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심상치 않다

장성민 "지난 3월 주한미군가족 일본대피 훈련
6월엔 슈와츠 전 사령관 극비방한해 상황 점검"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전 민주당 국회의원)는 17일 “지난 3월 RSOI훈련(팀스피리트 대체훈련) 도중 주한미군가족의 일본대피훈련도 실시됐는데 그때 페리호가 미군 잠수함과 충돌해 연습도중 부산항으로 귀환했다”며 “당시 언론들은 돌고래떼를 만나서 그랬다는 등 짧게 보도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이날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참으로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군이 왜 남한에 살고 있는 주한미군 가족들을 해상에서 대피훈련까지 시키고 있겠는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안보센서가 정지될 만큼 무감각하게 살고 지내는 것이 남측의 일상”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또 “지난 6월초 슈와츠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무려 2주간이나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했다”며 “그는 퇴역이후에도 미국의 이라크전 당시 이라크로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는 미사병들에게 실전교육을 시켰던 경험을 갖고 있고, 현재도 세계 분쟁지역을 돌면서 실전에 대비한 여러 가지 준비상황을 점검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그런 인물이 극비리에 방한하여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의 실전훈련에 참관자로 참석했다”며 “이 훈련에는 한국군이나 한국군 관계자가 완전 배제된 채 미군단독 훈련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훈련의 목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타깃은 어떤 것이었는지 한미당국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 정말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북한의 갑작스런 6자회담 복귀선언에는 북한의 식량ㆍ에너지난과 함께 부시행정부의 대북 봉쇄정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북한이 6자 회담 복귀를 더 미뤘을 경우, 미국은 런던 테러 발생 상황을 제2의 테러와의 전면전쟁으로 선포하면서 이런 국제적 분위기를 북핵문제로 집중하고 좁혀갈 것을 북한은 미리 알았던 것”이라며 “북한은 본능적으로 6자회담 복귀를 전격 선언했던 것이고 외신에 먼저 공개할 만큼 다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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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장 대표와의 일문일답

▲ 최근 들어 남북한간의 교류가 빨라지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그 일차적 원인은 북한의 태도변화에서 찾아야 된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교류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역시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대북 압박정책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시행정부는 중국과 한국을 대북제재에 동참시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압박정책에 맞대응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분석된다.

▲ 혹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와 결심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물론 김위원장이 북한 내부 정책결정자들에게 대남교류사업에 적극 뛰어 들 것을 독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왜 김위원장이 그런 지시를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대남정책에 관한 한 전통적으로 통미봉남 정책을 추구해 왔던 북측이 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마치 개구리 점프하듯 남측을 향해 돌진적인 행보로 접근해 들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위해 노무현 참여정부가 북측에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 결과가 터무니없을 만큼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미국을 향한 북측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부시행정부의 대북한 압박정책이 강화되어 북한의 고립이 날로 심화되자 미국의 압박정책으로부터 극적 탈출하기 위한 비상구로서 남한을 뚫고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남측에 대한 북측 태도변화의 직접적 계기라 생각한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을 통해서도 북한에 압박을 강화해 왔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가들로 향하는 모든 통로가 차단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통로가 있었다면 남한뿐이었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북한의 김 위원장에게 비상구를 열어줘 김 위원장이 부시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으로부터 탈출하는데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를 역으로 해석할 경우,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에 구멍이 뚫린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며,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은 남한의 지지 없이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 그렇다면 지난 6월 김정일 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극적으로 만났던 것도 이런 배경 하에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러한 전략적 국면전환의 문제가 아니고서는 김위원장이 한국의 통일부 장관을 직접 면담할 이유가 없다.

▲ 그러면 김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회동은 사전에 전혀 약속된 것이 아니었다고 보는가?

-그렇게 알고 있다. 우선 북측의 정장관에 대한 평가는 매우 극단적이었다. 참여정부에서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법을 단행한데 이어, 김일성 10주기 민간 조문단의 방북계획을 무산시키고, 동남아로부터 468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기획 입남시켜 북한체제를 위협했다고 비판했었다. 그리고 중국이란 외세에 의존하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토록 압력로비를 하고 다니는 반자주적인 인물로 혹평했었다. 심지어 역대 통일부 장관 가운데 북한땅을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라는 비판까지 했었지 않는가.

