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 쓴소리 못참는 정부

정책 비판한 국책기관 연구원들 잇따라 징계
국방·통일연 대북정책 비판에 '감봉'
일부는 정부입맛 맞춘 보고서 내기도

정부가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전 북한에 대한 전력지원 타당성 용역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최근 한전 간부의 전화를 받았다. 그 간부는 “당국에서 대북 송전 용역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너무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며 ‘참여 전문가들을 좀 순화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간곡히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 징계를 받고 사표(희망퇴직)를 낸 통일연구원 홍관희 전 선임연구위원은 1일 기자회견을 갖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 상황에서는 전문가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사직했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측은 홍 연구위원을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외 활동 규정을 어긴 것 때문에 징계했다고 밝혔지만, 본인은 “올 5·6월 ‘민족정론’에 ‘6·15선언’을 비판한 글을 기고한 후 정부 고위층에서 음으로 양으로 불쾌감을 표시해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광 국회예산정책처장 면직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최 전 처장은 정책세미나 등에서 “현정부의 노동 교육 언론 정책 등이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하다가 자진 사퇴 압력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국회는 면직 처분을 내렸다.

한국국방연구원은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안보개념을 비판한 것으로 외신이 보도한 김태우 연구위원에 대해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의 전문가 입막기 시도는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국책연구기관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연구원에서는 최근 한 연구원의 북한 핵무기 개발 실태 연구가 정부 입장과 다르자 대외비로 출간토록 한 적이 있고, 최근 안보연구기관에서도 한·미동맹을 다룬 보고서를 낸 연구원이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관련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정부와 다른 경제 전망을 내놓으면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많아 윤색해 보고서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는 “정부가 선진국처럼 학자들의 쓴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못참는 것은 학자적 양심을 버리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부의 이런 자세는 전문가들의 비판적 연구 기능과 정부 조언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성호 중앙대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은 국가기관이지 정권의 기관이 아니므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며 “전문가들을 자신들 하수인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코드 연구’를 주문하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 김민철 기자 200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