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중 고구려사 왜곡 막을 길은?

21세기는 평화공존의 세기이기를 희망하지만, 평화공존이라는 비단 보자기에 자민족 중심주의 팽배로 치닫는 예리한 칼날이 숨겨져 있다.

한국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행보가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최근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고 해외파병과 교전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일본의 극우집단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새로 편찬한 후소샤(扶桑社)판 역사·공민 교과서의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런 일본에 못지않게 중국은 2002년부터 동북프로젝트를 본격화하면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중국 영토 내의 모든 민족과 역사는 중국 민족이자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중국역사서를 통해서 외국 역사로 기술한 고구려사를 위시한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 둔갑시키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중국은 또한 동북프로젝트를 정리할 시점에 지금은 서북프로젝트도 시작하였다. 양 날개로 날아가겠다는 것이다.

동북프로젝트를 통해 이론화된 내용을 보급하는 경로가 교과서를 통한 국민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고구려가 중국으로 포함되는 왜곡된 역사지식이 교과서를 통해 중국 학생들에게 잘못 주입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교과서 못지않게 중국 교과서의 역사왜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일본의 교과서 개정 내용은 공개되기 때문에 사전 대처가 가능하지만, 중국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면서 개정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전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얼마 전에 교육부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뢰하여 중국 역사교과서 38종을 분석하여 중국의 역사왜곡 내용을 파악하였듯이, 이미 왜곡된 내용이 교과서로 출간된 다음에야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중국의 교과서 왜곡은 일본보다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교육부가 교과서 편찬의 유일한 근거인 ‘역사과정표준(지침)’을 통일적으로 내려 교과서를 편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교과서는 반드시 이 ‘지침’에 따라 내용을 기술하고 학습평가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침’에는 교과과정의 목표와 내용의 표준을 설정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할 내용과 방법을 담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과거의 역사 교과서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 발전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 교육과정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침’은 중화민족 문화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양하며 학생들의 애국주의를 격발시키는 것은 역사 교육에서 회피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지침’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중국 역사 교과서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 교육부가 통일적으로 내리는 ‘지침’을 분석해 왜곡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 중국 측과 사전 조율하고 협의해 나간다면 이미 출간된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중 양국의 우호관계를 해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신뢰를 쌓아 가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중국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적확하게 핵심을 파악하고 사전에 대처할 의지만 있다면 초가삼간을 태우면서 벼룩을 잡지 않아도 된다.

<박선영 / 포항공대 교수·중국근현대사>

(세계일보 2005-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