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계 '중국 위협론'에 좌절

중국해양석유유한공사(CNOOC)가 2일 미국 9위의 석유업체인 유노칼 인수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유노칼은 미 석유회사인 셰브론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중국기업의 미 기업 인수합병(M&A) 포기라는 차원을 넘어 미.중 간 정치.경제적 힘 겨루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CNOOC는 1월 유노칼 인수 계획을 밝힌 데 이어 6월 185억 달러를 제시했다. 그것도 전액 현금 지불 조건이었다. 경쟁자인 셰브론은 이보다 11억 달러가 적은 174억 달러를 현금과 주식으로 지불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경제적 시각에서만 보면 CNOOC의 유노칼 인수는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여론이었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에 대해 1000억 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은 하이테크 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시장을 중국에 빼앗긴 상태다. 게다가 지난달 21일 단행한 위안화 평가절상도 미국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당연히 미 산업계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는 '중국위협론'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미 의회는 지난주 CNOOC의 유노칼 인수를 120일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대통령 자문위원회(CFIUS)가 유노칼의 해외 매각이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지 조사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CNOOC 입장에선 인수 조건이 좋은 만큼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CNOOC는 2일 성명에서 "우리는 유노칼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경제 외적 압력이 거세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 회사의 한 고문은 "미국에는 중국을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 "미국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전문가는 CNOOC가 1보 전진을 위해 2보 후퇴를 택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애널리스트 로레인 탠은 "이번 사건으로 CNOOC의 해외기업 인수 전략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타이밍이 좋지 않아 한 발짝 물러난 것뿐"이라고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석유의 40%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대형 외국 석유회사를 인수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이번 사건은 앞으로 다른 미 기업을 인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대 시각도 있다. 홍콩 경제지 신보(信報)는 사설에서 "이번 사건이 다른 외국 정부를 자극해 중국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이 경우 중국 에너지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 있다"고 논평했다. 또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 어떤 형태로든 미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테러와 안보 문제에서도 미국과 엇박자를 낼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앙일보 / 최형규 특파원 2005-8-4)

中, 유노칼 인수 철회는 `정부` 때문

중국해양석유(CNOOC)가 미국 유노칼 인수에 실패한 것은 중국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 때문이라고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CNOOC가 미 정계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었다는 평가다.

FT는 이날 CNOOC의 185억달러 입찰안은 인수에 있어서 `필수적인` 정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공식적인 지지 부족이 결국 CNOOC의 대담했던 인수 시도를 좌절시켰다고 전했다. 정통한 관계자들은 미 정계가 CNOOC의 인수를 방해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인수 철회를 야기시킨 것은 중국 정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만약 베이징이 워싱턴과 외교적인 접촉을 했다면, CNOOC가 미국의 정치적 반대를 견디거나 혹은 최소한 미 정부의 `안보 우려`가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결코 CNOOC 뒤에서 힘을 보태주지 않았다.

CNOOC는 홍콩 상장사로 해외 입찰에 있어 굳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OOC는 6월23일 유노칼 입찰을 런칭하기 이전에 중국 관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CNOOC가 중국 당국에 입찰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떤 관리도 입찰을 지속하라거나 그만두라는 뚜렷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고, 결국 CNOOC는 베이징의 어떤 도움도 없이 입찰을 진행하게 됐다는 것.

신문은 중국이 CNOOC의 유노칼 인수에 따른 뚜렷한 이득을 찾지 못했다며, 7월 유노칼 인수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제한한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이 다음달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양 국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피하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또한 CNOOC의 유노칼 인수 철회가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기업인수에 대한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 김경인 기자 2005-8-6)

