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경영, 세계에서도 통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소니의 납품업체에 불과했던 삼성전자는 지난 해 순이익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10년 전 삼성전자를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소니는 ‘삼성을 배우자’며 삼성전자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6년 전 미국 방송의 토크쇼의 조롱거리였던 현대자동차는 올해 4월 미국 제이디파워사의 자동차 초기품질지수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 유수의 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언론들은 ‘현대자동차의 행보가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며 주목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전자는 세계 경제계의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과 인도에서 가장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면서 일본제품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으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의 아픔을 겪었던 한라공조는 경영 기법을 인정받아 세계적 자동차 부품업체이자 모기업인 비스테온 사의 현지법인 8개를 위탁 경영하고 있다.

이른 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한국식 경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한국식 경영’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점쳐 본다.

삼성전자의 신경영
과감한 투자가 만들어 낸 반도체 1위
속도경영의 핵, 히트앤드 런 경영전략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비상경영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참석자들은 극도로 긴장했다. 이 회장은 바로 삼성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그 동안의 ‘양’경영 실패를 질타해 나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질’경영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영을 선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 신(新)경영’의 탄생이다.

삼성 신경영은 삼성 제품이 세계 1등을 하고 서비스가 선진 수준에 오르며 경영 시스템이 세계 일류 기업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개혁하자는 것이다. 이 신경영을 통해 불과 10년 만에 세계 1위의 브랜드 가치 증가율(13조152억원, 2002년 기준)을 보였고 66배의 수익증가, 메모리반도체, 휴대폰, PDP TV 등 18개 제품에서의 세계 시장 리더 등을 이룩했다. 국내기업 중 외국 투자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됐고 삼성 스스로가 끊임없이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전 회장조차 현역시절 임직원들에게 “삼성을 배우라”고 할 정도가 됐다.

삼성전자가 오늘날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과 함께 반도체산업의 대대적인 투자라는 변곡점이 존재했다. 모두 오너이자 전문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회장은 고비에 이를 때마다 수 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여 메모리반도체부문 1위로 삼성전자가 도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 업(業)’이라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최적의 시기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자들이 반도체 사업에서 최적의 투자시기를 결정할 때는 피를 말리는 고통이 뒤따른다.

삼성전자가 오늘날 반도체에서 세계 1위에 섰던 이유도 경쟁업체들보다 앞선 투자결정이 큰 몫을 차지했다.

93년 반도체 5라인을 8인치 웨이퍼 양산라인으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기술적인 위험 부담 때문에 일본 업체들도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실패하면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됐던 만큼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이 회장은 개발주기가 계속 단축되는 시장상황에서 최적의 결정이라 생각하고 밀고 나갔다. 결국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 세계 1위에 서게 됐다.

세계 초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개발하고, 먼저 판매하고 먼저 철수한다는 선발자의 논리에 삼성은 충실했던 것이다. 삼성은 소위 히트 앤드 런 식 전략구사를 통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서게 됐다.

<이규성 기자>



현대자동차의 품질경영
세계를 놀라게한 6년 ‘파격 변신’
경영진·직원 일치단결로 품질향상에 성공

지난 4월 25일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잡지 <타임>은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철저한 품질경영을 통해 과거 영욕의 현대차를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대표적 글로벌 성공메이커로 변신시킴으로써, 전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고 극찬했다.

<타임>은 기사에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렴한 차의 대명사로 불렸던 현대차가 스타일리쉬한 디자인과 이미 검증된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자동차업계 최고의 차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1998년 심야 토크쇼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상황 10가지 중 8번째는 ‘현대차를 타는 일’이다”라는 조롱을 받았던 현대자동차가 불과 6년만인 올 4월에, 미 <컨슈머리포트>지가 쏘나타를 가장 신뢰할 만한 차로 선정하고, 미 제이디 파워사 주관으로 실시한 초기품질지수에서 현대차의 품질이 혼다와 동률인 2위를 차지하게 되기까지는 한국 기업 특유의 역동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에 품질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정몽구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이다. 현대자동차서비스를 경영하던 시절부터 품질이 현대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정 회장은 취임 일성에서 ‘품질은 현대자동차 생존의 관건’이라고 선언하고 품질향상을 위한 본격적인 경영혁신에 들어갔다.

정 회장은 우선 부서간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공동 위원회를 만들어 디자이너, 연구원, 생산 현장 관리자들을 팀 체제로 일하게 하여, 이를 통해 새로운 모델의 설계를 검토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사전에 해결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정 회장의 경영혁신과 함께 사원들의 적극적인 품질향상 노력 역시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성공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지난 해 아산공장의 품질관리부가 이끌어 낸 작은 성공은 품질관리를 위한 현대자동차 직원들의 노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아산공장 품질관리부 직원들은 조립된 차량의 안쪽에 위치하여 조임 상태가 잘 보이지 않는 볼트와 브래킷 때문에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아산공장의 품질관리부 뿐만이 아니라 조립라인의 직원들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품질관리부의 한 직원이 목욕탕에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작업부 전면 위쪽에 거울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정몽구 회장뿐만이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직원들이 얼마나 품질향상을 위해 노력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형구 기자>



LG전자의 현지경영
안 하는 것 하고, 안 가는 곳을 간다
승부근성으로 이룩한 글로벌 경영

LG 소니 씨 메행거 해.”

‘LG는 소니보다 비쌉니다’라는 뜻의 인도어 발음이다. 브릭스(BRICs: 신흥경제 국가) 중 한 곳인 인도에선 LG전자의 TV가 일본의 소니 TV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인도에서의 LG전자 광고 뒤에는 ‘LG는 끼워팔리지 않습니다’라는 카피도 뒤따른다.

