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08 논술입시' 파문 확산

서울대의 2008년도 통합교과형 논술고사에 대해 당정이 이를 본고사로 규정하고 법제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고 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7일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도 논술과 본고사를 구분하는 가이드 라인을 조속히 마련해 대학 측의 협조를 유도키로 하는 등 본격 대응에 나섰다. 반면 서울대는 "대학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반발하고, 한나라당은 당정의 결정을 비난하면서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논술 파문'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최고 학생 뽑는 기득권 위해 고교 공교육 다 망칠 수 없다"

노 대통령, 반대 입장 재확인

노무현 대통령은 7일 서울대의 2008학년도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도입안과 관련, "대학입시에서 대학 입장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 고교 공교육을 파괴하고 아이들을 다 죽이는 학습 열풍, 과외 열풍이 되살아나서는 안 된다"며 당정의 반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중앙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뒤 "왜 본고사가 꼭 부활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학에 권하고 싶은 것은 1000분의 1의 수재를 꼭 뽑으려 하지 말고 100분의 1의 수재를 데리고 가서 교육을 잘할 생각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고를 뽑는 기술을 가진 대학이 아니라 최고로 잘 가르치는 대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대학이 1등부터 1만 등까지 줄을 세워 학생들을 뽑아서 국가경쟁력 평가에 나온 우리 대학 경쟁력이 세계 몇 위냐"고 반문한 뒤 "그래서 대학은 교육도, 시험도 다양화하고 2008년엔 대학교가 내신과 수능을 중심으로 하되 과목별로 특성화하도록 다 열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데 꼭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로 갈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몇몇 대학이 최고 학생을 뽑아가는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고교 공교육을 다 망칠 수는 없다는 게 확고한 정부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서울대 등 우리 대학교의 서열화와 기득권 구조, 그 기득권적 사고가 어느모로 보나 나머지 정책에 대해서 너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9개 교육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논술과 본고사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고 대학들이 협조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늦어도 다음달까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다. 김 부총리는 "새 대입제도로 교육의 중심이 학교 밖에서 학교 안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학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서울대 총장 "입시안 오해 풀고 싶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학입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서울대 입시안 저지 움직임을 일축했다. 정 총장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지침을 주려고 발표한 입시안이 오히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유감"이라며 "서울대의 입시정책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못해 사회 일각에서 오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교과형 논술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연구 중이며 교육부와 협의해 국민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좋은 안을 마련하겠다"며 "사회 일각에서 갖고 있는 서울대 입시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자신의 사임을 촉구하는 교육계 및 여권 내 일각의 목소리와 관련, "물러나라면 물러나야지. 서울대 총장이 직선제로 선출되기는 하지만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총장은 "교육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자율적으로 학생을 공정하게 선발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며 "서울대가 지식 전수자에서 지식 창출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나름대로 옳은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등주의 교육 강요 나라 망쳐"

한나라, 학생 선발권 확대 법 개정안 내기로

한나라당도 7일 서울대에 대한 당정의 결정에 대해 "과거 권위주의 시절 행태"라며 서울대를 거들고 나섰다. 임태희 교육선진화특위 위원장은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공교육을 붕괴시킬 정도의 본고사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장악한 뒤 평등주의 교육을 강행해 나라의 미래를 망치려는 것에 분명히 반대하며 이런 분별없는 행태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 때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조문을 삭제하고 2012년 본고사 허용 등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정부.여당이 서울대를 압박하고 있는 것과 관련, "어떻게 서울대가 여당 의원이 초동진압을 해야 할 대상이 됐단 말이냐"며 "현 정부가 새로운 주적으로 '서울대'를 지목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정부.여당이 총 출동해 서울대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치로 돌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 최훈.김남중.박성우 기자 2005-7-8)

서울대 교수협, 대학정책 비판 성명

연세.고려.서강대는 교수성명 계획없어

서울대 교수들이 정부여당의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안 철회 방침과 관련, 8일 현 정부의 대학정책 등을 전면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서울대 입시안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이날 `서울대 입시안을 두고 벌어진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번 파문에 대한 정부 및 정치권의 대응 방식과 정부의 공교육 및 대학교육 관련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교수협의회는 성명에서 "공교육은 마땅히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교육의 문제를 사회적ㆍ정치적 문제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공교육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협의회는 지나간 한 세대에 걸쳐 누적된 교육정책의 오류가 낳은 결과가 지금의 교육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대학입시가 교육불평등과 학력사회의 총체적 원인이라고 보는 전도된 인식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정책을 집행하고 정치담론을 이끄는 정치인들이 최소한의 품격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한 대학교의 입시안을 두고 군사용어를 남발하고 `손을 봐야 한다', `조져야 한다'는 식의 폭력적 언설을 쏟아내는 것은 국정을 이끄는 막중한 위치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대학은 국민이 지지하고 국가가 보호ㆍ육성하며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사회제도"라며 "정부여당은 계층ㆍ세대간 갈등 심화, 경제 침체, 민생 피폐, 사상 최악의 취업난 등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를 바로잡는 데 매진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대학 교수협의회 등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대학입시에서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피력했다.

임상우 서강대 교수협의회장은 "아직 이번 서울대 입시계획 논란에 대해 교수협의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이번 사태는 본질적으로 `본고사'라는 단어를 둘러싼 `언어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행 주체인 대학은 `논술고사'지 `본고사'가 아니라고 밝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본고사'라고 하니 국민들은 동요하게 되고, 또 정부는 국민이 동요하니 대학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수능시험과 내신만으로는 도저히 학생을 선발할 수 없어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해 학생선발의 변별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눈감고 학생 뽑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서울대의 입장을 지지했다.

권오웅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연세대 교수들의 여론이 형성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교수평의회 이름으로 성명을 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다만 개인적으로는 국공립대학은 공공기관이니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맞지만 사립대는 사적인 기관이므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려대 교수평의원회 의장인 배종대 교수(법학)는 "서울대와 교육부가 싸우는데 우리가 왜 끼어들겠느냐"고 말해 성명 발표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한편 전국교수노조는 이날 `앞뒤가 안 맞는 교육정책과 국민을 배신한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교육당국과 서울대를 싸잡아 비판했다.

교수노조는 "대학교육은 출혈경쟁을 강요하면서 중등교육은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이를 조화시킬 입시정책을 찾기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들이 개혁을 향하고 있으면 교육부문도 큰 틀에서 개혁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 임화섭 양정우 기자 200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