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제국 가야 실체 밝힌다…KBS1 오늘 역사스페셜 통해 유적등 재해석

수수께끼의 고대 왕국 가야. 삼국 열강의 그늘에 가린 탓에 좀처럼 가야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보기 힘들다. 전해지는 흐릿한 비문과 왜곡된 역사서만이 500년간 남도 자락을 각인시키던 고대 제국의 옛 영화를 담고 있을 뿐이다. 가야는 대체 어떤 국가였을까.

KBS 1TV ‘HD 역사스페셜’은 베일에 가려진 옛 국가, 가야의 그 실체를 밝혀보기 위한 ‘제4의 제국 대가야-백두대간을 넘다’편을 19일 오후 10시에 방영한다.

프로그램은 먼저 남도지역에 산재한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당시 가야가 보인 막강한 영향력을 더듬어 간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서쪽에 대해 우리는 흔히 백제의 영토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남서부를 호령하던 백제땅 일부에서 가야의 역사가 점차 발견되고 있는 것. 전북 남원군 월산리와 두락리, 장수군 삼봉리 등 호남 동부지역에 자리잡은 주요 교통 요충지에서 가야의 대형 고분들이 집중 발굴되고 있다.

무덤뿐만이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주요 공략지이던 섬진강 유역에는 최근 40여개의 봉수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전북 진안군, 장수군, 남원군 일대에서 발견된 이 봉수대는 모두 백두대간 서부를 넘보던 가야 영토와 동일하다. 백제와 가야가 섬진강 유역을 놓고 벌인 분쟁의 흔적인지, 일본과의 교역루트로 사용하기 위한 통신도구였는지 이들 봉수대가 얽힌 당대의 비밀을 파헤친다.

프로그램은 또 독자적인 해외 공략에 나선 가야의 흔적도 살핀다. 전북 부안군 죽막동, 경북 고령군 지산동 등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당시 대가야가 주변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증명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던 야광국자가 당시 가야 영토에서 출토되는 등 가야는 일찍이 해외문물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또 중국 제나라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가야가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가야가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과 일본에 손을 뻗어서 얻으려했던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알아본다.

(파이낸셜뉴스 / 장승철 기자 2005-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