中 ‘보물선 작전’ 실패…CNOOC, 美유노칼 인수포기

美, 에너지 안보 논리 내세워 반대

“미국의 자존심이 팔렸다.”뉴욕록펠러 센터가 1989년 8억 5,000만 달러에 일본 미쓰비시 그룹에 매각됐을 때 미국인들이 탄식하며 내뱉은 말이다. 일본 기업들은 1980년대 후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주요 부동산과 골프장, 영화 스튜디오 등을 인수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제 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은 듯 이번에는 중국 기업들이 ‘바이 아메리카’에 나섰다. 특히 중국의 3대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중국해양석유(中國海洋石油有限公司?CNOOC)가 미국 8위의 석유회사 유노칼을 185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이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다. 의회와 국방부 등은 “중국 정부가 미국으로 가야 할 석유를 중국으로 빼돌리면서 미국을 압박해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강력히 반대했다. 반면 재무부 등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촉구해 온 마당에 중국 자본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길을 막는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들과 경제학자들도 이번 인수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리면서 연일 논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의 결론은 ‘No'였다. CNOOC는 2일 미국 석유업체 유노칼 인수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CNOOC는 이날 언론에 보낸 e메일 성명을 통해 지난 6월 23일 제시했던 유노칼 인수 제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CNOOC은 “인수 의사를 밝힌 뒤에 나온 정치적인 반대가 주된 포기 이유”라면서 “이 같은 반대는 유감스럽고 부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CNOOC는 이어 이 같은 정치적 환경과 이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발생함에 따라 계약을 성사시킬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CNOOC이 유노칼 인수를 포기함에 따라 유노칼은 미국 2위 석유기업 셰브론에 넘어갈 전망이다. 지난 4월 처음 인수를 제안한 뒤 CNOOC와 경쟁을 벌여온 셰브론은 현재 174억 달러를 제안해둔 상태다.

CNOOC의 유노칼 인수 포기 발표에 앞서 중국의 전자업체인 하이얼도 미국 가전업체 메이택 인수를 포기하는 등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외국기업 인수 합병(M&A)전략에 잇따라 제동이 걸렸다.

中, 고도의 전략에 따라 美시험…에너지 확보 등 다목적 포석

CNOOC는 유노칼 인수 계획을 ‘보물선 작전’이라고 명명하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주도 면밀한 작업을 추진해왔다. CNOOC는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 퍼블릭 스트래티지 등 미디어 전략기업, 법률회사, 백악관과 관계가 있는 텍사스 로비그룹까지 동원해 M&A 전략 팀을 구성했다. '전쟁 팀'으로 명명된 이 전략 팀은 말 그대로 전시처럼 총력전을 펼쳤다. CNOOC가 유노칼을 인수하려고 있던 까닭은 중국 정부의 고도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CNOOC는 중국 정부가 지분의 70%를 갖고 있는 국영기업이다. CNOOC가 던진 대담한 승부수 뒤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 인수에 필요한 대금 중 60억 달러를 중국 공상은행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해 각 은행에 통지를 보내 해외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 기업을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의 노림수는 무엇보다 먼저 미국이 에너지 등 핵심 전략 기업들을 외국 기업에 넘길 수 있느냐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말 중국 PC 제조업체인 레노버가 IBM PC사업 부문을 인수할 때 이미 시도해 본 것이다. 당시 의회는 국가안보를 내세워 강력히 반대했지만 결국 행정부내 외국투자위원회(CFIUS)는 지난 5월 이를 인수를 최종 승인한 바 있다. 중국은 이번 인수 문제도 미국이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경제논리를 선택할 것인지를 떠 본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목적은 위안화 절상 이후를 고려한 것이다. 중국은 현재 미국이 해외에 판 채권 중 18.6%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재정적자를 막아주는 데만 도움이 될 뿐 중국에는 별다른 이익이 없다. 때문에 중국은 앞으로 위안화를 단계적으로 절상할 경우, 미국의 국채를 사는 것보다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경제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미국 기업의 인수 가격이 그만큼 싸지고 기술 등도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에너지의 확보이다. 유노칼은 지난해 말 현재 순 부채 26억8,000만 달러, 자산가치 110억 달러 규모로 미국내 보다는 해외 에너지 개발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아시아 지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장기 계약권을 갖고 있다. CNOOC가 유노칼을 인수한다면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손쉽게 들여올 수 있다.

