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극복 - 전 세계적 수용, 변용의 장기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의 대국부활은 확실히 세계적.세기적 대사건이다. 헨리 키신저는 19세기 독일통일이 대서양의 균형을 깼듯이 중국의 초대국 등장은 태평양의 균형을 깰 것이라고 했다.

내 판단으로는 키신저도 소극적으로 본 것 같다. 태평양의 균형이 아니라 세계의 균형을 깰 것이다. 다만 강조코자하는 것은 키신저의 접근 같은 '힘의 균형', 제국주의적 힘의 균형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중국문제군’(China Problematiques)이 주는 세계적 영향을 통찰하면, 즉 ‘중국문제국의 세계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시아. 태평양의 지형을 넘는 문명사적 변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가난한 경제대국'이다. 중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1조2,000억달러로 세계 6위, 무역규모가 8,500억달러로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다. 뿐더러 최근 매년 500억달러가 넘는 해외직접투자(FDI)로 세계 1위의 외자도입국이며, 세계최대의 제조업생산센터이면서도 1인당 소득으로는 1,200달러 수준의 개발도상국이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대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세계 도처로의 불법이민과 외국인 저임노동자 수출의 주공급국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경제대국이라면 으레 부자나라를 의미했다. 경제소국이면서 부자나라는 있었지만 경제대국이면서 가난한 나라는 있어본 적이 없다.

이 가난한 경제대국이 부자나라가 되기도 전에 계획대로 2020년 GDP 4조달러, 1인당 소득 3,000달러에 이르고 2050년에 1만달러에 도달한다 해도 이런 성장이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면 그것은 ‘지구적 재앙’이 된다. 이 지구적 재앙이란 표현은 UNEP 사무총장인 클라우스 퇴퍼(Klaus Toeffer)가 2003년 공개강연에서 쓴 말이다. “중국의 경제정책은 현재의 GDP를 4배 증가시키려는 것이지만, 중국이 선진국의 현행 생산 소비양식을 사용한다면 목표달성이 불가능” 하고 그 결과는 "재앙(global disaster)"이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미 소득 1,000달러 수준의 경제에서도 공급면에서는 철강, 시멘트, 비료, 전자, 섬유제품에서 세계 1위이며, 수요면에서는 철광석, 석유, 석탄 광물, 곡물의 세계적 가격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소득 1,000달러의 중국으로 해서 세계 원료공급과 제품소비와 물류의 지형이 변경되고 있다. 소득 1,000달러 수준의 생산, 소비 행태에서도 이미 세계 2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국이며,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번시(本溪) 지역)과 두 번째 해양오염(발해만)지역이며 물 부족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샹하이(上海)시 에너지환경위원장인 센진하이가 2004년에 한 말이 중국의 ‘가난한 경제대국’의 한계를 잘 지적했다. “만일 현행 패턴대로 지속한다면 중국경제는 두 배 성장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쩌면 화성이나 다른 행성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근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공급대국이 수입대국으로 전환하면 반드시 세계적 파동이 인다는 것이다. 세계최대 석유수출대국 미국이 석유수입국으로 그것도 최대수입국으로 정착되면서 1973~1974년의 1차와 1979-1980년의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유럽 최대 곡물수출국이었던 소련이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하면서 1980년대 곡물파동이 일었다.

둘째는 게르셴크론(A. Gerschenkron) 교수가 후진국개발론에서 제기한 것처럼 개발단계가 후진국일수록 소비는 선진수준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교훈을 중국에 적용하면 중국이 예정대로 2020년까지의 소강(小康)과 2050년의 대동(大同)을 성공하려면 전(全) 세계적 규모에서 새로운 기술, 새로운 관리시스템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에너지 소비, 대량자원 투입, 대량물류, 대량교통, 대량인구이동, 대량군비, 거대도시화, 대량오염 배출, 대량쓰레기 배출의 방식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 새로운 에너지와 물, 환경(대기, 수질, 쓰레기 처리), 도시, 교통의 기술개발과 관리시스템에 관한 새로운 혁명이 나오지 않는 한 소강과 대동은 없다.

