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서로 포용… 동강 난 허리부터 이어야

황칠복(85) 재일본 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 고문과 한욱수(75)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고문이 고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각각 일본 내 민단계와 총련계를 대표해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IIFWP)과 재일본 평화통일연합이 주최한 ‘제2회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13일)와 ‘임진각 통일기원대회’(14일)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숙소인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두 사람을 만나 재일동포 사회의 근황과 조국 통일에 대한 재일 한국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요즘 남한과 북한의 변화한 모습에 대해 느낀 점은.

▲황칠복 고문=남한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친북은 아무리 해도 나무라지 않겠지만, 반미는 안 된다. 과거 한국전쟁 때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은 온전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반미감정은 경계해야 한다.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장기적으로 남북한 모두에게 유리할 것이다.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보면 과거보다는 확실히 북한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분명 북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변화한 점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몇 년 전 일본인을 북으로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탈총련화가 심화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현재 상황을 말해 달라. 총련에서 탈퇴하면 바로 민단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건지.

▲황 고문=총련에서 탈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민단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재일동포 수가 63만명 정도인데, 민단 통계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총련 통계는 일본 언론 등에 대략 7만명 정도 나온다. 이 중 회비를 내는 회원이 3만∼4만명 정도라고 하니, 갈수록 조직을 꾸려나가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현재로썬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총련을 어렵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총련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고문=공화국(북한)에서 일본인을 납치해 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일본에 있는 동포들이 북한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간부들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혼선이 있었다. 그러나 총련 조직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총련은 지금까지 재일동포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누구보다 용기 있게 일본 정부와 맞서 왔다. 우리는 일본에서 살아오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 지금 조금이나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모두 우리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워 획득한 권리이다. 외국인 등록할 때도 손가락 지문을 찍는 것에 대해 인권 침해 이유를 들어 거세게 항의를 한 결과 없어진 것이다. 60년대까지는 총련계의 상황이 좋았고, 민단 조직보다 앞서 있었다. 그 당시엔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다지 경제력에 차이가 없던 때이기도 하다. 총련은 얼마 전 오사카에 35억원을 투자해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바 있다. 지금도 그 여력이 남아 있다.

―지난해 7월 민단과 총련의 화합과 중재자 역할을 위해 재일본 평화통일연합이 창립된 바 있다. 그 취지와 활동에 대해 평가해 달라.

▲황 고문=총련이라는 단체는 어디까지나 혼이 있다. 그건 바로 공산주의 사상이다. 그 사상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묶인 조직이다. 반면 민단은 감정적인 반공을 말할 뿐이다. 이론이 없기 때문에 혼이 없다고 본다. 가령 총련이 와해된다고 해도 분명 끝까지 남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단은 그런 면에서 정신적 구심점이 없고 결속력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민단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평화통일연합의 출범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한 고문=지난 4월에 평화통일연합을 처음 접했다. 그러면서 평화통일연합의 모 기관격인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을 알게 됐다. 초종교초국가연합은 북한의 남포라는 곳에 평화자동차 공장을 소유하고 있고 금강산 관광개발에도 힘을 쏟는가 하면, 북한주민에게 식량도 대량 보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탄복했다. 우리가 무조건 반대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닫게 된 것이다. 총련도 평화통일연합이 생기는 데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앞으로 평화통일연합이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본다.

―아무런 분계선도 없는 민단과 총련도 60년 넘게 하나 되지 못한 채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데, 국경을 그어 총칼로 맞서는 남한과 북한의 통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민단과 총련이 먼저 통합하고 결속하는 통일의 모델을 보여줄 수는 없는지.

▲황 고문=남북은 국경이 달라 서로 오가기 힘들지만, 민단과 총련은 아래위층에 살고 있을 정도로 사실은 가까운 사이다. 민단과 총련이 하나되는 법을 찾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기만 할 게 아니라 잘 키워야 아이가 잘 자라는 것처럼 서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평화통일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고문=총련과 민단이 있다고 하지만, 60년대 이후는 대부분 민단이라고 보면 된다. 총련 조직은 많이 약화됐다. 문제의 사안에 따라 총련과 민단이 공유하는 부분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민단과 총련이 하나되는 데 평화통일연합이 적기에 촉진제가 돼준 셈이다. 평화통일연합을 가교 삼아 총련과 민단이 서로 존중해가며 같은 민족으로 더욱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힘쓰겠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남북 지도자들과 동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황 고문=남이 북을 이해하고 북이 남을 이해한다면 통일이 되는 거다.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양쪽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모든 것을 초월해 우선 하나가 되길 바란다. 마치 이념이 달라도 재일동포들이 일본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불편함 없이 살듯이, 통일된 조국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리 안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민족의 동강 난 허리를 잇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한 고문=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길은 누가 뭐라 해도 통일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해야 한다고 본다. 오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와야 한다. 총련 간부들도 그렇게 바라고 있다. 일단 와서 뭔가를 풀어나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본다.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절대 쉽사리 넘어가거나 단번에 용서할 일이 아니다. 일본은 한때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나라다. 여기서 물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민단이나 총련이나 모두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황 고문도 한 고문의 말이 옳다고 적극 거들었다)

사회 정성수 차장, 정리 김보은

(세계일보 2005-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