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사학은 後식민사학”

“해방 60년이 된 지금도 한국사학은 일제가 발명한 식민사학을 부둥켜안고 있다.”

역사학자 이종욱 서강대 교수가 한국사학계가 아직도 일본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국내 주류 역사학자들의 실명을 거명하며 맹비판하고 나섰다. 이교수는 현재 한국사학을 일제 식민사학을 답습한 ‘후(後)식민사학’이라고 명명하고, 후식민사학이 우리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교수가 후식민사학자로 거론한 인물 가운데에는 노태돈(서울대)·이기동(동국대)·주보돈(경북대) 교수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들어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이종욱 교수는 지난 9일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올린 ‘역사해방-우리 교과서를 왜곡시키는 후식민사학을 넘어 본연의 역사찾기’라는 글에서 “현재 일본 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비판하며, 우리는 국가가 주도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 등에는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이 글을 11일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제85회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교수는 식민사학의 대표적 잔재로 현재 역사학계가 여전히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신뢰하지 않고 3세기 이전 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현행 ‘국사’교과서가 4세기 이전 신라의 국가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진한의 한 소국인 사로국으로 기술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교수는 “내물왕 때 진한의 소국들을 정복하였다는 ‘국사’의 주장은 식민통치시기 처음 발명된 것”이며 이처럼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부정하는 식민사학의 연쇄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은폐·말살·왜곡·축소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교수가 식민사학의 발명자로 지목한 인물은 츠다 쇼우키치(津田左右吉). 일본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그는 1919년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上代) 부분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교수에 따르면, 쓰다의 주장은 국내 1세대 역사연구자인 이병도·손진태, 2세대인 김철준(전 서울대 교수)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식민사학의 연쇄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또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지만 ‘한국사신론’ 역시 ‘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내물왕 이전의 신라 정복활동을 무시한 채 기술하고 있다며 이기백 교수 역시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이교수는 나아가 식민사학의 흐름은 제3세대 연구자인 이기동, 노태돈, 주보돈 교수 등에게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신라 내물왕계의 혈연의식을 연구한 이기동 교수나 부(部)체제론을 펼친 노태돈 교수 모두 삼국사기 기록을 무시한 것으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받아들이면 이러한 논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게 이교수의 주장이다. 이교수는 또 2004년 역사학회에 제출된 한 논문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무조건 신빙’한다는 이유로 학회지 게재를 거부당했다면서 후식민사학의 ‘폭력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교수는 그러나 최근 고고학 발굴 성과로 식민사학을 답습한 후식민사학의 연구체계가 허구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이제는 역사학계가 본연의 역사찾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풍납토성 유적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토성 축조시기가 기원전 2세기로 확인되고, 경주 나정에서 8각건물지가 발굴되면서 삼국사기의 신라 건국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이제 한국사학에서 후식민사학은 사학사의 무대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서 후식민사학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사가 살아나는 역사해방을 이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삼국의 출발을 내물왕(신라), 태조왕(고구려), 고이왕(백제)에서 찾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 조운찬 기자 2005-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