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역사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국내 다카우와 부헨발트 등지에 있었던 유태인 처형장과 수용소들을 복원했다.

사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도 정치지도자들이 수시로 찾아 깊은 반성을 하곤 한다.

전쟁 당시 피해를 입었던 옛 동구권 국가들과 민간인들에게 수십년에 걸쳐 물질 적인 보상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죄와 보상이라는 기본 정신이 깔려 있기에 역사교과서도 솔직하다. 역사 교과서가 던지는 질문은 직설적이다.

"당신의 고향에서 유대인 사람들은 어떤 운명에 처했었는지를 기술하라"하는 식 이다.

역사를 속이면 또 한번 역사에 속게 된다는 사실을 그네들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독일은 프랑스와 폴란드는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체코 벨기에 등 국가들과도 역사와 지리교과서를 공동집필하고 있다.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끼리 역사를 보는 시각에 큰 편차가 없고, 아울러 후세들에게 과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고민은 별로 없는 편이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은 해가 갈수록 한ㆍ일 간의 갈등 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급기야 올해는 극우적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내놓더니,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시네마현은 '독도의 날'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ㆍ중ㆍ일 세 나라의 역사연구가 54명이 4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최근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이름의 부교재를 내놓았다.

편협한 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역사의식을 담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몇몇 쟁점들이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하나, 처음으로 역사인식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크게 평가받을 만하다.

아직은 부교재로 출간됐지만, 머지않아 독일처럼 국경을 넘어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목처럼 미래의 역사를 열기 위해서 말이다.

(한국경제 / 박영배 논설위원 2005-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