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왕국 가야史의 비밀을 밝힌다

"나는 이제 하늘의 음성을 들으러 구지봉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 경남 김해시의 적극 지원으로 부산일보에 연재소설 '제4의 제국' 을 쓰고 있는 작가 최인호가 지난 10일 옛 금관가야의 수도 경남 김해를 찾았다.

김수로왕비릉 파사석탑 구지봉 김수로왕릉 호계사 터 등을 다시 취재했다.

"몇 차례나 왔고, 자료도 반복해서 읽었지만 오늘 유적들은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 12일 현재 209회가 연재된 소설은 가야사의 심부에 닿으려는 '오디세이아의 여정'을 이어왔다.

소설은 처음 대성동고분군, 특히 제 13호 고분(목곽묘)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대성동고분군을 조성한 지배집단을 궤멸시킨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의 남정(南征)과 연관해 고구려로 옮겨갔고, 다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김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일본에 건너갔던 것은 가야의 꼬리이자 일본사의 머리를 쓴 것이고, 이제 김해로 돌아온 것은 가야의 시작(머리)을 쓰기 위해서이다.

" 그가 밝혀낸 것에 그 자신도 놀랐다.

"가야와 왜는 한왜연합왕국 이었다는 사실이다.

가야가 궤멸하던 시기에 무려 100만 명 이상 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과학적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가야와 왜가 관계없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넘어갔겠는가?" 그들은 규슈 의 세스(攝津)·가와치(河內) 지역에 들어가 하내국(河內國)을 세웠고, 이윽고 긴기(近畿) 지역으로 진출해 야마토정권의 토대를 만들었다.

큰 그림을 보면, 가야 유민들이 민족대이동을 해서 일본 고대의 토대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서기 16대왕인 인덕천왕의 능은 일본 최대의 고분이다.

그는 가야인들의 민족대이동을 완성시킨 실질적인 군주였다"고 했다.

그 앞의 응신천왕(일본서기 15대왕)은 민족대이동의 기초를 놓은 군주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원을 따져보니 김해 대성동 13호 고분은, 응신과 인덕의 선조로 기록된 숭신천왕(일본서기 10대왕)의 묘라는 추론이다.

이는 그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기마민족정복설의 권위자인 작고한 일본 고고학자 에가미가 주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야 유민이 하세족(土師族)을 이뤘다는 등의 구체적 증거 자료는 그가 처음 밝혀낸 것이 많다.

"그 과정에서 일본 스모의 기원이 옛 가야에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었다.

따져보면 '가야'(경남)에서 이만기 강호동 등의 씨름장사가 나왔지 않은가?" 그는 " 이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로맨스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가야는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탄생했다.

그 절묘한 조화가 김수로왕과 허황옥 로맨스의 핵심이다.

" 앞으로 소설은 불교의 새(鳥)인 가릉빈가처럼 허황옥의 체취를 찾아 인도로 훨훨 날아가고, 삼국사기가 고구려로 고착시킨 불교의 첫 전래 역사를 가야로 뒤바꾸는 시도도 하면서 가야사의 첫머리를 장엄하게 열어나갈 것이다.

작가는 이 날 김수로왕릉과 김수로왕비릉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부산일보 / 최학림 기자 2005-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