더구나 중국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주의를 공식이념으로 하는 세계최대 그리고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다. 공산당 최고지침인 2004년 1월5일의 3호 문건(“철학과 사회과학을 번영시키는데 관한”)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 지도적 지위를 견지하고 “철학과 사회과학은 당(黨) 위원회가 통일적으로 관리한다”고 돼 있다.

13억명의 중국인이 근대에 편입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서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가 미국을 거쳐, 일본.한국 등 네 마리용을 거쳐 아세안(ASEAN)에 이르고 이제 중국으로 상륙했다는 근대 ‘흐름’의 연장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지금 지구상에 1인당 소득 1만달러 이상의 성공한 근대 경제성장 국가의 인구를 전부 합쳐도 9억명에 불과하다. 이 9억이 230년의 세월을 거쳐 이룩한 근대 산업화와 근대사회가 지구적 차원의 근대문명을 만든 것이다.

이제 13억의 중국이 교육받고 정보화하고 근대 경제성장에 참여한다 함은 (그것도 가장 빠른 속도로) 지금까지 근대화 성공국가들의 과정과는 규모, 범위, 깊이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중국의 계획대로 13억의 인구가 반 세기만에 근대적 대동(大同)을 성취한다 함은 지금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거나 지구적 재앙으로 끝장이 난다.

‘가난한 경제대국’ '세계에서 유일하고 역사상 가장 큰 공산주의국가' ‘잠깬 중화주의’를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변용.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그것은 불가피하게 중국 자신과 세계의 동시적 변용, 변혁, 혁명을 의미한다.

첫째, 중국이 변해야 한다. 공산주의 정치를 버려야 하고 성장 제1주의, 가족해체, 도시화 위주의 성장패턴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13억 시민 최소의 복지 필요, 생명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는 경제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물, 도시, 교통, 환경 분야에 대안적 기술, 대안적 시스템 개발에 장기적, 세계적 협력체제(특히 선진국 참여)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선진국도 욕구가 아니라 필요로 소비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셋째, 중기적으로 에너지, 식량파동 예방을 위하여 에너지, 환경, 노동력 이동에 관한 부분적 또는 지역적 또는 지구적 공동관리 체제를 마련해야한다.

넷째, 중국문제군에 이어 ‘인도문제군’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이제 지구적 차원에서 40억 인구의 ‘중국-인도문제군’(히말라야권 문제군) 극복을 위한 문명의 변용, 근대의 종식, 근대의 극복, 초월이라는 사명감이 절실하다. 선진권은 히말라야권 문제군을 외면, 배척하지 말고 포용해야 한다. 우리 한국은, 우리 동북아시아는, 우리 인류는 진정한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했다.

역사적 위협, 즉 군사적 위협, 제국주의적 위협, 중화주의적 위협도 상정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근대화에서 오는 ‘가난한 경제대국’ ‘근대화된 늙은 중화주의’ ‘세계 유일의 마르크스주의 대국’이 빚은 큰 모순 때문이다. 정보화하고 교육받은 13억 중국인이 어떤 욕망을  분출할 것인지를 모르는데서 오는 위협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초 홍콩에 들러 '선진국은 중국의 경제개발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실패하면 2억의 보트피플이 태평양을 배회할 것인데 세계가 평화롭겠느냐'고 협박했다. 중국은 가난해도 세계의 위협이고, 선진국을 따라 근대화에 성공해도 세계의 위협이다.

이것이 인구팽창, 교육, 민주주의, 시장, 세계화라는 근대 300년이 만든 근대의 자기모순이다. 근대문명은 중국까지 근대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으로 해서 스스로 변용하지 않으면 근대의 생명이 위협받는 단계에 왔다.

우리도 변하고 중국도 변하고 세계가 같이 변해야하는 운명사적 대변혁기에 왔다.

