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割符)

어릴 적 참외를 훔쳐 먹거나 하는 서리짓 할 때면 사전 의식을 치르게 마련이었다. 들키더라도 일당의 다른 아이들 이름을 대지 않는다는 다짐의 의식이다. 길바닥에서 새금파리나 오지그릇 파편을 주워 이를 조각 내어 나누어 들고 침을 ‘튀 튀 튀’ 세 번 뱉었던 것이다. 이로써 약속과 신의를 지킨다 하여 할부(割符) 또는 부절(符節)이라 했고 이로부터 양심의 감시를 받았던 토속 정신문화였다.

공주에 있는 5세기 전후의 백제 고분에서 유리 장식품인 관옥(管玉)이 출토되었는데, 묻힌 이 머리맡에서 나온 이 관옥이 반 조각 나 있어 그 쓸모를 두고 의혹이 풀리지 않았었다. 한데 인근 고분에서도 같은 것이 출토되어 이를 맞추어보니 꼭 들어맞는 걸로 미루어, 두 무덤의 부부가 이 유리구슬을 토막내 묻힘으로써 사랑을 영생케 하려 한 베터 하프(반려자)의 증표인 것이다. 이를테면, 혼례 때 신랑신부가 더불어 입을 대고 술을 마신 표주박잔을 맞추어 청실홍실 달아 신방의 천장에 매어 두고 사랑을 보장하고 또 감시하던 한국적 베터 하프의 내세 존재방식이랄 것이다. 이 같은 옥 장식물이나 거울, 단검(短劒)에서부터 사금파리나 질그릇에 이르는 신물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약속과 사랑, 믿음의 불변을 보증하는 할부(割符)문화의 역사는 유구하다.

부여에서 박해를 받고 남하한 고구려 시조 주몽과 그의 얼굴 모르는 아들 유리를 만나게 한 것은 부자가 잘라 가진 단검(短劒) 할부 덕이었다. 신라 진평왕 때 설씨녀(薛氏女)는 늙은 아버지의 군역(軍役)을 대신한 가실(嘉實)과 결혼을 약속하고 구리거울(銅鏡)을 쪼개어 신물로 나누어 가졌다. 6년 세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는 딴데 혼처를 정하고 시집갈 것을 강요했지만 할부를 부둥켜 안고 버텨 거지행색으로 나타난 가실을 맞아 거울을 맞추어 보고서 사랑을 결실한다. 고대 고분에서 반쪽 난 구리거울이 자주 출토돼 왔는데 사후에도 변심 없는 사랑을 보증하고 싶은 고대 한국인의 순박한 마음의 표출이 아닐 수 없다.

백제 고분의 할부 출토는 고대인의 아름다운 사랑 방식의 발견일 뿐 아니라 믿음을 둔 경세(警世)로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조선일보 / 이규태 코너 200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