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독립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광복 60주년.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역사의 문턱에 서 있다. 지난 60년간 우리는 식민지잔재 청산, 동족상잔과 분단, 독재, 가난 등 원치 않은 문제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이런 시련 가운데서도 눈부신 경제성장이 있었고 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 열강 속에서 아직도 ‘진정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는 과거사 문제 갈등에서 끌려가는 양상을 보이고, 미국에는 북핵문제 때문에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자주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전문가들이 말하는 국제적 리더십을 갖춘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광복 시계’는 60년 전 1945년 8월 15일부터 시작된다. 광복의 달력은 한 갑자(甲子)만큼 넘어갔다. 광복 60주년이다. 이젠 새로운 갑자가 시작된다. 환갑을 맞은 독립된 대한민국은 새로운 역사 순환의 문턱에 서 있다. 부국강병의 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역사의 고리를 선순환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광복 이후의 60년은 반작용의 시기”

지난 60년 동안 우리 민족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서양 강대국의 지배질서에 도전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배로 한국은 독립을 맞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독립은 자주적이지 못했다. 당시 어느 나라의 독립도 자주적이지 못했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와 열강의 강권주의가 지배하던 세계질서와 역사적 환경 속에서 자주적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는 불행의 그늘이 여느 신생 독립국보다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다른 신생 독립국가에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이념대결, 동족상잔의 비극과 남북분단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작용과 반작용은 만물의 법칙이고 역사의 법칙이다.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은 광복 이후의 60년 역사를 ‘반작용의 시기’라고 규정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보다는 식민통치의 잔재, 남북 전쟁과 분단, 독재, 가난, 부정부패 등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상태를 창조하고 발전할 것인가 보다는 어떤 상태를 극복하고 피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했다는 얘기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치열한 사회적 갈등과 내홍이었다. 8·15 광복, 6·25전쟁, 4·19의거, 5·16쿠데타, 유신체제 발동, 10·26,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프랑스 혁명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잇달아 터졌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와 냉전적 이념대결이 한편으로 우리의 창조적 사고를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진하는 역사의 힘이 우리를 결코 과거에만 묶어두지는 못했다. 이런 가혹한 시련 속에서도 눈부신 전진은 있었다. 경제발전이 그것이다.

1953년 13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액(GDP)은 1972년 106억달러, 1986년 1076억달러, 2003년 6052억달러로 증가하여 세계 220개 국가 중에서 11위를 차지(한국은행 2003년 자료)했다. 1962년 5억달러에 불과했던 무역규모는 2003년에는 424배인 1788억달러 규모로 증가하는 등 괄목할 성장을 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부터 1995년까지 3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에서 세계 제1위인 7.1%를 기록했다.

경제규모에서 대한민국은 미국(1위)의 18분의 1, 일본(2위)의 7분의 1에 해당하지만,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러시아(GDP 4328억 달러)보다 크다.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규모는 170억 달러(한국은행 통계)로 대한민국 경제의 3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경제력이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변모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또 이 과정에서 ‘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세계에 한국의 존재와 한국인의 기상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주변국 환경 8·15해방 당시와 비슷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잠재력을 잘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안고 있는 숙명,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당당한 나라로 일어서는 숙제를 당장 해결하기에는 안팎의 여건이 불안정하다. 박성수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은 최근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단에서 개최한 ‘광복 60주년, 새로운 출발’ 제4차 포럼에서 “우리가 기뻐한 해방(Emancipation)을 60년이 지난 오늘 가만히 돌이켜 볼 때 이양(Remancipation)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양’이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적 상황과 환경이 광복 당시와 크게 바뀌지 않아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주변에서는 중국이 급부상하고 일본은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세계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역사 전쟁과 영토 분쟁, 민족주의와 군비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거기다가 6자회담이 재개됐지만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 안에서의 전쟁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처지다. 마치 한국이 일본 강점기에 들어갔던 100년 전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들이다.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위해 동맹국과 군사적 부담을 나누고 있다. 부시 미국 행정부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전략은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포위전략의 결과물이다. 특히, 중국의 패권도전에 일본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해 국제무대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은 그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다”면서 “탈냉전의 안보환경에서 새로운 국가전략을 모색하고 있던 일본은 ‘보통국가론’이라는 논리로 미국의 전략에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일동맹 재정비 과정의 기회를 이용해서 일본이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도모하고 이라크 파병처럼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을 공식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이미 ‘주변사태법’과 ‘유사법제’ 정비를 통해 일본 전역을 미군의 병참기지로 만들 수 있는 법적 조치를 마련한 상태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는 “일본의 전략변화 배경은 북한의 핵도발 위협과 일본의 장기불황”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역시 중화사상을 앞세워 역사왜곡을 노골화하면서 한반도 주변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동북공정 프로젝트, 고구려 역사의 변방화 등 공세를 취하고 있다. 강용진 국민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는 “중국 공세는 결국 북한을 중국 영향력 아래 놓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북한핵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중국의 팽창적 외교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새로운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국제권력 정치에서 대응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일본, 중국과의 갈등 과정에서 이들 국가에 끌려가는 양상을 보였다. 강용진 박사는 “북핵 문제 때문에 이런 저런 눈치를 봐야했고 그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과도 북한핵 문제와 주한미군 유동성의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국내적 상황도 낙관적 상태 아니다

그렇다고 국내적 상황이 낙관적이거나 원만한 상태도 아니다. 각종 사회 갈등이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IMF 체제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경제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빈부의 차이 확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심화,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의 불균형 확산 등 경제적 양극화는 결국 사회적 분화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강남과 비강남, 중앙과 지방, 일류대학과 지방대학,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사회갈등 요인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곽태운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는 “IMF체제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 편입하게 됐다”고 전제하고 “정부가 적절히 개입함으로써 사회 갈등과 불평등 요인들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곽태운 교수는 “그러나 민간 부문의 경제규모가 너무 커져서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처럼 개입한다고 해도 그만큼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의 정책효과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적절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선택하고 집행해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0년도 이전까지는 재정규모가 GDP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2003년도 재정총규모는 209조6천억원으로 GDP대비 29.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GDP는 무려 721조원(한국은행 자료)이다.

외세 세력다툼 속에서도 내적 갈등을 안고 있는 한국은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가 밝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한나라당)은 “실질적인 국제적 리더십을 갖춘,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거시적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봉호 총장은 “새로운 순환기에 들어선 만큼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성숙해져야 하고 따라서 지금보다 더 합리적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일본에 대한 반감은 일본 문화에 대한 비판적 취사선택으로,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미국을 이용하는 지혜로, 반공과 친공,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결은 상대주의와 관용정신으로 극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계화 시대에 어느 나라도 완전히 자주적으로 살 수 없다”면서 “진정한 자주는 상호이해와 협력을 통해 국가를 번영시키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대의 ‘독립운동’은 곧 공존공생, 공생공영 운동과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뉴스메이커 / 김경은 기자 2005-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