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구려인은 조선인이 아니다?

석달 전쯤이다. 기자는 4월 1일에 '국사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라는 제하로 '기자수첩'이란 일종의 칼럼을 쓴 바 있다.

그 때 기자는 일본역사교과서 파동이니 중국의 동북공정이니 하는 주변 국가의 '역사왜곡' 기도에 맞서기 위해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우리의 압도적인 주장의 진단도 잘못이요 그러니 처방 또한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동북공정에 맞서겠다고 지난해 3월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이 동북공정을 막았는가? 결코 막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해도 좋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압도적인 반응은 "웃기네"였다. 일본이나 중국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자국 역사를 가르치는데 우리가 가만 있어서야 되겠냐는 말이 많았다.

석달이 흐른 28일자 국내 한 조간신문에는 '"고구려는 한족이 세운 국가"'라는 주제목 아래 '중국, 지린성에 첫 공개간판 붙여… 변방 취급하다 건국까지 조작'이라는 자극적인 부제까지 곁들인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 지린성 지린시에 위치한 고구려 용담산성에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문화재 안내간판이 섰다는 것이다. 기사는 고구려를 중국 동북방 소수민족이 아닌 한족(漢族)이 세운 국가라고 명기하고 있다면서 간판 사진을 곁들였다.

같은날 다른 석간신문에는 이에 더해 중국의 한 관광안내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고구려 관광안내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덧붙여 전했다.

기자가 예언가는 아니나, 분명 석달 전에 예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예언을 덧붙이자면 그런 경향은 더욱 극심해지리라는 것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대응'이 저런 사태를 불러오는데 일조했다고 강조하지는 않겠다. 저 정도 간판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해도 고구려 문화유산은 저런 식으로 선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도, 처방도 잘못됐다.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처음 한국에 전해졌을 때 어떤 저명한 한국의 고대사연구자는 이렇게 외쳤다. "제2의 나ㆍ당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제2의 나당전쟁을 벌일 태세로 언론과 시민단체와 교육계와 역사학계가 한목소리를 냈고, 그리하여 고구려 연구를 위한 재단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고구려사 왜곡을 막는데 실패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기자는 오판이라 생각한다. 용담산성 안내문은 우울하지만 그 조종이다.

그렇다고 중국은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중국도 실패했다. 용담산성 안내문이 정말로 중국 지방정부에서 세운 것이라면, 그것은 중국의 실패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그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고구려인은 조선인이 아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간판인가? 분노에 앞서 포복절도할 줄 알아야 한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