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발해 찾으러 갑니다"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팀 내달 연해주로 유적 탐사

지난해 8월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Kraskino)의 발해(渤海) 유적지. 바닥을 정리하던 김은국(金恩國·45)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팀 연구위원의 모종삽에 뭔가 검은 것이 묻어났다.

‘혹시… 목탄은 아닐까?’ 근처에 있던 임상선(林相先·45), 윤재운(尹載云·35) 연구위원이 다가와 주의깊게 살펴봤다. 연대 측정이 가능한 목탄이 분명했다. 이 목탄은 최근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의 측정 결과 서기 840년쯤의 것으로 판명됐다. 서기 840년!

“발해의 11대 왕 이진(彛震·재위 830~857) 때입니다. ‘해동성국’으로 칭송되던 최전성기에 해당하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맞서기 위해 지난해 6월 고구려연구재단이 출범하자마자 연해주로 떠났던 이들은 당시 이 성과에 용기를 얻었다. 이곳은 1990년대 초에 잠깐 우리 연구진이 발굴에 참여한 뒤 연구비 지원이 끊겨 손을 놓았던 곳이었다.

이들 임, 김, 윤 세 ‘발해 박사’는 다음달 5일 다시 크라스키노로 떠난다. 8월 말까지 현지서 진행될 발굴 작업 준비에 이들은 마음이 부풀어있다. 크라스키노는 멀리 북한 땅이 육안으로 보이는 두만강 근처. 사방에 민가라고는 없고 풀이 사람 키만큼 자란 들판이다. “강물로 세수하고 더위와 모기를 견뎠지만, 정말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대 측정이라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다.

“원숭이 조각상과 허리띠 장식 같은 유물들을 본 러시아 연구자들이 오히려 놀라더군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고….” 또다시 4주간의 발굴을 앞둔 이들은 “학계에서 ‘핵폭탄급’으로 통하는 다섯 자 이상 명문이 든 유물을 찾아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발해사 연구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우리 학계의 풍토에서 이들 세 명의 존재는 각별하다.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팀이야말로 사실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전담 연구자를 둔 곳이기 때문.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면서 ‘발해에 이어 고구려도 가져가려 하느냐’는 말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발해의 역사를 이미 빼앗겼다고 인정하기라도 하는 겁니까? 중국 학자들도 논문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하긴, 국내의 한 고대사학자가 대놓고 ‘이제 발해를 포기하자’고 말한 적도 있다. “아닙니다. 발해는 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하고 다시 그 문화를 고려로 잇게 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만약 발해를 잃어버린다면 우리 몸의 한 부분을 떼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죠.”

현재 우리 발굴팀이 러시아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발해 유적은 크라스키노와 한국전통문화학교 발굴조사단(단장 정석배 교수)이 참여하는 체르냐치노 유적지 두 곳뿐이다. 중국과 북한에서의 발해 유적 발굴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인만큼, 러시아 연해주 발해 유적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것이 이들 ‘발해 3박사’의 소망이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