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움직이는 101인] ‘삼성공화국’ 위력 이건희 1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이 회장은 서울신문이 창간 101주년을 맞아 선정한 ‘한국을 움직이는 101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10개 분야를 통틀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전자와 대형 금융회사 등 국내 리딩컴퍼니를 두루 보유한 삼성의 총수라는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단순한 재벌 2세가 아니라 ‘반도체 신화’ 등을 통해 그룹을 초우량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창업가적 자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란 경이적 경영성과를 올렸으며 국내 수출의 22%(527억달러), 주식 시가총액의 23%(91조원), 세수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이 회장을 1위에 올리기 부담스럽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은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당초 취지에 충실했다.

전체 1위를 놓고 정치와 과학 분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한 노무현 대통령과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경합했으나 결국 이 회장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일반인 설문조사에서 전체 1위를 한 황 교수를 세계적 명성과 향후 발전 가능성 등을 들어 1위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서울신문 / 이효연 기자 2005-7-18)

[단독] 삼성 막강한 정보력… 국회도 움직이나

“삼성이 뛰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 퍼져 있는 속설이다.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력을 갖춘 삼성이 움직이면 삼성에 불리한 법안과 정책의 내용이 바뀐다는 뜻이다. 국회 직원들에 따르면 흔히 국회와 행정부에 대한 ‘대외협력활동’ 분야에서 삼성은 국내 어떤 기업이나 이익단체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삼성의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는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 대외활동의 중추 ‘구조본’=삼성 그룹 대외활동은 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에서 총괄한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물산 등 30여개 자회사별로 2∼5명씩 국회 업무협력팀(일명 연락관)을 가동하고 있지만 이를 총지휘하는 곳은 구조본이라고 한다. 구조본의 기획팀 산하에 있는 ‘대외협력파트’에서 각 자회사 업무협력팀을 통솔하는 체제다.

각 자회사 연락관들이 국회 현장에서 수집하는 동향 정보는 모두 구조본으로 모인다. 구조본 기획팀은 이를 바탕으로 대(對)국회 전략과 활동 지침을 짠다.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상임위라도 의원별로 담당 자회사가 다르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관리하다 보니 효율성을 위해 업무를 분담해 마치 한개 조직처럼 활동하는 것이다.

국회를 출입하는 다른 대기업과 공기업들도 삼성의 체계적인 대외 협력활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 독보적인 저인망식 인맥 관리=삼성의 막강한 정보력은 철저한 인맥관리에서 나온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삼성은 1년에 한번씩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상대로 인맥조사를 한다.

이렇게 수집된 인맥은 그룹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된다. 직원들이 정·관계 지인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 뒤 다음날 대화 내용을 서면보고하면 회사에서 회식 비용를 대납해줄 뿐만 아니라 인사 고과에도 반영한다. 구조본은 이런 인맥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서 삼성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 관련 인맥과 정보를 총동원해 대응전략을 수립, 집행한다.

그룹의 자체 ‘맨 파워’가 워낙 뛰어나 정·관계 인사들은 대부분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에 걸린다고 한다. 17대 국회의 경우 386 초선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많아져 초기에는 인맥을 쌓는 데 고생했지만 지금은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는 게 다른 대기업 연락관들의 귀띔이다.

최근 삼성이 법조인과 언론인, 관료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는 것도 대외활동 인맥 풀을 넓히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취재 중 만난 우리당의 한 보좌관은 “이러다가 18대 국회에서는 삼성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고 삼성의 인맥 파워를 우려했다.

◆ 인맥을 통한 조용한 로비=삼성의 인맥 정보는 특정 사안이 터졌을 경우 ‘전략지도’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삼성 구조본의 인맥 데이터베이스에 ‘금산법’을 키워드로 치면 이 법안과 관련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세밀한 신상 정보와 최근 동향은 물론 그룹 임직원들과의 연고가 모두 뜬다고 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해당 의원이나 보좌진이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은밀하게 삼성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 ‘금산법 개정안’을 발의한 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동료의원이나 지인들로부터 ‘삼성과 싸워 좋을 일 없다’는 충고를 듣곤 했다”며 “삼성이 간접적으로 뜻을 전해온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모 이동통신사의 연락관인 K씨는 이런 삼성의 활동에 대해 “(삼성은) 들키지 않고 꼭 필요한 지점만 타격하는 스텔스기 같다”고 비유했다.

◆ 실패한 로비 사례=로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국세청 국정감사 당시 민노당 심상정 의원은 이건희 회장 장남 이재용씨의 탈세 혐의를 지적했다. 한 보좌관은 “당시 심 의원의 질의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삼성 국회 담당 직원들이 윗선으로부터 박살났다는 이야기를 삼성측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노동부 삼성SDI 특별조사 백서’를 발간한 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삼성이) 우리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처음 문제 제기를 한 뒤 의원회관 주변에는 “238호실(우 의원실)이 삼성 사람들로 문턱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이에 한 보좌관은 “하도 귀찮게 하길래 올 2월 쯤 전화통화 때 ‘너희들이 뭘 하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하지 마라’고 했더니 그 이후로는 발길을 끊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 / 김동진·이철호 기자 2005-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