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분단시대 극복이 제2의 광복

광복 60주년의 8월이다. 폭염과 폭우의 계절인 8월은 해방과 국치의 날이 겹친다. 지난 60년이 민국 창업의 기간이라면 이제는 경장의 시대에 들어선다. 창업기에 분단과 6·25전쟁, 독재정치를 겪으면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과 동북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고려의 삼한통일 이래 1,000여년의 통일민족국가이던 나라가 식민지 해방과정에서 외세의 작용으로 둘로 쪼개지고 0.5체제의 분단시대 60년이 지났다.

-주변 열강 100년전과 비슷-

주변 4강의 역학관계는 10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29일은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 필리핀을 미국이 지배하는 밀약을 맺은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을사늑약은 이 밀약으로 미국의 양해를 받고 추진된 탓에 미국 눈치보기인지, 몰역사의식인지 그 흔해빠진 학술세미나 하나 없이 지나갔다. 우리 주변의 현실은 여전히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형국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 -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베이징 6자회담에서 보듯이 남북화해와 통일문제를 훼방하고 어깃장을 놓는 야욕.

중국 - 고구려·발해사를 자국 변방사로 왜곡하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드러난 역사침탈, 북한 붕괴시에 동북성의 하나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흑심.

미국 - 남한의 항구적 군사기지화 혹은 북한 붕괴시 무력지배에 대한 야심, 남북화해 협력보다 분단상태를 선호하는 비우호적인 우방.

러시아 - 세력의 약화에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국가, 최근 중국과 관계개선하면서 정중동의 활동.

미국 예일대학 폴 케네디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퇴거하는 대신 미국에 체첸사태의 묵인을 요청하는 거래설과 함께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문제의 밀약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2의 테프트·카츠라밀약과 같은 국제흥정의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창업기도 힘들고 벅찼지만 경장시대도 내외의 도전과 시련이 만만치 않다. 국제정치학자 중에는 ‘2020년 동북아체제’를 우려한다. 15년 후면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이 미국을 추격하고 미국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자 일본을 지원했던 것처럼 중국의 팽창을 봉쇄하려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부추긴다.

‘제국화’로 가는 4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민족은 어떻게 생존하고 대응할 것인가. 향후 15년 이내에 0.5체제를 극복하는 1단계 통합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영구분단 또는 분할지배를 노리는 열강들에 틈새를 보여줘서는 안된다.

-이시대 필요한건 통일운동-

경장기를 맞아 내부 정비가 시급하다. 불임정치, 비능률 행정을 바로잡고 권력기관들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완벽하게 단절시켜야 한다. 친일반역자를 포함한 과거사 정리를 통해 식민지·창업기때의 악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망국노의 아픔과 설움은 3대에 걸쳐 사무치고 매국노들의 위세와 재력은 자자손손 이어진다.

100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절박한 시기에 위정척사파와 사대개화파가 대립하면서 나라를 빼앗겼다. 60년 전 자주와 외세, 통일정부와 분단세력이 대립하면서 국토와 겨레가 두 동강이 났다. 헌법 전문은 통일을 국민의 과제로 선언하고 있다. 통일을 위해 지식인·언론인들의 냉전·사대의식의 지양이 시급하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처럼 0.5체제기에 필요한 시대정신은 통일운동이 아니겠는가.

국치와 해방의 달 8월에 독립전쟁에서 피흘린 선열들의 희생에 옷깃을 여미며 겸허하게 광복 60주년을 맞고, 당당하게 민족통합을 추진하고, 치밀하게 주변 열강에 대처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김삼웅 / 독립기념관장>

(경향신문 2005-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