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려인의 중심 `우스리스크'

민족의 限서린 길을 가다 <한ㆍ러 유라시아 대장정>

"조국잃은 민족이 강제이주를 당했던 서러운 한맺힌 길,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독립투사들이 떠났던 고난의 길을 이제 평화와 번영의 길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간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열자, 유라시아의 시대를! 만나자, 바이칼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건 `한ㆍ러 유라시아 대장정' 원정대가 지난달 22일부터 8월15일까지 부산에서 모스크바를 잇는 대여정에 올랐다.

대륙의 끝 부산을 출발한 `동시베리아팀'은 서울과 속초를 거쳐 동해바다를 타고 25일 러시아 극동함대가 위치한 군사항구이자 러시아의 동진(東進) 전초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앞 바다에는 군함이 유유히 떠 있고, 탱크가 도시 한복판을 활개치며 지나가는 군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북쪽으로 110km를 올라가면 인구 16만의 작은 도시 `우스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우스리스크는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5만여명의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인) 가운데 1만7천여명이 살고 있는 명실상부한 고려인의 중심지.

게다가 `러시아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과 `고려인 우정마을', 올 9월에 재개교하는 `제3민족학교' 등이 자리잡고 있어 고려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도시다.

우스리스크를 향해 가는 길목에서 대장정 원정대는 우리 민족에게 서글픈 기억으로 각인돼 있는 `라즈돌리나역(驛)'을 만났다.

1937년 소련 정부는 `일제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살던 우리 민족을 모두 이 라즈돌리나 역으로 집결시켰고,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이들을 지붕도 없는 가축용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어른들도 견디지 못할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갓난아이들은 모두 굶거나 얼어죽었고, 간이역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러 잠시 열차에서 내렸던 어른들도 예고없이 떠나간 기차를 쫓아가다 시베리아 벌판의 원혼이 됐다.

대장정 원정대가 다시 찾은 라즈돌리나역은 조국없는 민족의 설움과 눈물을 간직한 채 지금은 쓸쓸하게 낡은 건물만 남아 황량했다.

대장정 대원들과 평화맞이 풍물패는 이곳 철로위에서 한세기 전 뿌려졌을 선조들의 피눈물과 한을 달래는 한풀이 굿을 치렀다.

라즈돌리나 역을 뒤로한 채 또 다시 길로 나선 원정대를 맞이 한 것은 넓은 평원을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스위푼 강.

"독립도 못본 죄인은 땅에 묻힐 수 없다"며 자신을 화장해 달라던 이상설(1870∼1917) 선생의 유골이 뿌려졌던 스위푼 강은 고려인의 근거지 우스리스크를 끼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우스리스크 북쪽 교외 도로를 따라 30분 가량 차로 달리면 스위푼강을 품은 채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끝자락이 나타난다.

이 대평원을 앞에 두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높고 긴 토성(土城). 바로 발해의 국경인 발해 외성(外城)이다.

뒤로는 비옥한 농토와 마을, 그리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대규모 내성(內城)을 보호한 채 앞으로는 저 먼 평원에서 도발해오는 외적을 막아주던 든든한 토성이다.

이 토성 앞에 펼쳐진 평원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말을 타고 달리며 대륙의 꿈을 품어왔던 것이다.

지금도 우스리스크 시내 곳곳에서는 천년 전에 건설했던 내성과 깊은 해자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아직 이곳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미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데 이어 발해유적에 대해서도 한국 역사연구가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발굴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와 힘을 합쳐 발해 유적에 대해 공동 발굴과 연구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옛 영토인 이곳 발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실정이다.

우스리스크에서 `민족학교' 재개교와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설립, `우정마을' 확장 등을 위해 애쓰는 동포들은 이같은 `우리의 고토(古土)'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발해시대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지었던 이곳 우스리스크 일대 평원은 지금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이곳 우스리스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에 자리잡은 수천만평의 비옥한 대평원은 누군가 자신을 개발해 진정한 진가를 드러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에서 동포교류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곳은 러시아와 중국, 한국이 모두 맞닿은 천혜의 토지"라며 "유라시아로 뻗어가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발해 외성에서 바라본 대평원은 우리 민족이 뻗어 가야할 대륙의 시작이자 앞으로 원정대가 가야할 시베리아의 시작이었다.

(연합뉴스 / 김병조 기자 2005-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