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아! 고구려

한국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펼치는 동안 우리의 고구려 역사는 도둑맞고 있었다. 최근 백두산리더십학교에 참가한 50여명의 청소년들과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했다. 높이 5.34m의 거대한 광개토대왕비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중국사람들도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알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조선족 안내원 안승덕씨는 “중국 중앙정부와 관련 지방도시들은 고구려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후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강조하는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고구려역사를 중국의 한 지방정권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역사의 장소를 두 나라가 자신의 역사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지안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안박물관 입구엔 천장까지 닿은 대형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눈길을 먼저 끈것은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인사말이었다.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의 고대문명 발전과 생산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중국의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고구려 역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하지만,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3성 지역에 대한 도전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중국당국의 정책 때문에 함구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고대사를 연구한 조용래 박사는 “중국정부는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300억위안을 쏟아 부었다”며 “비용의 대부분은 역사 유적지 근처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을 이주시키는데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는 고구려 유적지에 조선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의지란 것.

중국정부의 치밀한 의도는 유적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단체이름이 적힌 깃발을 들고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중국 안내원들은 “깃발을 내리라”며 신경질적인 제지를 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고구려 땅을 찾자는 취지의 깃발을 들고 사진촬영을 할지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한 학생은 “우리의 역사 유적지에서 사진촬영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유적지를 빠져나올 때 대여섯대의 관광버스에서 수십명의 중국인들이 줄지어 내렸다. 이들을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 조선족 안내원은 “여러분들 중에 고구려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와 우리가 빼앗긴 역사를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탐방을 하는 청소년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국민일보 / 이지현 기자 200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