5000명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궁리하다가 만들게 됐다”고 한다. 앨범은 1만3000개나 팔렸고 수익금은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썼다. 그는 연예인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소속으로 돼 있어, 가수나 다름없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때는 물론 동료 의원들의 후원회 행사에 단골 초대가수로 불려다니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경희대 재학 시절, 그룹 사운드 보컬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가 “그런 것 하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놓겠다”고 해서 그만뒀다고 한다. 지금도 박 의원은 노래방에 가면 “내가 사~알아가는 동안에~” 하면서 성악가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는 편이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도 한 곡조 뽑아내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1981년 미국 뉴욕 초대 한인경제인협회장을 맡고 있을 때 도움을 준 가수 태진아의 양아버지로, 술 몇 잔 걸치면 ‘옥경이’ 등 태진아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상록수’나 ‘아침이슬’ 같은 운동권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지난해 청와대 만찬자리에선 조용필의 ‘허공’과 ‘부산갈매기’를 무반주로 독창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 4월 남산에서 트리오 ‘거북이’의 ‘빙고’를 불렀다. 솔리드의 ‘천생연분’도 즐겨 부른다는 그는 “노랫말이 경쾌하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악기 연주

지난 5월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이화여고에 일일교사로 초청받아갔다. 이곳은 30여년 전 경기고에 재학 중이던 그가 첼로를 연주했던 장소다. 노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적 음악가가 되려고 수년간 공부했다”며 “부모님이 공부보다는 문학이나 예술을 잘하는 걸 높이 평가해 배웠고 유명한 분들이 공짜로 가르쳐줬다”고 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서울대 74학번 때 ‘뱀파이어’라는 교내 밴드부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전국대학생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나가 1등도 하고, 한 TV 프로그램의 전속 밴드로 6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지금도 흥이 나면 밴드에게 기타를 빌려달라고 해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반주와 함께 근사하게 불러댄다. 밴드가 없을 때는 김흥국의 ‘59년 왕십리’가 십팔번이다.

시민단체 출신인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은 피아노를 잘 치고,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단소 연주를 잘하고 민요의 대가라고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동영상 파일을 개인 홈피에 올려놓기도 한다.

춤에 관해선 무용과 교수 출신인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이 단연 으뜸이다. 지난해 11월 열린우리당의 ‘우리 여성 리더십센터’ 창립기념식 때엔 여성 의원 10여명에게 직접 무용 안무를 가르쳐 특별 공연도 마련했다. 강 의원은 지난 4월 전당대회 때도 ‘선진한국을 향한 희망의 기적 소리’를 주제로 한 창작무용 공연을 펼쳤었다.

춤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뒤풀이’ 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곱사춤을 추며 좌중을 압도한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 1990년대 중반 여의도의 한 카페에 갔던 지인은 “양복 윗도리를 벗고 와이셔츠 뒤쪽으로 바가지를 밀어넣더니 구성진 각설이 타령을 했다”며 “한 손엔 숟가락, 다른 한 손엔 바가지를 들고 춤을 췄다”고도 했다.

■술

소주나 양주와 맥주를 섞어 도수를 높인 폭탄주는 우리 정치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요즘도 정치인들이 모여 의기투합할 때나 여야 대표가 “정쟁 말고 잘해보자”며 러브샷을 마실 때면 폭탄주가 빠지지 않는다.

지난 5월 말 열린우리당은 당 의원과 중앙위원 30여명이 덕유산 설천봉 정상에서 ‘국민 통합을 염원하는 팔도 합주제’를 열었다. 지방의 대표주자인 술 13가지를 공수해 폭탄주를 제조한 뒤 ‘열린우리주’라고 이름지었다.

다선(多選)의원이 많은 한나라당에 애주가들이 특히 많다. 자칭 정계에 폭탄주를 퍼뜨린 ‘폭탄도인(道人)’이라 하는 박희태 국회부의장의 주량은 한때 폭탄주 30잔 정도였다고 한다.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내로라 하는 폭탄주 강적이다. 강 원내대표는 술자리에서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하게 음담패설을 잘해 흥을 돋운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폭탄주를 10잔쯤 마신 뒤 “자~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한다고 하고, 같은 당 한선교 의원은 폭탄주를 여러 잔 한꺼번에 만들어 일괄적으로 돌린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는 폭탄주의 뇌관인 양주는 물론 맥주까지도 잔이 찰랑거릴 만큼 가득 채우는 ‘텐텐(10-10)주’를 즐긴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은 양주잔에 맥주,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 부어 마시는 ‘수소폭탄주’와 네 잔을 연이어 마시는 ‘포크레인주’로 이름나 있다.

같은 당 김혁규 의원과 술자리를 하면 양주나 소주를 섞어 맥주잔에 가득 따른 뒤 참석자들이 한 모금씩 마시면서 잔을 비우는 ‘화합주’를 마시게 된다. 세 명이 한 조가 되는데 마지막 순서에 걸린 사람이 남은 양을 다 마셔야 한다. 같은 당 양형일 의원은 양주와 고량주, 맥주를 섞은 ‘삼합주’를 즐긴다고 한다.

당별로 술 마시는 스타일엔 차이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들은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양주 폭탄주)보다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소주 폭탄주)을 즐긴다. 한 386 의원은 “무슨 척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렇게 버릇을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노당 의원들은 소주 폭탄주를 사발에 넣어 마신다고 한다. 민노당에선 단병호 의원과 권영길 의원이 말술로 알려져 있다.

