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댁의 형제는 평안하십니까?

장기 이식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의 원 주인(스폰서)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영화 ‘아일랜드’는 단순한 SF 액션영화가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심리영화에 가깝다. 보트 디자이너 톰 링컨이 자신의 복제 인간인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 분)를 죽이려는 장면은 인간의 본능을 참혹하도록 리얼하게 보여준다.

자신을 복제한 분신도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형제간의 갈등과 분쟁은 숙명에 가깝다. 신(神)은 한 부모에게서 낳은 자식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거쳐 적자생존(適者生存)하도록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피를 나눈 사이인데도 때로는 남 보다 더 쉽게 분노하고, 맺힌 응어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부자일수록 역설적으로 형제간 상실감과 박탈감을 강하게 느낀다. 자기 재산의 절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른 형제와 비교한 상대적인 액수가 중요한 탓이다.

형제간 분쟁에서 자유로운 재벌가는 매우 드물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맏아들 이맹희씨는 지금껏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2000년 3월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인 정몽구, 정몽헌 형제간의 갈등은 동생의 돌연한 자살로 화해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끝났다. 한화그룹 김승연, 김호연 형제는 3년간 무려 31차례나 재산권 분쟁 재판을 받았고 롯데그룹, 대성그룹, 동아건설도 형제간 재산권 분쟁을 겪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동생이자 발군의 전문경영인이었던 조중건씨는 하와이로 쫓기듯 떠났다.

이번에 1700억원 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은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지만 피해의식과 소외감에 고통 받은 듯 싶다. 그의 장남 박경원씨가 두산의 울타리를 벗어나 창업한 벤처기업이 휘청거리자 아버지로서 모른 척 하기 어려웠다. 아들을 지원하느라 자신의 그룹 내 지분이 급속히 축소됐다. 모친을 모시고 사는 박 전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그룹 회장을 맡으며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점을 내세워 주력기업인 두산산업개발 을 일종의 위로금으로 요구했으나 형제들로부터 거절 당했다. 가뜩이나 심사가 복잡한데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일방적으로 회장직을 교체하자 울컥하는 마음에 ‘총’을 뽑은 것으로 보여진다. 박 전 회장은 지난해 상처까지 했으니 부인의 막후역할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일각에서는 형제 중 한 사람의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박 전 회장은 1남 6녀 중 셋째로 성장했다. 클리프 아이잭슨은 ‘출생의 심리학(The Birth Order Effect)’이라는 흥미로운 저서에서 형제(여자 포함) 중 셋째는 창조적이고 남을 돕는데 앞장서는 대신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끼면 곧바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또 우물쭈물하는 것을 싫어해 생각하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동북아를 호령했던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 형제간 싸움으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형제에 의해 검찰에 넘겨진 두산 비자금 사건은 자칫 1991년 페놀 사태 이후 그룹 최대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집단소송제에 의해 그룹이 거덜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마틴 루터는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졸도할 뻔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모른다. 우선 자신부터 알고, 다음엔 ‘가깝고도 먼’ 형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아쉽다. 두산 가문의 갈등에 대해 비난여론이 많지만, 창업 100여년 동안 잘 꾸려온 가업을 4세로 넘어가면서 일어나는 내홍(內訌)으로 치부하고 형제간 화해할 시간을 주자. 두산판 ‘형제의 난’은 내일 바로 내 일로 다가올 수 있다

(매경이코노미 / 윤영걸 주간국장 2005-8-10) 

“60억재산이 무슨 소용있나” 한강에 몸던진 갑부할머니

60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70대 할머니가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동호대교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정모(77) 씨.

당시 경찰은 이날 오전 5시경 반포대교 위 난간에서 할머니를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로 미뤄 자살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큰 누나가 사건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거액을 인출했다”는 등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와 정 씨의 당일 행적과 금전 관계 등을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정 씨는 서초구 반포동의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6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가였다.

경찰 조사결과 정 씨가 사고 당일 오전 4시경 전화를 받고 나갔으며, 큰딸이 사고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1억6000만 원을 인출해 간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새벽에 전화를 걸어 온 이는 정 씨가 부른 모범택시 운전사였다.

사고 당일 새벽 정 씨는 평소 이용하던 모범택시의 운전사에게 “강바람을 쐬고 싶으니 다리 위에 내려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내린 뒤 운전사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경찰에 신고했다.

부랴부랴 반포대교로 달려 온 의경은 난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의경이 할머니에게 “집에 돌아가시라”고 말을 건네자 할머니는 “바람 쏘이러 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정 씨가 고민하다 의경이 돌아간 뒤 투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큰딸은 전에도 몇 차례나 예금을 인출해 간 적이 있었다. “죽고 싶다” “세상이 귀찮다”는 내용이 적힌 정 씨의 일기장도 발견됐다.

경찰은 “정 씨가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씨의 남편은 10년 전 바람이 나 다른 살림을 차려 나갔고, 정 씨는 가정부와 단 둘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문대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이 없는 40대 아들과 두 딸 사이에 유산 상속을 둘러싼 불화도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딸은 경찰에서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렸다”고 했고, 아들은 “누나들이 어머니의 돈을 번번이 갖다 썼다”고 맞섰다.

정 씨는 가정불화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아일보 / 조이영 기자 2005-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