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도청 불가능" 정통부만 딴소리

국정원선 도청사실 발표… 누가 거짓말하나
전문가들, 도청경로·장비까지 자세히 밝혀
정통부 "비화기술 추진" 자기모순 사업도

국가정보원의 휴대전화 도·감청 사실 발표에도 정보통신부는 아직도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청 사실을 공식 발표했고, 이동통신 전문가들 대부분이 도청 가능성을 인정하는데도, 유독 정통부만이 ‘도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도청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주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국가정보원이나 정통부 모두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두 국가기관 중 어느 한쪽은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정통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도청 기술은 물론이고, 도청에 필요한 장비들 품목까지 아주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도청 경로 역시 다양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 출신인 통신 전문가 A씨는 9일 “세 가지 경로로 휴대전화기 도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5일 “무게가 45㎏인 차량 탑재형 도청 장비를 이용, 도청 대상자의 반경 200m 이내에서 도청을 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한 가지 경로에 불과하다는 것.

A씨는 우선 “도청 대상자가 이동하지 않고 하나의 기지국만 거쳐 통화할 때, 기지국 차원에서 도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지국은 휴대전화기에서 나오는 무선(無線) 신호를 받아 교환기로 연결하는 장치로, 기지국 하나는 보통 반경(半徑) 500m~1㎞ 범위를 담당한다. 예를 들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기지국마다 특수 장비를 설치하면, 국회의사당 내에서 걸리는 모든 휴대전화기의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A씨는 또 “음성 데이터를 유선(有線)으로 전송하는 기지국→교환기(또는 교환기→기지국) 구간에서도 도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음성 데이터는 유선 구간에서 PCM(펄스 부호 변조) 방식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돼 전송되는데, 특정한 데이터를 걸러내는 소프트웨어와 해독 장비만 있다면 통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휴대전화 도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정통부는 휴대전화 도청을 막는 기술인 비화(秘話) 기술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선정, 예산을 쏟아붓는 자기모순에도 빠졌다. 정통부는 비화 기술을 국가지도통신망 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이며, 일부 지자체에 국가지도무선망용으로 비화폰을 구입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오는 27일부터 적용되는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 개정안도 정통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만든다. 법무부는 당초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합법적인 도청을 뜻하는 감청 설비를 갖추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정부 스스로 도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정통부는 이에 대해 “비화 기술 개발이나 감청 설비 의무화는 앞으로 도·감청 기술이 발전했을 때를 대비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도청 가능성이 밝혀진 만큼 정통부가 솔직히 사실을 고백하고 휴대전화 가입자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 김기홍, 백승재 기자 2005-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