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불만` 한국떠나는 학부모 는다

WSJ 특집보도

과도한 수업ㆍ학원비 넌더리…이민ㆍ조기유학 끝없는 행렬

현재 11살 된 딸을 두고 있는 정영희 씨는 아이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지난 2년간 학원, 개인교습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하지만 개인교습은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돈이 많이 들어 그만뒀다. 그녀는 주입식 교육을 일삼는 한국의 교육이 잘못됐으며 이민을 생각 중이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신수연(14) 양은 방과 후 밤 11시까지 종로M스쿨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와 학교 과제를 마치면 대개 새벽 1시가 넘어야 잠을 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수면시간은 길어야 6시간 남짓. 평균 점수를 85점에서 90점으로 높이기 위해 좋아하는 태권도도 그만뒀다. 신양은 "가끔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참는다"고 말했다.

수연 양의 어머니 이은미 씨는 "아이가 학원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공부 외에 다른 재능도 많은데 혹사당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학원에 보내지 않을 경우 좋은 대학에 못 가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학교교육에 대항하는 한국인들`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이들을 끝없이 야간학원과 보충수업으로 내몰고 있는 한국의 교육에 넌더리를 낸 부모 가운데 이민과 유학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엔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민을 갔으나 지금은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민으로 학교를 떠난 학생수는 지난 97년 4900명에서 2003년 1만500명으로 배 이상 불어났다. 해외 기숙학교로 유학가는 경우는 같은 기간에 3300명에서 3배 이상 늘어난 1만500명에 달해 가히 `엑소더스(exodes)`라고 할 만하다.

교육부 박경재 국장은 "좋은 대학 졸업장을 갖는 것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처럼 인식되는 한국에서 순전히 최고 대학에 입학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학교와 학원이라는 `교육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오로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에서의 야간학습과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며 이 때문에 기진맥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WSJ는 한국에서는 아이의 학교 졸업장이 향후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과거 60년대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 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따도록 아이들을 사설학원에 보냈지만 지금은 모든 학생의 70% 이상이 학교 성적을 높이고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국에는 2만1000개가 넘는 보습학원이 있으며 부모들은 학원 과외 등 사교육비로 저축액의 30% 이상을 지출한다.

여섯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김은영 씨는 "한국의 교육체제는 아이들의 창조성을 말살, 아이들을 질문도 하지 않고 교사만 쳐다보는 로보트로 만들고 있다"며 "미국에 이민을 위한 비자를 신청해 놨다"고 말했다.

WSJ는 현재 한국의 학부모들은 이민을 가거나 아니면 학원시스템에서 탈출하던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며 현 학교 교육이 성적만 강조하는 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교육기회를 찾아 한국을 떠나는 엑소더스 행렬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 / 김대우 기자 2005-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