날짜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12월 15일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개성공단에서 가진 주방기구 리빙아트 첫 완제품 생산 기념식장에 참석한 정장관이 축사를 시작하자마자 북측의 주동찬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 총국장은 갑자기 자리를 뜨는 해프닝까지 벌여 참석자들 모두를 당황스럽게 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개성공단의 기념식 행사가 끝난 후 갖게 된 개성호텔내 연회장에, 기자와 민간인들도 참석하는 그런 뒷풀이 연회장에, 유독 정장관만 못 들어오게 막았던 어이없는 일까지 연출했던 북한이었다. 그런 북한이 왜 갑자기 태도를 180도 돌변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정장관을 만나주고 북측관료들이 남한과의 경협에 열정을 쏟는 파격적인 대남행보를 보이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 그런 김정일이 왜 정장관을 만나 줬는가?

-그동안 북측이 내부적으로 준비해 왔었던 개혁개방에 대한 자신들만의 단계적인 마스터 플랜과 이를 토대로 한 실행계획(Action Plan)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북측의 태도변화를 일으킨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외적요인이었다. 그 중심변수는 바로 미국이었다고 본다.

▲ 미국의 어떤 점인가?

-미국의 북한 체제붕괴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의 카드를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은 오히려 미국이 이 두 가지 카드를 보이지 않게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미국을 향한 한쪽 눈은 국무성을, 다른 한쪽 눈은 펜타곤을 주시한다. 그 중에서도 펜타곤쪽을 향한 눈은 훨씬 크고 둥그렇고 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작전계획 5029문제를 서서히 공론화시켜 이 문제를 끝까지 남한정부에 양보하지 않은 점을 관심 있게 지켜봤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계획의 핵심내용이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에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군의 군사적 직접 개입을 정당화시킴은 물론, 주한미군의 유연성 문제와 연동시켜 자신들을 향한 미국의 군사작전이 서서히 좁혀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에 남다른 위협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미 합동참모본부 산하 주요 군사교육기관인 국방대학교가 북한의 위기 상황에 대비한 "위기 시뮬레이션" 연습을 오는 7월 18일 실시한다는 이야기가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미 관리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중국을 통한 미국의 대북압력카드가 점점 노골화되었지만 중국카드가 미국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경험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를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직접 초청하여 북한의 인권실태를 물었고, 이 자리에 딕 체니 부통령을 배석시켜 무려 40분간이나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로 받아 들여 졌을 것이다. 특히 한국이란 동맹국의 대통령과 가진 대화 시간이 50분이었다고 했을때, 강철환 기자와 가졌던 40분간이란 대화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남측 보다는 북측의 김위원장이 훨씬 잘 알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이 북핵문제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떤 입장과 메세지를 보냈는가 하는 내용에 대한 북측의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마지막까지 북핵문제를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해 나가되, 이 외교적 해결이 불발로 끝날 경우, 미국이 비록 준전시상황으로 북핵문제를 끌고 가더라도 한국정부는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부시대통령의 최후통첩과 같은 회담 내용을 사전에 보도했었다.

이를 지켜본 북측 상황은 내부적으로 비상국면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인데 이때 바로 정장관이 노-부시 대통령의 대화 내용을 갖고 북측에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6.15 5주년 민족통일 대축전 참가를 위해 정부측 대표단으로 방북할 때의 정장관의 초라한 입지는 방북을 마치고 남측으로 돌아올 때의 화려함으로 극적으로 변화했다.

▲ 6자회담 복귀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하나?

-북한이 정장관을 갑작스럽게 만나 ‘대 환대’를 해서 보낸 배경을 좀 더 얘기하고 넘어 갔으면 한다. 북측 입장으로서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극히 궁금했을 것이고, 정장관이 노-부시대통령의 대화 내용 중 김위원장에게 꼭 전달해야 할 심각한 내용이 있으니 직접 만나 노대통령의 얘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측에게 보냈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남측대표단의 생각에는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측이 처한 고립상황이 그냥 스쳐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정 장관을 불렀던 것이다. 김-정회동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정장관이 북한으로 들어 갈때는 민간대표단속에 파묻혀 들어갔지만, 정장관이 나올 때는 오히려 역으로 민간대표단이 정부대표단속에 묻혔던 것이다.

