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북·미 대립... 한국은 '불구경'만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 위험 수위를 넘어가고 있다.

"깡패" "불망나니" 등 상대방 국가 원수에 대해 최소한의 외교적 수사도 없는 원색적인 비판이 난무한다. 북한이 지난 1일 단거리 미사일을 실험 발사하자 미국은 "대북 억제능력이 충분하다"며 맞받아치고 나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일(현지 시각)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든 종류의 '상당한(significant)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나는 '상당한' 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는 미사일 문제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사실상 북한에 대한 보복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스콧 매클랠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2일(현지 시각) 브리핑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는 북한이 벌이는 일련의 연쇄 도발행동으로 북한을 더욱 더 고립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 지역의 모든 당사국들 사이에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주부터 원색적인 말 싸움을 벌여왔다.

지난달 29일 (현지 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위험한 사람" "폭군" "주민을 굶긴다" "위협하고 허풍떤다"는 말로 비판했다. 그 다음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 "인간추물" "세계의 독재자' 등으로 비난했다.

앤드루 카드 미 백악관 비서실장은 1일(미국 시각) "북한은 깡패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나라들이 우러러볼 줄 알지만 (깡패는) 별로 건설적인 지도자는 아니다"라면서 "김정일은 매우 잔인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원색적 말싸움 북미간 극심한 불신 보여줘

이런 발언들은 그냥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다.

이는 김정일 정권과 부시 정권이 상대방에 대해 품고있는 '적개심'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해결의 최고 걸림돌 가운데 하나로 북한과 미국의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 결여'를 들었다.

신뢰감이 없는 자와의 협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미국은 현재 "현 단계에서 최선의 방법은 6자 회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미간에 막나가는 말싸움을 보면 이 발언이 얼마나 공염불에 불과한 지 잘 알 수 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지난 2월10일 핵 보유를 선언한 뒤 그들의 핵 능력을 평가절하해 왔다. 북한의 핵 능력은 확신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보인 북한의 행동은 협상용이며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처럼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 뿐만 아니라 그동안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에 동조했던 미 보수파 대북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네오콘의 핵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아시아문제 전문가 니콜러스 에버슈타트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에 대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그건 '어이, 나 잊어버리지 마' 쯤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헤리티지재단 발비나 황 연구원도 "정상적인 국가들은 긴장수준을 높이면서 협상을 하지 않는데 미사일 시험 발사는 북한이 얼마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애쓰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들은 과거 50년간 그렇게 해왔고 늘 적중했다"고 덧붙였다.

2일 라이스 장관의 발언도 북한의 위협에 대한 보복 의사를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이 북한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북한 핵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를 내포하고 있다.

"노 정권부터 대북정책 실패 반성해야"

그러나 부시 정부의 북한 핵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는 다른 맥락이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할 경우 지난 4년간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회피해 북핵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는 미 민주당 등의 비판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핵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데 "중국 역할론" "6자 회담 가능성"론만 되풀이하고 있는 남한 정부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자랑했던 노무현 정권이 정작 한반도가 잿더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다가오는데 아무 수단도 없이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 정권은 한편에서는 부시 정권의 북핵 상황에 대한 '의도적 무시'와 대단히 비슷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으로 비난한 것도 "이전에 했던 발언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북핵 상황이 정점으로 치닫는데도 여전히 "6자 회담의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제까지 북핵 문제에 있어 한·미·일 공조를 강조해왔다. 이는 북핵 문제에 있어 남한의 독자적 역할이 아닌 부시 정권의 일방적인 대북 정책을 그대로 추종한 것이었다.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해주면 미국의 태도가 변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모든 지렛대를 상실한 지금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은 아무 것도 없게 된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은 "노무현 정부가 이제까지 말했던 한·미·일 공조란 결국 북한에 압력을 가하면 그들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한 것"이라며 "노무현 정권도 이제까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