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고령 대가야

경북 고령군 나서 고분·유적 새단장
가야 체험축제엔 전국서 12만 몰려

6세기 중엽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대가야(大伽倻·42∼562년)가 1500여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대가야의 옛 도읍지인 경북 고령군은 최근 대가야 왕과 왕족들이 묻혀 있는 지산동 고분군 등 각종 유적들을 찾아내 가야 문화를 재현하고 있다. 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고령군 주산(主山·해발 311m)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대가야 박물관’. 지난 4월 2일 4026평 규모로 문을 연 박물관에는 하루 평균 500여명(평일), 주말 평균 20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과거 ‘왕릉전시관’만 있을 때보다 4∼5배 늘었다. 박물관 개관과 함께 시작된 ‘대가야 체험축제’ 때는 전국에서 4일 동안 12만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박물관 뒤를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주산에는 남동쪽으로 뻗은 줄기를 따라 봉우리처럼 솟은 무덤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닥 지름이 20m가 넘는 대형 무덤 5기를 비롯해 봉토가 확인되는 무덤만 200여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형 무덤들까지 보태면 2000기가 넘는다.

능선 중턱에 자리잡은 웅장한 대형 무덤 44·45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순장묘이다. 왕과 함께 묻혔을 순장자들의 석곽이 각각 32기, 11기씩 발견됐고, 접시 등 다양한 토기류와 창, 칼, 화살촉 등 철제 무기류들이 쏟아져 나와 당시의 위세를 실감케 했다. 44호 무덤은 2000년 지어진 ‘왕릉전시관’에 발굴 당시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대가야 고분들은 가파른 산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권력과 위세가 큰 왕일수록 더 높은 곳, 도읍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묘를 썼다. 주로 평지나 낮은 산지 등에 묘를 쓴 신라와 백제, 고구려와는 묘의 입지나 형태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가야박물관 관장 신종환(申種煥) 학예연구관은 “지산동 고분군은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김해의 금관가야, 주로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함안의 아라가야 등 나머지 5가야의 고분들과도 또 다른 독창성을 가지고 있어 가야시대 최고 위계의 고분군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고령읍 연조리 고령초등학교 내에는 대가야 왕들이 마셨던 우물로 추정되는 ‘어정(御井)’이 있고, 왕산악, 박연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리는 우륵(于勒)의 발자취도 있다. 우륵이 가야 12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고령읍 쾌빈리 야산에는 우륵을 기념하는 탑과 영정을 모신 비각이 세워져 있다.

고령군은 앞으로 이 일대를 2007년까지 4만7000여평 규모의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벽화고분체험실, 고분발굴체험실 등 문화체험관과 4D영상관, 가야장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고령읍 고령여자종합고등학교 부지(1만625평)에 유스호스텔, 향토특산물판매장, 문화학교 등을 유치, ‘대가야 문화 밸리’ 조성을 계획 중이며, 고령읍 쾌빈리 정정골에는 ‘우륵박물관’을 2752평 규모로 짓고 있다. 고령군 곽용환(郭龍煥) 문화체육과장은 “고령은 신라문화로 대표되는 경주에 비해 면적,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작고 열악하지만, 문화유산만은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다”며 “신비한 가야문화를 개발해 잊혀진 가야 역사를 다시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최재훈 기자 2005-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