김-정회동이 끝난 후 얼마 있지 않아 북한 중앙방송에서 김위원장이 정장관을 노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만났다라고 공식 발표했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을 향해 노-부시회담에서 무엇을 논했는지 남측에서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와 우리가 모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고, 예정에도 없었던 김-정간의 회동수준을 스스로 격상시켜 자신들의 외교적 체면을 구제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위원장을 만난 남측 대표단은 모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평양 땅을 단 한번도 밟지 못하고 끝나게 될 지도 모를 정장관의 입장에서는 어떠했겠는가?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대박이 터진 것이라 생각했지 않았겠는가? 북한은 그동안 정장관을 안달나게 만들어 애간장을 다 녹게 한 다음에 언젠가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대반격의 카드로 사용코자 전략적인 계산을 하면서 정장관 카드를 일종의 외교적 비축용으로 남겨 왔었는데 바로 그 카드를 사용해야 할 시점이 지난 6.17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장관이 북측으로 들어갈 때 이미 노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간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 측에서 먼저 밝히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정장관이 노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다는 사실은 우리 정부가 아닌 평양방송에서 먼저 발표해 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남측에서 시인하는 형식을 밟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어떤 언론도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질 않았다.

이 부분을 외교적으로 해석한다면, 평양에서 정장관의 외교적 위상과 역할까지도 결정하고 규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정장관이 김위원장을 만난 후, 두 사람간의 나눈 대화내용을 그대로 읽어가면서 남측국민에게 발표 했을 때, 정장관이 어떤 자격으로 누구를 위한 발표를 했겠는가와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미 이런 상황을 감지했던 것 같다. 얼마나 큰 외교적 코메디입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나 김대중 국민의 정부 때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던 임동원 국정원장도 방북하여 비밀스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방북전 혹은 후에는 북측과 공동으로 동시발표를 약속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 앞에 대통령 특사 또는 막후일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정부가 대외적으로 밝혔다. 이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외교적 행위이다. 절대로 외교파트너인 상대국가에서 외교사절의 지위와 역할을 먼저 규정하거나 밝히는 일은 외교적 무례이며, 엄격히 말해 주권침해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 이제 다시 6자회담으로 돌아가 보자. 왜 갑자기 북측에서 6자회담 복귀선언을 했을까?

-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째는 북측의 내적상황이고, 둘째는 외적상황인데, 전자의 경우는 북한의 식량과 비료, 에너지 상황들이 너무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측의 내적 궁핍상황이 악화된 배경에는, 사실 부시행정부의 대북 봉쇄정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경제적 무능력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북한으로선 자신들이 계속해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게 될 경우,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카드가 갈수록 힘을 얻게 됨과 동시에, 워싱턴 네오콘들 사이에 대화무용론이 설득력을 얻게 되고, 북한의 내부적 궁휼도 더욱 심화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과 내부로부터 발생되는 위기를 동시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미국의 F-117 스텔스 전투기 15대의 한국배치와 지난 10년 이상 북한에서 미군유해 발굴작업을 진행시켜 왔던 미군유해발굴단이 북으로부터 철수했던 사실은 북측에겐 위기와 긴장의 충격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미군유해발군단을 긴급히 철수시킨 펜타곤의 배경에는, 북-미간 만일의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북한이 미유해발군단을 인질로 잡아두게 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이 점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였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 북미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뉴욕에서의 직간접적인 노력이 있어왔고, 그 결실로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측대표와 김계관 북측대표간의 조정이 합의를 보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게 되었던 측면도 없지 않지만, 막판까지 미국의 입장을 떠 보고 복귀판단을 결정하려는 북한을 전격적으로 6자회담장에 뛰어들게 만든 또 다른 결정적 변수는 7.7런던 테러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북문제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지금 북한에서 보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남한에서 쳐다보고 생각할 만큼 태평스럽지 않다. 정말 분초를 다투는 외교적 신경쇠약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무성에서 지정한 깡패국가,테러국가,폭정의 전초기지,악의 축,마약 밀매국가,선제공격의 대상에 여전히 등재되어 있다는 점은 부시의 대북관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런 시점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을 더 미뤘을 경우, 미국은 100퍼센트 런던 테러 발생 상황을 제2의 테러와의 전면전쟁으로 선포하면서 이런 국제적 분위기를 북핵문제로 집중하고 좁혀갈 것을 북한은 미리 알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6자회담 복귀를 전격 선언했던 것이다. 6자회담 복귀문 발표도 기존의 의례적 절차인 국영방송을 통하지 않고 외신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그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정부에 보다 큰 대북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전에 그리고 당자쉔 국무위원이 북한을 6자회담장에 복귀시키기 위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방북하기 전에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6자회담 복귀선언을 함으로써, 대외적으로 북한은 어떤 나라의 외교적 간섭이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발 빠르게 천명하게 된 것이다. 결국 콘돌리자 라이스의 중국방문과 당자쉔의 방북에 바람을 빼 버린 것이고,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김을 빼버린 것이다.

