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니콜 음해세력, 심판 받을 것"

애니콜 단말기에 대한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검찰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삼성전자를 고발한 'V4400 소비자의 힘' 운영자 정주영(20)씨가 지난해 2월 삼성전자로부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문 형식의 답변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답변서에서 삼성전자는 "제품에 기능상의 하자가 있다면 소송 제기 등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권리를 주장해야 할 것"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순수한 소비자 운동이 아닌 영업 행위 및 업무를 방해하려는, 소비자 보호운동을 빙자한 권리 남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당사를 음해하려는 정주영씨의 배후세력을 포함한 'V4400 소비자의 힘' 운영자들이 당사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과 같이 당사 제품 및 당사를 비방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및 형사상 명예훼손, 협박,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한 형사고소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조치를 강구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V4400 소비자의 힘' 회원들에게 발송한 내용 중에는 해외에 출시되지도 않은 V4400 제품의 문제점들을 해외언론에 유포하겠다고 당사를 협박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면서 "정주영씨가 실제로 이러한 행동으로 나갔을 경우, 당사의 브랜드 이미지 및 경쟁력,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에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것임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고 지적했다.

정씨와 인터넷 커뮤니티 'V4400 소비자의 힘' 회원들은 8일 '권상우폰'으로 불리는 SPH-V4400 모델이 통화가 끊기는 등의 오류가 수시로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삼성전자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했다.

(한국일보 2005-8-8) 

'골리앗' 삼성에 맞선 스무 살 청년의 10개월

8일 삼성전자를 허위ㆍ과장 광고 혐의로 한국소비자보호원과 검찰에 고발한 갓 스무 살 정주영 씨는 1년 가까이 이 문제를 안고 씨름하느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고발을 주도한 인터넷 커뮤니티 'V4400 소비자의 힘' 운영자로 수험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포기하려는 회원들을 독려하랴 자료 수집하랴 준비 작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물론 그 동안 삼성전자 측의 은근한 '회유'와 '협박'도 많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프레시안>은 6일 오후 정주영 씨를 만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든 지난 10월부터 10개월 동안의 '험난했던 준비과정'을 직접 들었다.
  
"삼성 등은 10대, 20대 소비자를 무시해 왔다"
  
프레시안 : 처음에 이 문제를 어떻게 시작했나?
정주영 : 나도 여느 10대처럼 휴대전화 단말기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여러 차례 휴대전화 단말기를 바꾸는 편이어서 대기업들 단말기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안다. 그런데 '권상우폰(V-4400)'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 10월 4일 인터넷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프레시안 : 특별히 뭐가 심하다고 생각했나? 휴대전화 단말기는 그 동안에도 허위ㆍ과장 광고나 기능 불량이 여러 차례 지적됐었다.
정주영 : 이 단말기는 문제가 유독 많았다. 캠코더와 MP3 플레이어 기능이 포함돼 있다고 해서 75만9000원이나 되는 고가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샀는데 캠코더는커녕 MP3 플레이어 기능도 엉망이었다. 거기다 부가 기능뿐만 아니라 전화가 불통되는 것처럼 기본 기능도 불량인 경우가 많았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심을 갖고 기사를 찾아보니 번호 이동성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동 통신사가 신형 휴대전화 단말기를 미끼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삼성전자 측이 날짜를 맞추려고 검증이 안 된 고가의 단말기를 내놓은 것이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그 동안 휴대전화 단말기에 대한 허위ㆍ과장 광고나 불량 문제가 왜 시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정주영 : 새로 출시된 휴대전화 단말기의 주된 구입자가 10대, 20대들이어서 문제를 제기해도 기업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 주기가 짧아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잊히는 것도 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10대, 20대 소비자를 더욱더 만만하게 보게 된 면이 있다.
  
삼성전자 '애니콜'에 딴죽 걸면 국가 이미지에 타격?

프레시안 : 커뮤니티를 개설한 다음 삼성전자 측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정주영 : 커뮤니티를 개설하자마자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단 며칠 만에 1000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으니까. 삼성전자 측에서도 급했는지 내가 사는 포항까지 찾아 왔다.
  
프레시안 : 무슨 얘기를 하던가?
정주영 : 앞뒤가 안 맞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서명운동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사실 내가 그만하자고 해서 서명운동이 중단되는 것도 아닌데…. 거부했더니 '삼성전자가 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주시하고 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더라. 나중에 이런 얘기가 오고갔다는 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니까 또 당황해서 대화 내용 정리한 것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한심한 일이었다.
  
프레시안 : 그 뒤로도 삼성전자 측에서 계속 접촉을 해 왔나?
정주영 : 그렇다. 10월에는 300만 화소 최신형 휴대전화 단말기를 나 없는 새 집에다 놓고 가기도 했다. 그건 문제 단말기보다 값도 훨씬 더 나가는 거였는데 그냥 놓고 가서 어이가 없었다. 당장 돌려줬다. 11월에도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에도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위ㆍ과장 광고로 지적된 부분은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 '애니콜'이 총 수출액의 5%를 차지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자꾸 이렇게 딴죽을 걸면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했다.
  
"소비자들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 계속되면 민ㆍ형사상 고발" 협박
  
프레시안 : 삼성전자 측으로부터 아주 노골적인 '협박'도 있었다고 들었다.
정주영 : 그에 앞서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작년 11월 16일 새벽 3시 삼성전자 관계자가 갑자기 메일을 보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견학이 계획돼 있으니 커뮤니티에서 누가 참석할지 17일 아침 8시까지 알려달라는 거다. 16일은 수능시험 예비소집일이었고 17일에는 수능시험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구미공장 견학은 이미 그 전에 확실히 가지 않겠다는 답변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당장 내일 수능시험을 보는 사람한테 메일을 보내서 수능시험 시작되는 시간까지 답변을 달라니. 만약 고의로 이런 일을 했다면 삼성전자의 수준을 알 만하지 않나? 우연이었기를 바란다. (웃음)
  
프레시안 : 그밖에 삼성전자 측의 대응은?
정주영 : 2월 4일에 '답변서'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사실상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 때문에 '삼성전자의 영업 행위 및 업무가 심각한 방해를 받고 있다'며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딱지를 붙이더라. 나를 비롯한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계속 활동을 할 경우에는 민ㆍ형사상 고발을 하겠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고.
  
"삼성, '기본'부터 챙겨라"
  
프레시안 : 삼성전자 측으로부터 보상을 바라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곱지 않은 눈길도 있었을 텐데….
정주영 : 이미 11월에 소비자보호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삼성전자 측에 나한테 판매가격을 모두 보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삼성전자에서는 이마저도 '고객 만족을 위해' 특별히 해준다는 식이었다. 내 입만 막으면 된다는 그런 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부했다. 다른 커뮤니티 회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보상이 아니다. 우선 삼성전자가 허위ㆍ과장 광고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소비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잘못을 인정하면 보상은 그 뒤에 그 잘못에 부합하는 만큼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절차 아닌가?
  
프레시안 : 최근에 '삼성 공화국'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삼성그룹의 영향력은 크다. 이번 싸움을 해 오면서 삼성 또 대기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텐데.
정주영 : 글쎄, 확실히 하자. 나는 '안티 삼성'을 하는 게 아니다. 단 삼성이 이렇게 소비자를 계속 무시하는 방식으로 일관하다가는 결코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없다. 광고만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하고 실상은 '또 하나의 피해자'를 자꾸 만들어가는 게 삼성의 본 모습 아닌가. 우리나라 소비자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이 어떻게 세계 각국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겠나? 삼성에게 '기본'부터 챙기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프레시안 200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