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후진타오 통화, '대북 압박' 본격화 조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5일(현지시간) 전화통화를 갖고 북핵문제를 협의한 뒤 우려를 표명,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시-후진타오 전화통화, 대북 우려 표명
  
스콧 멕클랠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간 전화통화 사실을 밝히며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좋은 대화를 나눴다”면서 “양국 정상은 북한과 6자회담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멕클랠런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과 후 주석은 이날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함께 일해 나갈 것임을 재강조했다”면서도 “아울러 북한에 대해 우려도 표명했다”고 밝혀, 미국이 중국측에 대북 압박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는 이어 “우리 모두는 '우리의 공통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 과정에 함께 해 왔다”면서 “그 우려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라고 말했다.
  
맥클랠런 대변인은 그동안 중국이 미국에 요구해온 북-미 직접 대화와 관련해서는 “만일 필요로 한다면 6자회담 내에서 두 국가가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다”며 기존 입장만을 재확인한 뒤, “이날 전화통화에서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었다”고 말해, 이날 통화에서는 주로 미국의 입장이 통고됐음을 시사했다.
  
그는 “북한은 회담에 돌아올 것임을 밝혔었으나 그 이후로 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고 북한을 비난한 뒤“북한이 마음을 바꿔 회담에 복귀하길 바라며 회담은 북핵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북한의 회담 복귀를 재차 촉구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와 관련, 양국 정상간 전화통화 사실을 전하면서 "양국정상은 대만문제, 경제문제를 심도깊게 논의했다"고 전하며, 북핵문제와 관련해선 "공동관심사인 지역 정세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짤막히 보도했다.
  
반기문 "중국에 보다 적극적 역할 요구하겠다"
  
이날 전화통화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대중 압박'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최근 부시정부내에서는 '중국 역할론'에 강한 회의가 확산되며, 심지어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미온적 대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까지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대북정책에서 '강경 대응'으로 선회 조짐을 보이고 있는 우리 정부도 중국에 대해 '보다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나서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 외무장관회의 참석차 5일 일본 교토로 떠나기에 앞서 북핵문제와 관련, "중국측에는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일본과는 공조관계 유지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보다 적극적 역할 요구'와 '일본과의 공조관계 유지'라는 반 장관 발언은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과의 연대 전선에서 한-미-일 공조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하다.
  
<산케이> “미-일 5월말 안보리 회부 절차 시작”
  
따라서 이날 미-중 정상 전화통화에서도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를 통한 제재에 반대하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언론들은 미-일이 합동으로 북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통한 압박과 PSI를 통한 북한 완전봉쇄 작업에 착수했음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5일 "미국과 일본은 북한이 북핵 6자회담 복귀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이달말부터 대북 경제제재를 위한 유엔 안보리 회부 절차를 시작하는 방안을 조정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해 야치 쇼타로 외무성 사무차관과 만나 이같이 의견을 모았으며 미-일 양국은 이밖에 한국과 중국, 러시아와도 안보리 회부에 관한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북한을 제외한 5자협의를 개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 관리는 이와 관련 “북한의 자세 변화가 없는 한 5월 중에 회부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영국과 프랑스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에 대해 “미-일 양국 정부 내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졌으며 중국의 대북 설득을 계속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밖에 미국과 일본 정부는 북한에 의한 마약밀매와 위조달러 유통 등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자금원이 된다고 보고 양국 합동으로 유통 경로를 적극 적발키로 했으며 중국과 한국에도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네오콘, 대북인권특사에 내정
  
미국의 대북 강경 기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인 제이 레프코비츠 전 백악관 고위정책보좌관을 대북인권특사로 내정한 데서도 읽히고 있다.
  
미국 일간지인 <뉴욕선>은 4일(현지시간) 한 행정부 관리와 두 명의 정부 밖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은 내정설을 보도하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그를 그 자리에 임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같은 보도에 대해 부인하긴 했으나 “지명된 인사가 있으면 그때 발표할게 될 것”이라고 말해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인권 문제는 북-미 관계에서 북핵문제만큼이나 첨예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극우성향의 대북인권특사를 임명한다면 북핵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레프코비츠는 지난 2001년 3월 백악관 예산관리국 법률고문으로 임명된 뒤 2002년 부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백악관 국내정책 담당 부보좌관에 임명됐었다. 그는 아울러 1991년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 미국 대표로 일한 바 있으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및에서 국내정책회의 부비서관을 역임했었다.

(프레시안 / 김한규 기자 2005-5-6)

<해설> 中ㆍ美 전화 정상회담 속뜻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5일 갑작스럽게 전화 정상회담을 가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정상은 오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기로 돼 있어 이번 전화회담에서 나눈 대화내용이 더욱 주목된다.

이와 관련,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두 정상이 북한문제와 6자회담의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매클렐런 대변인은 "두 지도자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계속 협력할 것임을 거듭 밝히는 한편 북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도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전화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후 주석이 양국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후 주석은 대만문제가 건강한 중미관계 발전의 관건이라면서 미국에 대해 건설적인 태도로 양안관계 개선과 발전을 지지해 줄 것을 원했고 중미간 무역협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신화통신은 덧붙였다.

중국과 미국 정부가 양국 정상이 나눈 전화회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각각 대변인 브리핑과 관영 언론 보도를 통해 서로 다른 관심사에 대한 원론적인 발언내용을 발표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양국의 발표는 며칠 뒤 대면하기로 돼 있는 두 정상이 어째서 갑작스럽게 전화회담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 두 정상이 전화통화를 했다고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돌출 현안이 없는 가운데 중미 정상이 전화통화를 한 배경에는 분명 북핵문제와 관련된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 시기를 논의한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후 주석의 금년 평양 방문은 이미 중국 정부에 의해 기정사실로 됐으나 그동안 시기에 대해서 추측이 난무했다.

특히 북한 6자회담 복귀 6월 시한설이 나오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영변 원자로 가동중단을 발표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이를 풀기 위한 중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달 초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중 때 중국측은 후 주석의 방북 조건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고 중미 정상이 이번 통화에서 그 시기를 조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륙을 방문중인 대만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주석의 체류 일정이 당초 12일에서 13일까지로 하루 늘어난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오는 10일 베이징(北京)에 도착하는 쑹 주석은 8일 모스크바 행사에 참석한 뒤 9일 귀국하는 후 주석과 10∼12일 사이 만날 수 있는데도 굳이 하루를 연장한 것은 후 주석에게 공개되지 않은 다른 일정이 잡혀 있다는 추론을 부른다.

그것은 평양 방문이며,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전화통화에서 후 주석에게 그 시기의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을 수도 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의 분석도 이런 추측과 맥이 닿아 있다.

퀴노네스 박사는 대통령이 후 주석에게 전화한 것은 북한에 대한 회담복귀 압력을 가중시켜 달라는 요청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전화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늘려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특히 압력의 한 방법으로 후 주석의 평양 방문을 늦춰 줄 것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며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 북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겠다고 압박하는 미국 사이에서 중국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전화회담의 의미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합뉴스 / 박기성 특파원 200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