LG전자가 인도 땅을 밟은 첫해인 1997년, 360억원의 매출에 만족했던 LG전자는 불과 6년 만인 2003년에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미국, 중국도 아닌 제 3국인 인도시장에서 거둬들인 1조원의 매출은 경쟁업체에서조차도 높게 평가할 정도였다.

11억 인구의 거대 시장 인도를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LG way’로 대표되는 구본무 회장의 글로벌경영이 큰 몫을 담당했다. 즉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사업에만 LG 브랜드가 들어가야 한다는 구 회장의 굳은 각오가 담겨 있다.

특히 글로벌 경영의 핵심엔 ‘(남이)안 하는 것 하고, 안 가는 곳을 간다’는 식의 승부근성이 주효했다. 구 회장은 평소 CEO들에게 “CEO는 강한 승부근성이 있어야 한다. 경쟁자에 대해 악착같이 대응할 수 있어야 5년,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항상 승부근성을 주문해 왔다.

2년간의 철저한 사전조사기간을 거친 후 국내 기업 최초로 인도에 단독법인을 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또한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크리켓을 TV에 적용한 크리켓 게임 TV, 문을 자물쇠로 관리할 수 있는 냉장고를 개발했다. 또한 고전압과 저전압 사이를 ‘춤추듯’ 오가는 인도의 전기사정에 견딜 수 있는 에어컨과 세탁기도 개발함으로써 인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러시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업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문화마케팅을 통해 LG 브랜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것이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진출 초기인 지난 97년 이미 경쟁사들이 먼저 진출해 있었고, LG(당시는 골드스타)의 이미지는 그리 높지 못했으며, 더욱이 새로운 전략을 본격화할 무렵 터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는 더 큰 갈등을 일으켰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을 두고 경쟁 기업들이 활동을 축소하던 시기에 LG전자는 오히려 승부수를 띄웠다.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여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 공격적인 매체 광고의 집행, 빌보드 광고의 적극적 활용, LG페스티벌을 비롯한 장학퀴즈와 LG Song 캠페인 등 차별화되고 다양한 활동도 모두 이러한 LG식 특유의 승부근성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2004년 3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대공연장에서 열린 ‘러시아 국민브랜드 시상식’에서 LG전자가 오디오 에어컨 진공청소기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현재 5개 제품이 국민브랜드로 선정이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됐다.

<이규성 기자>



한라공조의 경영수출
합리주의+가족주의가 캐나다인 마음 움직였다

지난 1989년 캐나다에 진출한 한라공조가, ‘족구’에 주목한 것은 현지 직원들의 높은 이직률 탓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 푼이라도 많은 급여를 제시하는 회사들을 철새처럼 오가며 업무 공백을 불러와 회사측을 난감하게 했다. 정전이 되면 업무를 중단하고 바로 짐을 싸서 퇴근을 하는 직원들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네며 직장생활의 애환을 묻는 일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일이었다. 회사측이 이러한 상황에서 꺼내든 카드가 족구였던 것.

처음에는 회사측의 제안을 비웃던 직원들은, 그러나 게임에 하나둘씩 참가하며 서서히 바뀌어 갔다. 한국인 임직원들과 어울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교감의 폭을 조금씩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 회사측도 경기 침체에도 불구, 해고를 최대한 억제하는 한편 직원 가족들이 참가하는 피크닉도 종종 실시해 직원들의 신뢰를 사는 데 성공했다. 한라공조가 지난 91년 현대차의 캐나다 철수 ‘후폭풍’을 극복한 것도 직원들과의 이러한 깊은 유대 관계가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족구는 한국식 경영을 퍼뜨리는 훌륭한 매개체였던 셈이다.

한라공조 캐나다법인이 내걸고 있는 모토도 이제는‘패밀리 라이크 인바이런먼트(Family Like Environment).’ 회사를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이 애정을 지닐 수 있는 상생(相生)의 장소로 만들자는 의미다.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으며, 근무 환경도 우수해 이 지역 캐나다인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업체로 성장한 이면에, 합리주의와 가족주의를 결합한 한국식 경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볼보와 포드,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이 회사의 독특한 경영 방식이, 태국 미국 등 여러 나라로 확산돼 나간 것은, 지난 98년 미국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비스테온사가 한라공조의 지분 30%를 인수하면서부터 (현재 지분은 66.99%). 한라공조가 비스테온의 전 세계 법인 가운데 최고의 실적을 연거푸 내자 그 비결을 궁금해 하던 존스톤 회장은, 과거 캐나다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한국식 경영기법을 다른 해외 법인에도 전파해 줄 것을 요청한 것.

신영주 한라공조 사장은 당시 이창형 상무, 오성우 상무, 박준택 상무 등을 잇달아 태국, 캐나다, 미국 앨라배마 현지 법인장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한국식 경영을 퍼뜨리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한라공조 본사는 이들 해외법인이 지불하는 로열티로만 연간 50억~60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 배충렬 차장의 설명이다. 한라공조 해외법인의 성공사례는, 이른바 한국식 경영이 해외에서도 먹혀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회사 허충영 차장은 “세계적인 부품업체인 비스테온이 해외법인의 경영을 로열티까지 지불하면서 한라공조에 일임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며 “해외법인 직원들도 매년 한국에 들어와 경영노하우를 배워 가고 있다 ”라고 말했다.

<박영환 기자>

(이코노믹리뷰 2005-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