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재벌총수와 잇달아 독대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던 재벌 총수와의 독대를 최근 잇따라 갖고 있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그 동안 재벌 총수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정경유착 근절의 의지를 확실히 보이기 위해서 였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잇단 재벌 총수 면담은 상당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경제회복을 위해 재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인식을 하게 된 결과”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런 만남을 갖기 시작한 것은 2월 강신호 전경련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 재계의 의견을 청취하면서부터. 강 회장은 “경제인의 사기를 북돋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고 설명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3월 중순 리움 박물관을 방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났으며 3월 하순에는 청와대에서 구본무 LG 회장과 만찬을 함께 했다.

또 4월 중순 터키 순방 때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단독으로 오찬 회동을 가졌다. 4대 재벌 중에는 최태원 SK 그룹회장만 독대를 하지 못한 셈이다.

특히 노 대통령과 구 회장의 만찬은 별도의 배석자 없이 부부동반으로 2시간 가량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 아들 건호 씨가 LG전자에 4년째 근무하고 있어 이날 만찬은 단순히 경제문제만 논의하지 않고 덕담을 주고받는 우의 넘치는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터키 순방 때 있었던 노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오찬도 그랬다. 노 대통령은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 이스탄불 인근 이즈미트 현대자동차 현지공장을 방문한 뒤 오찬을 가졌다.

그 때 현대자동자 현지 직원들과 교민들 수백 명이 공장 근처 도로 양 옆으로 도열해서 열렬하게 환영했고 정 회장이 직접 영접을 해 노 대통령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3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현대자동차의 ‘투싼’수소연료 전지차 시승식에도 참석, 정 회장과 함께 차를 타고 청와대 경내를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경제인들이 경제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지금, 대통령이 이를 격려하고 의견을 듣기 위해 만난 것”이라며 “정경유착의 잘못된 관행이 극복됐기 때문에 독대 형식을 피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석탄일 직후인 16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토론회’에는 4대 그룹 총수들이 모두 참석한다. 이래저래 정부와 재계의 화해 무드가 무르익는 흐름이다.

그러나 석가탄신일의 경제인 사면ㆍ복권에서 볼 수 있듯, 이런 화해 무드에서 재계가 ‘자기 일’부터 챙긴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일보 / 김광덕 기자 200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