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한국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평화·통일문제 전문기자를 겸직하고 있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4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박건영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 기사를 시작으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의 인터뷰,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의 면담 내용이 이어질 예정이다.... 편집자 주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회부할 것을 검토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비관적이다. 온건파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비타협주의에 비판적이고, 강경파들은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도 이제 대북 압박 노선에 동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에 시각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있는 듯했다. 갈수록 희망의 근거는 사라지고 불안의 조짐이 커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5일 오후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만난 박건영(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역시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의 중도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는 미국 정부의 관리들과 민간 전문가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향후 미국의 북핵 대처 방향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5대 1', 혹은 '4대 2'의 대북 압박 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북한 대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혹은 북한·중국 대 한·미·일·러의 구조를 짜서 본격적으로 대북 고립 및 압박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합리적 보수'로 규정하는 박건영 교수는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 인사들이 너무 보수적인 탓인지, 정작 워싱턴에서는 '친북 인사'(?)로 낙인 찍혔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의 중도적·진보적 인사들이 미국 정부 관리 및 전문가와의 의사소통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아래는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그는 "한국이 어떤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북 오인 따른 전쟁발발 가능성 무시 못해"

- 북핵 문제에 대한 워싱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떠한가.

"백악관도 그렇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그렇고, 북한이 계속 6자회담에 돌아오지 않고 위협적인 발언을 한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리고 유엔 안보리 회부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 미국이 안보리 회부카드를 실제로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압박용인지, 어떤 쪽에 더 무게가 두어진 것 같은가.

"북핵 분제의 안보리 회부는 제재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북한이 유엔 안보리를 통해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오인(誤認) 가능성이다. 일본과 한국 언론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을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오판을 가질 수 있다. 오인에 의한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 군사적 선택보다 고립 전술 가능성 커"

- 부시 행정부는 군사적 선택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는가.

"내가 워싱턴에서 느낀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다.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도 말한 것처럼 오늘날 미국의 군사력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에 군사력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사막 지형이 대부분인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에는 산악 지형이 많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재래식 군사력도 이라크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군사력으로 북한을 점령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부시 행정부로서는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보다는 북한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즉 '5대 1'이나, 최소한 '4대 2'의 구도로 북한을 압박하는 전술을 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한국을 대북 압박 구도에 동참시키는 것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북한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6자회담에 나와서 하라'며 미국과 공동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과 미국이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한국도 대북 압박 구도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확실히 4대 2, 혹은 5대 1의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 핵실험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모호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핵보유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계속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들어본 적은 있는가.

"징후라고 하는 것이 함경북도 길주에서 트럭과 인력이 들락날락거리고 있다는 정도인데, 이것이 핵실험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남한이 북한을 계속 포용하겠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미국사람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남한이 경제협력을 지속한다면 남한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 북한은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최근에는 5MWe 원자로 가동을 중단해 추가적인 플루토늄 확보에 나서려고 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벼랑끝 외교의 일환인가, 아니면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 절망을 하고 핵 억제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는가.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과 억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핵보유를 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일 수 있고, 동시에 억제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북한은 판단하는 듯 하다. 단, 미국의 정책 유연성에 대한 북한의 판단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책이 불변할 것이라고 보면 상대적으로 억제력 확보에 무게 중심이 있을 것이고, 반면에 미국의 정책이 유연하다고 보면 협상력 제고를 염두에 둘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굳이 이 두 가지를 분리하려고 한다. 미국이 이를 계속 분리시키는 의도는 북한의 의도가 아주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의도는 핵무기 보유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력 제고와 억제력 확보는 반드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협상력 제고와 억제력 확보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다고 해서 북한이 이에 굴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부시 행정부도 이를 알고 있지 않나.

"부시 행정부로서는 국내 정치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이 때 일본이 자위대를 파견하자 부시 행정부는 이를 십분 활용했다. '미국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는 일본의 이라크 파병을 상당히 고마워했다. 한국도 파병했지만 좀 늦었다는 것이 워싱턴의 시각이다.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가 한국을 대북 압박 노선에 동참시킨다면 상당한 정치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 노선에 비판적이었던 한국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게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 한국 정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인 것 같다. 특히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에 동참할 경우 중국의 판단도 흔들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ighly enriched uranium program: HEUP)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의 해결 방향은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북한과 미국의 일종의 타협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에는 핵무기를 만들고자 한다는 '의도'까지도 포함된다. 북한을 궁지에 모는 표현이고 당연히 북한으로서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게 하는 요인이다. 나는 프로그램 대신에 '장비'(equipment)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북한으로서도 농업용이나 의료용, 혹은 원자로 연료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라늄 농축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라늄 농축 문제를 해결한다면, 플루토늄 문제는 제네바 합의 내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북 핵실험을 포용정책 한계선으로 제시해야"

- 북한을 강압적으로 항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출구를 만들어보자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당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 한국에게 대북 압박 노선에 동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대북 압박 요구를 뿌리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포용정책의 한계선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포용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핵실험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 북핵 불용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포용정책의 입지도 넓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나.

"그렇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경고는 북한을 압박하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북한이 이와 같은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면 대북포용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핵실험에 대한 경고를 분명히 하면서 포용정책의 의지를 밝혔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설득하고 대북 압박 노선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의 일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어떠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가정형의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 얘기한다면 이후의 정책적 입지를 좁힐 우려가 있다."

- 최근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이 때를 놓치는 것 같다. 사실 라이스가 아시아 순방 때 북한에 대해 주권국가라고 표현한 것을 북한은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북한은 라이스 장관이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데, 부시 행정부는 절대 사과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북한을 주권국가라고 표현했을 때, 이를 사과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고 회담으로 나오면 되는데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핵 해결 위해 남북경협 적극 나서야"

- 끝으로 남북관계에 대해서 묻겠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데,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노무현 정부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는 노무현 정부가 '복궤전략'(two rail strategy)을 취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핵문제와 남북경협을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핵문제의 해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남북경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의 해결에 정부는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일 때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북한판 마셜플랜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할 것이다.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다음에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라늄 농축 문제가 해결되면 전력공급 등 대북지원에 나서고, 제네바 합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북한판 마셜플랜을 조기집행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북한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내리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다."

(오마이뉴스 / 정욱식 기자 20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