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에서 고구려 가마터 추정 유물 발견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 현장 설명회

▲ 현장설명하고 있는 최종택 교수
ⓒ2005 김영조
지난 8월 15일은 우리 겨레가 광복을 맞은 지 60돌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여전한 상황에서 고구려 유물의 발굴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지원 아래 아차산과 그 부근의 발굴이 한창 진행돼 왔다.

그 과정의 하나로 16일 오전 11시에는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중인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가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산 10-1번지 발굴 장소에서 열렸다.

홍련봉 2보루는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터로 되어 있으며,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일원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 토기가 수습되어 고구려 보루로 보고되었다.

▲ 토기 가마터로 짐작되는 유적
ⓒ2005 김영조
이후 아차산 4보루와 시루봉보루, 홍련봉 1보루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특히 아차산 일원 보루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와와 연화문와당이 출토되었던 홍련봉 1보루와 인접한 홍련봉 2보루는 구조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되어 이 보루의 성격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이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발굴 조사는 2005년 4월 27일부터 8월 19일까지의 114일간의 일정으로 실시되었는데 조사 단장은 이홍종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 소장이며, 책임조사원은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이다.

보루(堡壘)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을 말한다. 발굴조사에 착수하기 전 유적은 봉우리 정상부에 펼쳐진 비교적 평탄한 타원형의 지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아카시아와 도토리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잡목을 제거하자 남동-북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의 윤곽이 드러났다.

▲ 토기 구형호
ⓒ2005 김영조
"보루의 전체 둘레는 190m로 추정되며, 인접한 홍련봉1보루에 비해 약간 큽니다. 보루 내부는 북쪽의 평탄한 고대지와 남쪽 함몰부로 구분되어 있으며, 조사 전 평탄지 외곽을 돌아가며 약 2m 정도 두께의 석축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조사는 조사예산과 기간 등의 이유로 보루 전체를 조사할 수 없어서 북쪽의 고대지는 일부만 빼고 전체조사를 했으며, 남쪽의 꺼진 부분은 구조물을 설치하여 성격만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설명에 나선 최종택 교수의 이야기이다. 최 교수는 계속해서 발굴조사 결과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의 설명 중 인상에 남은 부분은 토기 가마로 짐작되는 유적과 이 보루를 쌓은 연대를 짐작할 단서를 찾았다는 말이다.

"불에 그을린 소토가 넓게 깔려 있고, 숯이 부분적으로 확인되며, 길이는 약 13m, 폭은 약 1m 정도입니다. 또 소토층 사이에 토기편이 박혀 있으며, 바닥면은 점토를 바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유구 내부를 조사 중인데, 유적에서 2번 구운 토기조각과 점토덩어리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이 보루에 토기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잠정적으로 이 유구를 토기가마터로 추정하려고 합니다."

▲ '官瓮(관옹)'명 토기 조각
ⓒ2005 김영조
▲ '庚子(경자)'명 토기 조각 / 연대를 측정할 중요한 단서
ⓒ2005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
"글씨가 새겨진 토기가 3점 확인되었습니다. 그 중 굽기 전에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官瓮(관옹)'이란 글씨를 새긴 것은 '관에서 만든 항아리'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또 '庚子(경자)'로 읽히는 접시의 글씨는 만든 뒤 사용 중에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庚子'라는 글씨의 뜻은 '경자년'으로 판단되는데 역사적 정황에 비추어 볼 때 520년에 해당된다고 생각됩니다. 이 연대는 그동안 아차산 일대 고구려 보루의 연대를 500년에서 551년 사이로 추정한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보입니다."

▲ 집수정
ⓒ2005 김영조
최 교수는 이 보루에서 토기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철기가 출토되고, 가마터로 보이는 구조물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군대 물자를 만들거나 보관, 보급하는 일종의 군수시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의 확인을 위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내비쳤다.

그 외에 집수정, 배수시설, 온돌, 출입시설 등의 형태가 확인되었다고 했으며, 계속해서 발굴과 연구를 집중하여 미진한 부분을 확인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 발표 끝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노태돈 교수는 "이 발굴조사에서 '경자'가 새겨진 토기 조각이 나온 것은 홍련봉 보루의 연대를 짐작할 단서로 보이며, 이는 발굴조사의 큰 수확으로 생각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숭실대학교 사학과 최병현 교수는 "발굴조사단이 토기 가마터로 추정하고 있는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는 어쩌면 가마터가 아닐 수도 있다. 이 구조물에 대해 좀 더 섬세한 발굴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기자에게 '庚子'(경자)'명 토기 조각 설명하는 최종택 교수(오른쪽)
ⓒ2005 김영조
이 발굴조사의 책임조사원인 최종택 교수는 발굴조사를 하면서 내심 한 가지 것에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이 발굴조사가 끝나고 문화재청에 보고하고 나면 사적 보수하듯 시민들에겐 잊혀버린 유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발굴조사가 끝나기 전 이 유적의 보존과 활용대책을 다룬 종합적인 청사진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남한에서는 고구려 유적의 수학여행을 아차산성으로 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 이러한 유적 발굴은 큰 의미가 있을 터이다. 최 교수의 말처럼 아차산 유적은 발굴로서 끝낼 것이 아니라 여기에 박물관 등 시설을 갖춰 남한에서 고구려 유적을 공부하고 새길 수 있는 터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홍련봉2보루 유구배치 그림
ⓒ2005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

▲ 아차산일원 고구려보루 배치도
ⓒ2005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

(오마이뉴스 / 김영조 기자 2005-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