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얄타협정 반성”… 한국도 해당?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7일 라트비아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약소국들의 운명을 갈랐던 얄타협정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책임도 인정했다.

이는 라트비아 등 발트해 3국이 미국, 소련 등 강대국에 의해 애꿎게 희생된 점을 반성한다는 말이지만 얄타협정 결과 분단의 운명을 맞은 한국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AP통신은 얄타협정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이 “역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더 나아간 발언”이라고 이례성을 지적했다.
백악관이 배포한 연설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얄타협정은 수백만명의 유럽인들을 스탈린 공산당 지배하에 희생시킨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독·소 불가침 조약)의 ‘불의(不義)한 전통’을 답습했다”며 “약소국의 자유가 다시 한번 강대국간 협상의 소모품으로 희생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국간 협상에 약소국이 희생된 사례로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얄타협정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 외에도 그보다 반세기 앞서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 의원단과 면담에서 “2005년 100주년을 맞는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경우에서처럼 미국의 역할이 잘못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국민 사이에 지금도 (미국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고 박진 의원이 전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돈 오버도퍼 교수는 ‘두 개의 한국’이란 책에서 이 조약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의 첫번째 배신이라고 간주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이번 얄타협정 비판 및 미국 책임 시인이 ‘한국 분단 책임론’ 또는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론’으로까지 발전될 지는 회의적이다.

AP통신은 “‘얄타협정이 자유에 대한 배신’이라는 견해는 미국 우파 사이에 오래전부터 공유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연설이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에서 나왔다기보다 ‘자유와 민주주의 확장’이라는 현재의 미국 프로파간다를 확산시키는 차원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 얄타협정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4일부터 11일까지 미·영·소 3개국 수뇌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유엔창설 등 전후 처리에 합의한 협정. 이 협정으로 소련의 스탈린은 동유럽 지배권을 인정받았으며 독일의 분할점령·비무장화·전쟁범죄자 처리 등이 정해졌다. 소련은 독일 항복후 ‘2, 3개월 이내에’ 대일본전에 참전하며 그 대가로 과거 러일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돌려받는다는 내용의 비밀의정서가 채택됐다. 전후 한국에 5년간의 신탁통치를 처음 언급한 것도 이 비밀의정서였다.

▲ 독·소 불가침조약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이 상호 침공하지 않는 대신 동유럽을 분할 점령키로 합의하며 맺은 조약. 당사자인 독일의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무장관과 소련의 소련인민위원회 의장(총리) 겸 외무인민위원 비야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이름을 따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고도 한다. 양측은 비밀의정서를 통해 폴란드를 분할하고 당시 독립국이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소련에 병합하기로 합의했다.

(경향신문 / 손제민 기자 200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