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현실 몰라도 너무 몰라”

“논술지도를 제대로 하려면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게 한 뒤, 한 명씩 첨삭을 해주고 첨삭한 글을 서로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논술 사교육의 단가가 비싼 이유도 이렇게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국어교사들에게 몇 차례 연수를 실시하면 학교에서도 충분히 대입 논술고사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입니다. 하물며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논술교육 사이트인 ‘강호영의 논술교실’(my.dreamwiz.com/ghdud99)을 운영하는 서울 성남고 강호영 교사(국어)는 4일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해온 나조차도 가장 부담스러운 게 논술수업인데 준비되지 않은 교사들은 오죽하겠느냐”고 털어놨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논술을 고교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교육을 책임질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학교 현장에서 적지 않은 개인 시간과 품을 들여가며 꾸준히 논술을 지도해온 교사들마저도 “현재와 같은 여건에서 고교가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의 논술교육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학교가 논술학원인가?

자기가 맡은 교과 수업시간에 독서와 토론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지금도 적지 않다. 문제는 서울대 등이 요구하는 논술이 ‘통합교과형’이라는 데 있다. 서울 진명여고 임덕준 교사(도덕)는 “각 교과별로 ‘논술형’ 수업이 이뤄져도, 대학이 제시하는 고난도의 통합교과형 논술을 풀 수 있는 통합적 사고력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객관식 통합교과형 시험인 수능이 도입되면서 사교육이 급팽창했듯이, 개별 교과 중심의 학교 교육에서 한 발 더 앞서 나가려는 학생들이 통합교과형 논술 사교육 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러 교과 교사들이 모여 ‘팀티칭’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으나,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논술 담당 교사들의 지적이다. 임 교사는 “단지 입시를 위해 교육과정에도 나와 있지 않은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해 교사들이 팀을 짜서 연구하고 가르치라는 것 자체가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숭문고 허병두 교사(국어)는 “고교 교사가 일주일에 20시간이 넘는 정규수업에 특기적성,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감독, 온갖 행정업무, 생활지도 등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손발을 다 묶어 놓고는 교사들더러 학원 강사들보다 더 논술을 잘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주 전남대 사대부고 박안수 교사(국어)도 “어느 정도 여건이 개선되고 교사 재교육 등 준비가 될 때까지 통합교과형 논술의 전면 도입을 미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논술교육 대책은 탁상행정의 전형

교사들은 독서와 작문 시간에 논술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졸속 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상명대 부속여고 권희정 교사(철학)는 “논술은 단순한 글짓기가 아니라 논증력을 측정하는 것”이라며 “국어교사들이 몇 시간의 연수만으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재의 대학별 논술고사 현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인천 효성고 양은영 교사(국어)도 “독서와 작문 수업을 내실화해 읽기와 쓰기 교육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며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논술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별로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 / 이종규 기자 200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