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꽃게 싹쓸이

조선과 청(淸)나라가 ‘상민수륙무역장정(常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한 것은 고종 19년(1882년) 8월이었다.

수륙무역장정 중 어업에 관한 규정인 제3조의 맨끝 주(註)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청나라 연안의 고기가 기선(汽船)의 왕래에 놀라 조선의 서해안으로 달아나기 때문에 산뚱(山東)의 어민들이 멋대로 조선 황해도의 대청·소청도에 이르러 고기를 잡는데, 그 수가 한해 1천척을 헤아린다.

”실제로 무역장정이 체결되기 수개월전인 1882년 초 충청도의 원산도와 삽시도 근해에는 수백척의 청나라 어선이 “바다를 뒤덮고, 그물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박구병 교수·부산 수산대). 그로부터 123년이 흐른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옹진군 연평도와 백령도 북방한계선 북쪽 해역 꽃게잡이 어민들이 “눈앞에 보이는 바다가 중국어선들로 뒤덮인 것을 보매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꽃게잡이가 시작되자 연평도에 160여척, 백령도에 140여척 등 300척이 넘는 중국 어선들이 선단을 이뤄 떼거리로 몰려들어, 꽃게가 오는 길목에서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어민들은 빈 그물만 올리고 있다고 했다(23일자·한겨레). 이와 같은 중국의 우리 어장침탈은 그 역사가 몇 백년에 이르고 있다.

이미 효종(孝宗·1650∼1659) 초에 “정체불명의 불법어선이 7∼8척, 또는 10여척씩 떼지어 황해로 장연과 옹진사이 해안에서 멋대로 고기잡이를 한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術)는 기록 등 청나라의 불법어선단규모는 차츰 커져갔다.

17세기 중반부터 서해어장 침탈

숙종 42년(1716년)에는 32척이 떼져 몰려왔고, 이쪽에서 나포할 태세를 취해도 물러가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만큼 대담해졌다.

18년 뒤인 영조 5년(1734년) 황해 수사 김성응은 “날씨가 좋을 때에는 불법어선의 왕래가 무수하고, 때로는 상륙해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라고 했다.

이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강희·옹정(1723∼1735년) 연대에 청나라는 우리측 요구를 받아들여 조선의 청나라 불법어선 나포에 동의하고, 배에 타고있는 청나라 사람을 조선정부가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했다.

적어도 270여년전 우리가 확보했던 해양주권은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바다에서 우리 꽃게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는 중국의 불법어로를 구경만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에는 청나라의 우리해역 침탈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고종 6년(1869년)에는 청나라 불법어선을 나포해서 8명을 사살하고 8명을 생포했다.

또 2년 뒤 고종8년(1871년)에는 옹진군 연해에 불법어선 백여척이 몰려왔다.

개항 4년 뒤인 고종 17년(1880년)에는 70내지 100여척의 선단이 전라도 군산 앞바다에 나타났고, 충청도 태안 연안에도 수백 척이 나타나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언론이 ‘서해지키기’ 의제 설정을

이처럼 19세기는 청나라의 우리 해역침탈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오늘날 중국어선단의 우리 해역 침탈은 그 역사적 유산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서해 우리 경제수역내 먼 바다를 제집 드나들듯 했던 중국어선의 불법어로행위가 어찌 됐는지 최근에는 소식이 뜸하다.

아마도 게릴라식 불법어로가 줄어든 대신 꽃게잡이 황금어장에 300척이라는 대형선단을 투입하는 식으로 보다 조직적인 방식으로 불법어로를 확대한 게 아닌지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하다.

올해 들어 연평도와 대청도의 꽃게위탁판매량은 지난해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중국어선들은 낮에는 북방한계선 북쪽에서 조업하고, 밤에는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하고 있다한다.

결국 오늘날 연평도와 대청도 꽃게잡이 위기의 원인은 우리 어장을 오랫동안 침탈해온 중국의 불법어로, 그리고 그들의 불법침탈을 방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국토분단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우리 해역 침탈의 역사를 까마득하게 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독도를 지키는 게 우리의 역사적 권리이자 의무인 것처럼 서해의 어장을 지키는 것도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다.

그러나 북측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의 경제원조를 받는 입장이어서 우리측과의 공조(共助)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부와 언론이 중국의 서해어장침탈에 반대하는 ‘의제설정’에 나서야할 것이다.

(미디어오늘 20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