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대부완<토기> 국제정세 변화 반영

백제사비기에 등장한 새로운 토기양식으로 알려진 대부완(臺附碗)이 실제로는 웅진기부터 도입됐고 사비기에 이르러 정형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이같은 토기 양식의 변화는 백제가 처한 당시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해석이다.

야마모토 타카후미 씨(山本孝文·부산대 고고학과 강사)는 국립공주박물관이 최근 펴낸 논문집 '국립공주박물관기요'에 발표한 논문 '백제 대부완의 수용과 변천의 획기'를 통해 "대부완이 정형화된 시기는 중국의 강력한 통일제국 '수·당'의 성립과 고구려의 남하 등 국제정세의 변화가 있었다"며 "이같은 변화에 따라 백제는 새로운 통치방식과 생활양식이 필요했고 정형화된 대부완은 이를 반증하는 증거"라고 밝혔다. 중국 사신과의 교류 수월 등 정치적 교섭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상위계층의 생활습관부터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조됐다는 것이다.

야마모토 씨는 "정형화 이전 초기 대부완은 사비기 대부완과는 달리 각 세력이 개별적으로 중국에서 전해진 금속기·도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형태·재질·제작기법에서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중앙 관습의 모방에 그쳤다고 봤을 때 중앙정권의 통제가 비교적 느슨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정형화된 사비기 대부완에 대해서는 "고분 부장품은 물론 도성 관련 시설에서 집중 확인되는 것을 볼 때 지배계층 용기로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제사체계, 식사형태 등의 생활양식의 변화가 백제 최고 지배층에 의해 추진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야마모토 씨는 정형화된 대부완의 특성으로 소성기술과 재료의 균일화로 인해 출토된 수량에 비해 색조가 몇 가지로 집중된다고 밝혔다. 또 반구형에 가까왔던 초기 대부완과는 달리 바닥과 몸체가 비교적 직선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정형화된 대부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는 뚜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야마모토 씨는 "사비기의 정형화된 대부완은 강대국이나 동맹국의 영향을 통해 구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통치방식과 생활양식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며 "백제 토기 형식변화는 정형화된 대부완 이후 사비기 전반을 통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일보 / 남상현 기자 20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