<김진현 /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전(前) 서울시립대 총장>

(업코리아 2005-6-2) 

[칼럼]  미국과 중국을 넘는 세계질서

부채 적자공포의 균형 언제까지 유지될까

우리 모두는 위기에 처했다. 20세기 후반 이후 빈곤인구 비중은 줄어가고 소득은 늘어나고, 보건 위생이 개량돼 인구도 늘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종합적으로 보면 현재 62억, 40년 뒤 90억명에 이를 인류의 자유와 안전을 지속시킬 세계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깊은 불안이 있다.

우선 제2차 대전 후 오늘까지의 세계질서를 지탱해온 미국의 내부 분열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 포드와 레이건 대통령에 걸쳐 백악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B. 스코크로프트 박사는 '건국 이후 외교문제를 놓고 국론이 이렇게 분열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라크, 북한 핵, 중국, 유럽, 중동 정책, 심지어 볼턴 UN대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1월 W. 페리 전(前) 국방장관과 스코크로프트 박사는 똑같이 '로마제국 이래 최대 제국이 됐는데 그 힘을 어떻게 쓸지 모르는 게 오늘의 미국이며, 어쩌면 이런 무지가 세계평화에 기여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9.11테러는 '악의 축'을 중심으로 한 대(對)테러전쟁으로 힘 쓸 곳을 인도해준 셈이 되었다.

위기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을 비난하는 소리에서도 세계질서의 대안이라 할만한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G. 소르망이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프랑스가 하는 일은 반미(反美)와 돈벌이” 뿐이라고. 질투, 무지, 이기심에 의한 반미는 넘쳐나는데 새 세계질서의 책임 있는 모색, 이를 합의.실천하기 위한 희생적 주도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게 진정한 세계위기다. 50년 만의 아시아-아프리카 반둥회의, 남미-아랍 정상회의, UN, 아세안+3(ASEAN+3),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제통화기금(IMF), 월스트리트, 비정부기구(NGO), 그 어느 것도 책임과 신뢰 있는 21세기 세계질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중국이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성장과 개방으로 인한 세계편입(入世)는 아시아의 균형을 깼고, 곧 세계의 균형을 깰 듯이 보인다. 19세기 독일 통일이 대서양의 질서를 깼듯이 중국의 강대국 등장은 태평양의 질서를 깰 것이다. 이미 세계 제조업 중심지이며, 철강, 시멘트, 자전거, TV 생산에서 세계 1위, 자동차생산 5위에다 핵폭탄과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군사강국이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과 개방의 궤도에 들어섰기 때문에 오는 위험 역시 상상하기 힘들만큼 크다. 샹하이市 센진하이 에너지환경위원장의 말마따나 중국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려면 '화성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 만큼 절박한 지구적 에너지 문제와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K. 퇴퍼가 '지구적 재앙'으로 표현한 중국의 환경악화 그리고 극단의 남녀성비(性比) 불균형과 가족파괴, 인구 대이동과 도시화 급증은 공산당 일당이 통치하기엔 너무나 버겁다. 중국의 세계화는 '중국문제군(問題群)'의 세계화일 뿐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일종의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서 8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얻어 일본.한국.아세안으로부터의 적자를 메꾸고도 400억달러 흑자를 내고 있다. 미국과의 흑자를 담보로 세계 최대 외국투자유입국이 되고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대신 중국은 2,000억달러의 미(美)재무성채권(TB)를 사줌으로써 미국의 사상최대 무역.재정적자를 메꾸는데 조력하고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중국의 30% 부실금융 모두 감당키 어려운 부채이다. 세계최대제국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잠재적국 또는 경쟁국이면서 부실금융대국인 중국 돈으로 메우는 역사상 유례없는 실험, 부채공포의 균형, 제도화되지 않은 안보와 경제의 순환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미국도 중국도 답안이 없다.

미국의 예외주의, 중국의 중화주의를 넘는 새 세계질서가 나올 수 있을까. 못나오면 무엇이 기다리는가. 국익보다 인류를 국민보다 지구를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기는 아직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국익과 함께 세계질서를  자기만이 아니라 지구생명도 같이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업코리아 2005-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