북한의 ‘외교적 선제공격’이었던 것이다. 이번 긴박한 외교적 상황을 북측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매우 치밀하고 노련한 약소국가 외교의 모델이자 전형이 될 만한 케이스라 생각한다. 특히 외교의 본질이 국익을 지키고 자신들의 체제와 생존을 유지하면서 주권을 보호하는 대외적 수단이라고 봤을 때, 북한은 놀라운 외교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북한이 갖는 최대의 파워는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력일지도 모른다. 국제정세나 대외정세를 보는 수준과 시력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참여정부가 북측의 이런 점을 얼마나 꿰뚫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런 점에서 북한을 무조건 적으로 부조리한 집단으로 보거나 메카시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경계하는 입장이다.

절대적인 힘만이 지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치열한 투쟁상황, 약육강식의 현실이 국제정치라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난공불락의 외교적 진지전 (陣地戰)을 구축하고 있는 그런 국가로 북한외교를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 체제를 엄호하며 이끌고 있는 수단이 비록 “폭탄과 폭군”이라 야유해도, 한반도 주변 4대 패권국에 맞서 저항하는 북한은 ‘군사적 저항제국’ 혹은 ‘외교적 대항제국’이란 입장에서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정부가 일본과의 독도문제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한다면 북한의 외교술이 아무리 마키아벨리적인 요소가 강하더라도, 외교의 본질이 국가생존이란 측면에서 해석된다면, 북한의 대미, 대중, 대일, 대러 외교를 한번쯤은 관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수구적 메카시즘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면, 북한의 전위적 홍군이 되는 것도 경계의 대상이다. 극단적 평가를 하게 되면, 외교에선 그 순간 국익의 포션을 차지할 능력 또한 스스로 봉쇄하고 만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외교란 그렇다고 본다.

▲ 실제로 북한이 미국에 대해 체제 위협을 느낄만한 어떤 이유 즉, 미국의 움직임이 한반도에서 펼쳐지고 있는가?

-지난 3월말 RSOI훈련(팀스피리트 대체훈련)이 실시될 때, 주한미군가족의 일본대피훈련도 실시됐다. 그 과정에서 페리호(일반 여객선)가 자신을 경호하던 미군 잠수함과 충돌하여 연습도중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당시 언론들은 무슨 돌고래떼를 만나서 그랬느니 아니면, 물개떼와 충돌을 하여 그랬느니 하는식의 아주 짤막한 보도로 처리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디 이런 일이 몇 줄도 안 되는 단신으로 처리할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군이 왜 남한에 살고 있는 주한미군 가족들을 해상에서 대피훈련까지 시키고 있겠는가?

더구나 이런 문제를 북한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안보센서가 정지될 만큼 무감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고 지내는 것이 남측의 일상이라면, 전국토의 요새화를 이루고 있는 북측에겐 이런 일이야말로 잠못 이루는 비상요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94년 북핵위기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영변에 대한 군사폭격을 단행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그 순간에 당시 레이니 주한미대사는 한국에 있는 미군가족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한바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고, 최소한 북한은 그렇게 해석할 것이다.

▲ 우리 정부와 언론이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무감각하다는 말인가?

-물론 우리 정부는 한미연합사의 한국측 대표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관계가 어느 때 보다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이런 정보를 어느 정도 한국과 공유하고 양국이 협력해 나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매우 심각한 상황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5월초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워싱턴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 워싱턴에서는 전미4성장군회의가 열렸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그래서 주한미군사령관도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 미군에 4성장군이 8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참고할 경우, 왜 이 시점에 전미 4성장군들이 모두 모였을까 하는 점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라크 문제부터 아프카니스탄 문제까지 여러 가지 군사적 현안들이 있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북핵문제도 그중 중요한 한 가지 이슈가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더욱 조짐이 심상치 않은 부분은, 지난 6월초에 토마스 슈와츠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무려 2주간이나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하고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퇴역이후에도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 돌입할 당시 이라크로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는 미사병들을 대상으로 실전교육을 시켰던 경험을 갖고 있고, 현재도 세계 분쟁지역을 순회하면서 실전에 대비한 여러 가지 준비상황을 점검하거나 체킹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인물이 극비리에 방한하여 약 2주간에 걸쳐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의 실전훈련에 참관자로 참석했던 것이다. 이 훈련에는 한국군이나 한국군 관계자가 완전 배제된 채 미군단독 훈련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훈련의 목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훈련의 목적과 타켓은 어떤 것이었는지 한미당국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 정말 의문이다.