특히 유노칼은 심해 표면에서 10㎞까지 시추하는 심해 유정 발굴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회사이다. 유노칼이 멕시코 만에서 시추하고 있는 유정 중 하나인 ‘세인트 맬로’(St. Malo)` 유정에는 약 150억 배럴 정도가 매장돼 있으며 이는 중국의 6년치 석유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으로 추정된다.(월 스트리스트 저널 7월 21일자 보도) 멕시코만의 유정들은 현재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유망한 원유 매장지역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심해 유정 프로젝트는 정유사들의 사활이 걸린 유망 분야다. 에너지산업 전문 컨설팅업체인 우드 매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개발된 전 세계 석유 및 가스 유정의 3분의 2는 360m 이상의 심해에서 발견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석유 등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에너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진출하려고 안간힘이다. 하지만 주요 에너지 자원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미국 등 다국적 에너지 메이저들이 이미 자리를 확보한 상태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미국 굴지의 석유 회사를 매입함으로써 해외에서의 에너지 확보를 보다 원활히 할 수 있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또 중국은 그동안 자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외교, 군사 전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것이다.

美,의회, 中 위협론 내세워 법 개정 등 반대  

미국도 중국의 이 같은 노림수를 간과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7월 26일 미국의 에너지 자원을 취득하려는 외국 기업의 경우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국방부 등 3개 정부기관으로부터 국가안보, 양국 무역관계 등과 관련된 조사를 받도록 하는 에너지법안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따라 CNOOC이 유노칼 인수안은 이들 기관에서 길게는 120일에 걸친 별도 조사를 받아야 최종 결정권을 가진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로 넘어가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또 미국 투자 자문사인 인스티튜셔널 셰어홀더 서비스(ISS)는 지난 1일 CNOOC와의 거래에서 정치적 위험이 크다면서 유노칼 주주들에게 셰브론의 제안을 수용하라고 권유했다. 셰브론의 제안은 이미 유노칼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오는 10일 주주 표결을 앞둔 상황이었다.

미국의 반대 이유는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찰스 슈머 상원의원(뉴욕, 민주 당)은 “미국기업이 중국의 주요기업을 인수한다고 할 때 중국 정부가 허가하겠느냐”면서 CNOOC의 유노칼 인수를 반대했다. 하원 자원위원회 위원장인 리처드 폼보의원도 “CNOOC의 유노칼 인수는 미국경제와 국가안보에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지난 7월 13일 하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CNOOC의 유노칼 인수는 미국의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로, 중국은 현재 에너지 시장과 서태평양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을 추진 중”이라면서 "세계 최대 공산주의 국가의 국영기업인 CNOOC이 유노칼을 인수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원들은 심지어 중국이 유노칼의 시추 및 음파탐지 기술을 군사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시작됐던 ‘자본 공습’이  ‘안보 논리’를 내세운 미국 정계의 견제를 넘는 데 실패한 것이다.

CNOOC와 함께 미국 기업의 사냥에 나섰던 중국 최대 가전그룹 하이얼도 메이택 인수를 포기했다. 미국의 가전업체 월풀이 하이얼보다 높은 주당 17달러에 인수를 추진하면서 인수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비단 기업 인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이미 수 개월 전부터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 절상과 섬유쿼터 규제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고, 이 같은 긴장관계는 계속 되고 있다. 특히 전방위적인 위안화 절상 압력을 통해 중국의 페그제 포기를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위안화 절상의 폭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CNOOC와 하이얼이 유노칼과 메이택 인수를 포기했다고 해도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업 인수 시도가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미국 에너지 기업 인수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결과를 예측한 듯 뉴욕타임스는 사설(6월 26일자)에서 “인수전의 결말에 상관없이 지금이 바로 미국의 경제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시졈이라고 지적했다. 양국의 힘 겨루기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업코리아 200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