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와 '썩은 내'

악취에 코를 감싸 쥐고 질색하는 국민

당나라는 고구려가 멸망하자 전리품을 챙겼다. 전리품에는 수레 1,080승, 소 3,300두, 말 2,900필 등과 함께 '낙타 60두'가 포함되었다. 숫자는 60마리뿐이지만 낙타가 전리품 목록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많지 않은 낙타를 전리품으로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아마도 당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짐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려의 낙타는 또 있었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침략군을 간단하게 물리친 다음 포로 2명과 노획한 무기, 그리고 '낙타 한 마리'를 '왜나라'에 하사했다.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사실을 천하에 과시하기 위해 사절을 보내면서 낙타 한 마리를 선물한 것이다.

짐승을 다른 나라에 보낼 때는 암수 한 쌍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야 키워서 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 마리를 보낸 것은 이런 짐승도 있으니 구경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왜나라는 단지 '한 마리'의 낙타를 받고도 고구려가 이를 자기들에게 '바친 것'이라고 자랑했다.

낙타는 사막지방에서 사는 짐승이다. 고구려에는 사막지방에서 사는 낙타가 있었다. 낙타가 없었다면 왜나라 선물에도, 전리품에도 포함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는 과연 어디까지 뻗어있었을까. 최소한 고비사막까지는 뻗어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당나라는 전리품을 챙겼다. 그러면서 고구려사람 28,200호를 당나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당나라에 반기를 들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뽑아서 '격리'시켰던 것이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만 골랐을 것이다. 이를 '추호이식(抽戶移植)'이라고 했다. 가호(家戶)를 선택적으로 뽑아서 이주시키는 정책이다.

이 강제이주자 가운데에서 고선지 장군이 등장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역사는 고선지 장군을 "용모가 아름답고 수려하다. 말 타면서 쏘는 활 솜씨가 뛰어나다.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용감하며 날쌔고 좋은 결과를 이룬다(美姿容 善騎射 勇決驍果)"고 기록하고 있다. 이민족 출신인 고선지 장군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다.

스타인이라는 서양학자도 "고선지 장군은 유럽이 낳은 어떤 유능한 사령관보다도 탁월한 전략과 통솔력의 소유자"라고 격찬했다. 고선지 장군의 파미르 원정에 대해서도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도 훨씬 성공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렇게 뛰어난 고선지 장군이었지만 많은 멸시를 받았다. 이민족 출신의 서러움이었다. '개 창자나 뜯을 고구려놈, 개똥이나 먹을 고구려놈'이라는 욕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역사에 남는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고선지 장군은 처형되고 만다. 감군(監軍) 직책을 맡고 있던 변용성이라는 자가 뇌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고선지 장군을 모함한 것이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후퇴하면서 창고에 있던 곡식을 군사들에게 나누어준 사실을 꼬투리 잡아 부정을 저질렀다고 모함한 것이다. 곡식을 나누어준 이유는 반란군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선지 장군은 형장에서 도열하고 있는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너희들은 죄가 있다고 말해라. 그렇지 않다면 무죄라고 말해라." 군사들이 일제히 "왕(枉)"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 때문에 땅이 진동했다. '억울한 죽음(枉死)'이라는 외침이었다.

러시아 유전개발사업과 관련,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선거참모 지 모씨가 돈을 받았다는 보도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지 씨가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이 구속되면서 한 말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코미디'라는 말까지 해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보도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왕(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국민뿐이다. 스스로 '왕(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권력자의 오만이다. 자기 변명일 뿐이다. 고선지 장군도 군사들에게 죄를 물었다.

국민은 '왕(枉)'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를 감싸쥐고 있다. 기름 묻은 돈 냄새 때문이다. 파헤친 청계천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이다. 국민은 '썩은 돈' 냄새가 싫은 것이다. 질색인 것이다.

(데일리안 / 김영인 논설위원 2005-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