▲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런 상황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미국무성은 일단 대화를 통해 그것도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 볼 의지를 갖고 있겠지만, 이 카드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언제든지 독자적인 선제공격의 카드로 북핵시설을 해체할 또 다른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음을 반증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 아니 신앙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펜타곤은 이미 단독으로 북핵시설을 해체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냈을 것이고, 이에 따른 계획도 완전히 갖춰 놓은 상태인 것 같다. 이 문제는 잭 프리처드 미국의 전 대북정책조정관도 언급한 바 있다.

▲ 만일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이 불발로 끝날 경우에는 그 다음 미국의 대응카드는 어떤 것이 될까?

-그 다음 카드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또한 예상하기도 싫다. 9.11이후 미국은 더 이상 생명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 있게 일할 수도, 여행할 수도, 심지어 가만히 집에 머물 수도 없게 되었고, 미국인이 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오래된 가정이 무너짐에 따라 일상적 실존과 위험한 세계를 가르는 경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냉전사가인 존 루이스 게디스는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9.11은 단지 국가 안보의 위기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이 북한 핵에 대해서 느끼는 절박한 위협감과 언제 미국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받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북한의 위기감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태평스런 생각을 몽상가들 수준에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미국은 이 순간에도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예상한 많은 훈련과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최근에 그러니까 6월 20일경으로 기억되는데, 남해에서 미 해군 및 특수부대의 유사시 해군소속 공군 조종사를 구출하는 작전 훈련이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는 한미연합사령관도 참관했다. 북한은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머리털이 곤두설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한국은 50년 동안 미국의 냉전 동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미국유학생들도 자신의 학위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지 미국의 국가전략이나 미국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제대로 된 미국전문가가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주변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을 한번 보자. 그리고 싱가폴이나 대만만 해도 정말 미국연구에 정신이 없다. 우리의 경우는 반미운동문화에서는 매우 선진적이나 지미(知美)의 수준은 일천하기 그지없다. 미국을 연구하면 오히려 비판받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강대국의 본질을 모르면 그것은 곧 식민국가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 어떤 상황이 한반도에서 위기 아닌 비상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얼마 전 주한미군으로 3년간 복무하고 떠난 한 미군이 이런 말을 했다. 주한미군 숫자가 2만 4천명 이하로 내려가야만 한반도내에 있는 주한미군의 외부로의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감축상황을 예의주시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3만 7천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을 경우에는 그 가족들만 해도 10만명이 넘기 때문에 이들을 대피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군인가족의 대규모내지 점진적인 해외이동이 시작되면 북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럼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현재로는 미국의 북한 공격이 쉽지 않다고 본다. 이유는 주둔해 있는 미군의 숫자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북측이 전방에 배치한 장사포의 숫자가 너무 많고 또 북한의 장사포는 지하에 배치되어 있어서 미군이 장사포 기지에 폭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20% 이상을 제거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앞서 말한 전역 주한미군의 전언이다.

북한은 나머지 80%의 장사포로 수도권 포격이 가능하며, 한국군은 나머지 80%를 무력화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공격을 하게 되면 주한 미군은 물론 남한의 수도권 인구 절반이상이 피해를 볼 것이기에 현시점에서 부시대통령이 북측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강경 발언을 계속하면서 북핵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레토릭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군은 실제로는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단계별 전술까지 수립한 것으로 사료된다. 현재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부시대통령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일순간에 자신의 지지를 만회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이라크 문제와 남한내 주한미군의 여러 가지 상황이 아직 부시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런 결심을 굳히게 하기에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인권보호를 외치면서 미군과 한국민의 피해를 자초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북한의 움직임은 바로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가?

-북한이 얼마나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북한은 미군의 이런 움직임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측 인사들은 이미 지난 5월경에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의 가능성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국면을 피해 나가기 위해 6,7월 위기설이 나도는 6월과 7월이란 시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대대적으로 남북교류협력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에 외교적으로 대반격을 한 것이다.

▲ 6자 회담 전망을 낙관하는가?

