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에 사는 희한한 '맨홀족'

인간이면 누구나 예외가 아니겠지만 몽골 유목민에겐 유별난 특성들이 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유목민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단서가 될수도 있을 듯하다.

하나는 지독한 생존본능이다. 그것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의 맨홀족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말 그대로 하수구가 지나는 맨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애니메이션 <닌자 거북이>에 나오는 지하생활자들이다. 물론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볼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규모로나, 살아가는 방식으로나 몽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한다.

맨홀은 시골에서는 벌어먹을 길이 없어 울란바타르로 몰려든 사람들 중(공식적으로는 인구 250만명의 33%, 비공식적으로는 50%의 몽골 사람들이 울란바타르에 몰려산다) 일부가 찾아낸 삶의 공간이다. 몽골정부나 경찰, 심지어 일반 사람들까지 그들의 존재를 밝히길 꺼리지만, 맨홀족의 삶도 엄연한 생존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겨울에서 추위를, 여름에는 더위를 막아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신기하게만 볼일은 아니다. 맨홀을 지날때 한눈을 팔다간 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맨홀족들이 거리로 나오기 위해 열어둔 뚜껑이 화근이다. 이번 몽골 여행에서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했다. 몽골기술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친구의 딸이었다. 올해로 열 일곱 살이 된 예쁜 아이인데, 수술실을 찾아갔을 때 그 아이는 얼굴에 커다란 수술자국을 달고 있었다. 며칠전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뚜껑이 열린 맨홀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몽골인들의 또하나의 특성은 속도숭배이다. 말뿐 아니라 자동차를 봐도 알 수 있다. 몽골인들은 운전석에 앉았다하면 본인도 모르게 질주본능이 끌어오르는 모양이다. 어느 누구도 앞서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려는 듯 액셀러레이터를 부서져라 밟아댄다. 이렇게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달리다보면 초원에 100차선의 길이 생기기도 한다. 그들은 비좁은 아스팔트 도로의 앞에서 차가 돌진해와도 거의 부딪칠 때까지 비키지 않는다. 초행의 사람들로선 놀래자빠질 일이다.

딱히 과속 때문이 아니더라도 몽골은 생각보다 자동차 사고율이 높은 나라이다. 이번 여행 때 접한 두번째 우울한 소식이 자동차 사고였다. 울란바타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여자 친구가 방학을 틈타 잠깐 들른 모국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시골을 여행하는 길이었다고 하는데, 볼강(울란바타르에서 북쪽으로 300Km 떨어진 도시)에 가는 길에 달리던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차가 여러번 뒹굴었다고 한다. 누워있는 모습이 처참했다.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고, 폐도 많이 다쳤다. 특히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서 며칠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넓은 초원을 달리는 자동차가 꽤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자동차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도로의 상태가 나쁘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들어온 중고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폐차의 지경에 이른 이 자동차들과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한두번의 고장을 꼭 감안해야 한다. 특히 위험한 것이 타이어 펑크로, 아스팔트 길을 달릴 때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낡은 아스팔트 길은 그래서 비포장의 초원 길보다 더 느리고 위험하다.

언제나 위험에 노출돼 있는 몽골의 자동차와 아스팔트 길, 그것도 맨홀 뚜껑이 열린 아스팔트 길... 그러니 몽골을 여행할 때는 꼭 기억해야 한다. “조흥 오땅 야와레”.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좋고, 조금 더 늦게 목적지에 도착해도 좋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절대로 안된다. 그러니 조금만 천천히 가자. “조흥(좀) 오땅(천천히) 야와레(가주세요)”

(조선일보 2005-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