여성 의원 중엔 한나라당의 나경원·송영선 의원과 열린우리당의 김선미·김현미 의원이 폭탄주를 서너 잔씩 마시는 걸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직접 폭탄주를 제조하고 마신 적도 있지만 대개 사양하고 ‘흑기사’(옆에서 대신 마셔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편이다.

■서예·다도·바둑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은 최근 “서예 교육을 독립 교과로 하자”는 청원서를 내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 그는 1997년 대한민국 서예전에 출품을 시작, 2002년 대상까지 받은 서예가다. 곽 의원은 “기자 시절에 회사 서도회(書道會)에서 처음 붓을 들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도 한·중·일 서예전에 작품을 내는 등 초대작가로서 1년에 대여섯 번씩 작품을 내고 있다.

얼마 전 ‘맥주병 투척’ 논란을 빚은 그는 “서예야말로 선비들이 지켜야할 덕목이고 나도 그런 대로 괜찮은 놈인데 깡패가 됐다”며 머쓱해했다. 그는 지역구 내 결혼하는 커플에게 가훈도 써주고, 경로당에서 무료 서예 강습을 하는 걸로 선거 운동을 대신한다.

지난 3월 김종빈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서 사자조어 형식을 빌려 역대 검찰총장을 평가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한시(漢詩)에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당내 극단 ‘여의도’의 멤버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초등학교 시절, 탤런트 서인석씨에게서 연기지도를 따로 받을 만큼 연기에 소질을 보였다. 같은 당 이재오 의원은 재야운동을 하던 때 ‘이민’이란 예명으로 연극 생활을 했었다. 이 의원은 당내 극단 ‘여의도’를 만들면서 “정치 같은 딱딱한 권력보다 문화예술 같은 부드러운 권력이 국민 가슴속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었다.

차(茶) 애호가도 있다.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의원실 한편에 멍석과 다기상을 놓았다. 그는 “차 마시며 명상을 하는 게 내 스타일의 놀이문화인데, 국회 들어온 뒤 좀 어려워졌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도 다기상으로 손님을 맞는다.

“예전엔 의원회관 맞은편 다방에 모여 바둑도 잘 뒀었는데 이젠 원 살벌해져서….” 자민련 김학원 대표는 바둑 아마 4~5단 수준이다. 그와 호선으로 종종 맞대결하는 이는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다. 김 대표는 “한·일 의원교류 바둑대회도 열고, 바둑 두면서 정치나 인생사를 논했었다”며 “17대 국회 들어서면서는 가끔 집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는 정도”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선 임채정·유인태·원혜영 의원이 곧잘 모여 바둑을 두는 편이다. 이 밖에 당구 400 수준이라는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는 포커, 고스톱 등 잡기에 능하다고 소문나 있다.

신기남 의원 재산 1호는 300개가 넘는 각국 머그컵

유인태 의원 별명 ‘잠신’, 임종인 의원은 ‘마이크맨’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의 재산목록 1호는 머그컵이다. 해외여행 때 하나둘씩 사모은 것이 300개를 넘었다. 신 의원은 ‘은빛 날개 비행기는 슬피우는 백조인가’라는 저서에서 “도시의 주요 명소가 새겨진 머그컵은 그 도시의 축소판”이라며 “잊었던 도시 풍광이 되살아나 시간날 때마다 커피와 맥주를 부어 마신다”고 했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야구 박사’로 통한다. 직접 야구경기를 하진 않지만 과거 고교 야구의 전성기 기록에 대해 입을 열면 그칠 줄 모른다. 취미도 야구경기 관람. 그는 “부산고 재학시절 야구 응원부장을 맡았었다”며 “17대 국회에 등원한 뒤 고교 야구경기는 서너 번밖에 못 봤다”고 말했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매일 아침 찬물과 뜨거운 물에 1분에 9번 이상 오가는 냉·온욕을 하며 건강을 다진다. 농사꾼 출신인 그는 콜라, 커피, 양담배 세 가지를 ‘식량 침탈 3총사’라면서 발효식품과 싱싱한 채소 섭취를 늘 강조한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최근 ‘돌고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돌고래처럼 청정음식을 주로 먹고 권투 같은 운동을 곁들이는 방법이다. 지난 6주 사이에 몸무게를 12㎏이나 줄였고, 폭탄주를 소탕하기 위한 클럽이란 뜻의 일명 ‘폭소클럽’도 만들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각종 회의나 공식석상에서 눈 감고 조는 탓에 ‘잠신’이란 별명이 붙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아들이 사형판결을 받던 재판정에서 유 의원의 어머니가 졸았다고 하니 모전자전(母傳子傳)이라던가, 정말 믿거나 말거나다. 그러나 본인은 “눈 감고 들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졸다가도 정작 회의 맥락을 짚어낸 뼈있는 말을 던지곤 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곤 한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개원 초기부터 의총장 등 회의 석상에서 하도 마이크를 잡고 말을 많이 해 ‘마이크맨’이란 애칭이 붙었다. 그는 “모 의원님이 (마이크 잡는 걸) 좀 참으라고 했는데 오늘은 꼭 말 좀 해야겠다”며 또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17대 국회 개원 초기에 당선자 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민노당 현애자 의원은 민중가요 듣기,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정원 가꾸기,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주역 풀이,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은 윈도 쇼핑이 취미라고 답했다.

(조선일보 2005-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