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역사분쟁 중장기 전략 세워야

임기응변식 대처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은 중장기적인 국가전략 속에서 동북아시아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북아시아 세 나라는 역사분쟁을 통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독도 분쟁, 일본교과서 왜곡 파동, 그리고 고구려사 왜곡 문제 등은 역사 연구나 교육이 얼마나 현실적인 국가이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독도문제는 당장 영토 분쟁과 직결돼 있다.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앞으로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 방향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켜 세계 시장에서의 한국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4월20일에 정부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기획단’을 결성했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독도문제나 일본교과서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구를 신설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작년에 중국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정부는 고구려 연구 재단을 발족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매듭지은 적이 있다.

이런 임기응변식 대처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은 중장기적인 국가전략 속에서 동북아시아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동북아시아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은 향후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국가전략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은 전후 패전국 지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고려 속에서 왜곡된 역사지식을 자국민들에게 교육시키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에 대해 중장기적인 국가전략 속에서 체계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미 작년에 세계 10대 무역 강국에 들어갈 정도로 국력이 신장되었다. 정부는 지속적인 국력 신장을 위해 중장기적인 경제발전 전략이나 차세대 과학기술 발전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세워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가고 있다. 인문정책 영역에서도 이처럼 정부가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불필요한 동아시아 세 나라의 감정적 대립을 최소화하면서 국익을 최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세계무대에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첫째, 현재 무시당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문화·전통을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복권시키는 견인차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브랜드 가치를 높여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체계적인 인문연구와 교육은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시켜 국가 결속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는 나라의 안정적 운영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세계무대에 나가 자신있게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우리 시각에서 외국의 역사문화 전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중장기적인 대외 전략을 세우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 기업들이 국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현재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되는 중장기적인 인문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수많은 정부 기구나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에서 이를 책임있게 담당할 관련 기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중장기적인 국가 발전전략과의 연관 속에서 인문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갈 방안과 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강성호 / 순천대 교수>

(한겨레신문 200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