-북한은 지금 고민할 것이다. 북한의 대미핵전략의 기본 원칙은 부시 공화당 정권 보다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많은 것을 얻겠다는 것이다. 공화당 매파들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와는 시간을 끌면서 다음 민주당 정권이 탄생하길 기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계속 북한이 시간만 끌고 있다는 인식을 6자회담 참가국가들이 하게 될 경우, 북한이 핀치에 몰릴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대남화해 전략을 강화시키면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계속 약화시켜 나가고, 남한을 한미동맹에서 이탈시키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박외교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북한의 대남외교는 연성외교가 주조를 이룰 것이다.

북핵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은 한미동맹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도 얼마전 언급했지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놓여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번 6자회담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북한이 부시행정부를 상대로 핵협상을 해 봐야 아무것도 경제적 혜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남측으로부터 제공하는 경제적 이득을 취해 나가면서 북핵협상을 장기적으로 그것도 부시행정부의 임기가 끝날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6자회담이란 틀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막는 완충카드로 활용해 나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지금 북핵 문제는 한미간 역할 분담이 서서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다.

남한은 당근정책을, 미국은 채찍 정책을 배경으로 가고 있는데 이 정책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면 문제는 심각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고 본다. 정부가 주변국가들과의 동맹관리를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지는 의심이 들지만, 북한 문제를 접근해 들어가는 포괄적 자세에서는 맥을 잡아 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 치밀한 전략과 원칙 그리고 정책과 비전을 통합적으로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액션플랜을 갖고 있느냐 그리고 이런 문제를 결과지을 수 있는 리더십을 키워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일단 정부 정책이 잘 되길 바란다. 6자회담의 운명을 점치기는 조금 이른 것 같다.

▲ 끝으로 한미 동맹문제에 대해 한 마디만 해 주었으면 한다.

-동맹이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자신의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공통의 이해관계, 공통의 적, 공통의 가치 이 세가지를 공유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한미동맹관계를 바라 본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냉전때는 동맹이었지만 반테러전에는 그 동맹의 끈이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다시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 얼마전 미국의 어메리컨 엔터프라이즈 7-8월호를 보는데 워싱턴의 네오콘들은 현 노무현 참여정부를 좌파정부, 반미정부로 그리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시각에도 불쾌하고 실망스러웠지만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우리도 자신들의 동맹관리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한국을 “달아난 동맹국” “우호적으로 이혼할 단계에 있는 동맹”이란 말을 서슴없이 쓰고 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이 더 이상 북한의 위협을 막고 억지하는 기능으로서 그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핵을 제조하는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못하게 오히려 미국의 대북공격을 억지하고 막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게 되면 북한은 반격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3만7천명의 미군과 약 10만에 달하는 그 가족들은 북한 미사일 공격의 사정거리에 들기 때문에 북한미사일 공격의 희생양과 인질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한미동맹을 철회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여 북한을 선제공격해서 더 이상 핵시설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섬짓하지만 이것이 네오콘의 생각이고 9.11이후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안보관이다.

한국은 아직도 미국의 9.11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지금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노무현 참여정부와의 동맹이라기 보다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내 개인적으로 국가간의 동맹의 절정은 미국과 영국 그것도 루스벨트와 처칠이 이끈 두 나라 관계가 최고의 절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41년 처칠이 루스벨트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초대받았을 때였다. 성탄절 무렵, 막 목욕을 끝낸 처칠은 벌거벗은 채로 백악관에 있는 손님용 침실 내부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이 때 루즈벨트가 방문을 노크하였고, 처칠은 들어오라고 이야기 했다. 처칠의 알몸을 본 루즈벨트는 실례했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처칠은 루즈벨트를 붙잡으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보십시요, 대통령 각하, 저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일 이후 두 정상은 단순히 공무적인 관계를 넘어서 아주 친밀한 친구의 우정을 가꾸어 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처칠과 루즈벨트는 서로 협박하지 않고 협력하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결정지은 중요한 네 가지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기 전에 미국이 독일과 싸우고 있던 영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점, 1942년 북아프리카 사막에서의 연합군의 활약, 원자폭탄의 개발과 관리 통제, 유럽의 해방시점의 결정은 이 두 정상의 친밀한 동맹관계가 만들어낸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미 정상에게서 이러한 역사적인 획일점을 그을 수 있는 그러한 생산적이고도 이상적인 동맹관계를 기대해 본다.

(조선일보 / 진중언 기자 2005-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