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광개토대왕비문 이렇게 조작했다”

전북대 김병기교수 주장
‘渡海破(도해파)’ 정상적 빕문과 달라
원래 글자는 ‘入貢于(입공우)’ 추정

김병기(51)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의혹을 서예학적으로 밝히고 원래의 글자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학고재)를 통해, “일본에 의해 조작되어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인용되고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했던 광개토대왕 비문을 서예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조작임이 뚜렷하며 원래의 글자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신묘년 기사는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그동안 일본쪽이 통설이라고 주장해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해 왔다. 그런데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부수어 (일본의)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돼 왔다.

이 가운데 ‘渡海破(도해파)’가 조작 의혹을 받는 글자.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탁본에 찍힌 ‘渡’자의 윗부분 가로 세 획이 아래로 갈수록 오른쪽 끝부분이 짧고 오른쪽으로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으며, 이는 중첩 가로획은 각획이 수평을 이루며 각 획의 길이는 가지런하거나 아래쪽 획이 약간 긴 정상적인 비문체와 다르다. 또 ‘海’자의 어미 ‘母(모)’ 세로획이 모두 안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이는 모든 자형이 기본적으로 정사각형 또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이며 가로획은 수평, 세로획은 수직인 비문서체의 성격과 어긋난다. ‘破’자에서도 직선이어야 할 ‘石(석)’의 두 번째 획이 굽어있고, ‘皮(피)’와 ‘石’의 윗선이 가지런해야 하는데 ‘皮’가 ‘石’에 아래로 처져 있다.

김 교수는 조작 당시 서체를 모르는 자가 당시 유행하던 예서체 방식을 따라 변조하면서 드러난 현상으로 추정한다. 또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는 탁본인 사코본에서 ‘渡海破’ 글씨가 눈에 띌 만큼 비뚤어져 있는 것도 유력한 조작의 증거로 꼽았다. 이는 세로 방향으로 계선을 넣어 세로줄이 정연하게 맞는 비문의 장법과 어긋난다. 결국 기존 글꼴을 토대로 글자를 변조하면서 드러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 원래의 글자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渡海破’의 원래 글자가 ‘入貢于(입공우)’라고 추정한다. 각각의 글자를 겹쳐보면 기존의 획과 모양을 이용해 변조한 행태가 뚜렷이 보인다는 것.

그는 서예학적 접근 외에 문장구조를 분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屬民(속민)’과 ‘臣民(신민)’. 속민은 ‘현재는 분리되어 있지만 동족 관계인 나라’를 지칭하고 신민은 ‘복종의사를 밝혀온 나라 또는 집단’을 가리키는 일반용어임을 밝히고, ‘渡海破’를 ‘入貢于’로 대체한 문장이 ‘而(이)’를 중심축으로 완전한 대칭구조를 갖는 완벽한 문장이 된다고 말한다.

‘百殘新羅-屬民-由來-朝貢 <而> 倭-臣民-以辛卯年來-入貢’. 복원한 신묘년 기사는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을 해 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00와 신라에 대해 조공을 들이기 시작했으므로, (고구려는) 왜도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한다.

김 교수는 1982년 대만의 한 책방에서 광개토대왕 비문 탁본집인 <호태왕각석>이란 책을 발견하여 글자의 모양에 반해 여러 차례 임서하면서 ‘渡海破’ 부분에서 붓이 멈추는 기현상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 임종업 기자 2005-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