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쯔이 만한 여배우 어디 없나요?

“‘장쯔이’ 같은 여배우, 우리나라에는 어디 없습니까?”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해외수출을 겨냥해 ‘태왕사신기’ ‘신돈’ ‘삼한지’ 등 고대 역사물이 속속 준비되면서 제작진이 쏟아내는 가장 절박한 호소다.

극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술과 내면의 섬세한 감성 연기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여배우가 필요한데 그런 국내 연기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태왕사신기’를 제작 중인 청암엔터테인먼트는 “광개토대왕(배용준)의 상대역인 수지니역을 아직 찾지 못해 촬영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청암의 이철희 홍보이사는 “장쯔이형이 적격인데, 답답한 마음에 한때 그녀를 모셔올까 고려했다가 우리말을 잘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지니는 만주 벌판을 휘달리는 여걸로 담덕(고구려 광개토대왕)과 백제 아신왕이 동시에 사랑하는 삼각관계 속의 여인이다.

MBC가 삼화프로덕션과 함께 준비 중인 대하사극 ‘신돈’에도 수지니역과 비슷한 자질을 갖춰야 하는 노국공주 역이 설정돼 있다. 노국공주는 몽골족 출신으로 칼을 잘 쓰고 말을 잘 타며 사냥에도 능한 섬세하고 지략있는 여인상이다.

MBC ‘삼한지’를 준비 중인 올리브나인도 무협과 감성연기에 능한 비슷한 종류의 여자 주인공을 설정할 예정이어서 ‘무협 여배우 기근난’에 연출자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요즘 드라마가 가장 두터운 잠재 시장인 중국의 시청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보니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는 필수이고 자연스레 이러한 배역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장쯔이 같은 배우는 국내에 없는 게 현실. 영화 ‘형사’를 촬영 중인 드라마 ‘다모’(채옥역)의 하지원과 ‘비천무’(몽골인 설리역)의 박지윤도 짧게나마 무술을 훈련시켜 만든 캐릭터다.

이같은 여성연기자 기근 현상은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기형적인 시장구조에서 기인한다. 신인연기자들이 탄탄한 연기력을 다질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여성연기자들은 연기가 되면 액션이 안되고, 액션이 뛰어나면 연기가 안되거나 스타성이 없기 일쑤다.

장쯔이는 원래 무용을 전공한 배우였다. 하지만 무용을 했다고 무술로 쉽게 연착륙한 게 아니라 숱한 훈련 끝에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무협에 자질을 보이는 기존 연기자와 신인들을 발굴해 집중 훈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MBC ‘신돈’ 연출자인 김진민 프로듀서는 “‘남자배우=무협·액션’의 등식이 사라지고 시대적 여성상이 주도적인 모습으로 점차 변하고 있어 드라마에서도 장쯔이 같은 자질을 갖춘 여배우가 갈수록 많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 김정섭 기자 200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