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존심이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연해주 `고려인 우정마을'

러시아 연해주의 소도시 우수리스크에서 넓게 펼쳐진 평원을 따라 북쪽으로 17km를 달려가면 마을 입구에 낯익은 장승이 세워진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넓은 평원 한가운데 붉은 기와를 얹은 단층가옥 30여채가 모여 있는 이 곳은 러시아 연해주 미하일로프카군(郡)에 위치한 `고려인 우정마을'.

1937년 소련의 이민족 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이 다시 옛 삶터인 연해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처음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와 재외동포재단이 의욕적으로 마을 조성을 추진하다 재정부족으로 손을 떼 현재는 30여채만 지어진 상태다.

이 집들은 입주자들에게 영구 무상임대돼 이곳에서 사는 한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려면 집을 내놔야 한다.

이 마을 32가구 가운데 러시아인 5가구를 빼면 나머지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돌아온 고려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모두 2가구로, 동북아평화연대 사무처장 김현동(44)씨도 지난해 초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왔다.

마을 한쪽에는 마을회관격인 `솔빈문화회관'이 있으며, 그 뒤로는 유기농 실험농장인 비닐하우스 2개 동이 들어서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토마토와 오이,고추 등을 기르고 있으며, 이밖에도 한국과 중국,러시아의 토종작물들을 시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또 마을 부근 대규모 농장에서 나오는 유기농 콩을 이용해 청국장과 메주,된장 등을 직접 가공하고 있다.

아직 입주 가구가 적어 독립적인 마을로서 기능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우정마을은 앞으로 100채까지 입주가구를 늘려갈 계획이다.

김씨는 "이 일대 농가는 한 채당 1천달러 정도면 구입할 수 있지만 이곳에 집 1채 짓는데 4만달러가 들어 경제적으로 매우 부담스럽다"면서도 "한국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마을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넓은 평원 한가운데 조성된 우정마을의 동쪽에는 모스크바로 통하는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이 끝없이 뻗어있고, 마을 서쪽에는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러시아 1번국도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러시아인들은 모두다 이 `이국적인' 기와집들을 볼 수밖에 없고 바로 이곳이 고려인들이 사는 `까레이스키 제레브냐(고려인마을)'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김씨는 "앞으로 조금씩 집을 지어 최소한 100채 규모의 마을을 만들어 독립적인 마을기능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내년까지 10채 정도를 더 짓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또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인근 우수리스크 시내에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마을 자체에서 수익을 낼 계획도 있다.

집집마다 500평 규모의 텃밭에 비닐하우스 2동을 짓고, 마을의 실험농장에서 재배에 성공한 작물들을 심어 유기농사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마을에 40∼50동의 비닐하우스가 생기면 마을 입구에 유기농 시장을 열수도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역사가 바로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였다"며 "이제 우리 동포들이 다시 옛 삶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터를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시대 항일투쟁 과정에서 최초의 임시정부 사무실이 있었던 곳이자 발해 솔빈부의 유적지인 우수리스크.

이곳에 조성된 고려인 우정마을은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중앙아시아로 울며 쫓겨난 우리 민족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김병조 기자 200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