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7세기 연해주는 조선땅이었다”

당시 러시아 외교관·지도 제작자 기록 발굴 “조선 국경 두만강 아닌 아무르강에서 시작”

17세기 러시아에서도 연해주를 조선땅으로 인식했다는 자료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기 전 이미 조선인들이 연해주에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다. 간도 영유권과 함께 연해주 영유권을 구체적으로 밝혀줄 자료로 주목된다. 간도·연해주 영유권과 관련, 러시아 측의 자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역사연구소 박명용 연구원이 밝힌 17세기 러시아의 자료를 보면 조선 영토가 아무르강(중국명으로는 흑룡강)에서 시작하여 해안가를 따라 한반도 끝까지로 나타나 있다. ‘뉴스메이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4월말 북방사 논총(고구려연구재단 발간)을 통해 발표를 앞두고 있는 박연구원의 논문을 사전에 입수했다. 박연구원은 ‘연해주를 둘러싼 한국과 러시아 영토문제: 1650년에서 1900년까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자료는 그리스 출신 러시아 외교관인 스빠파리가 1670년대 중국을 견문하며 쓴 책이다. 이 책은 ‘시베리아와 중국’이란 제목으로 1960년 러시아에서 출간한 것인데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서술돼 있다.

“조선은 레오아뚱(요동의 러시아 표기)과 아무르강 사이에 있는 나라다.(중략) 이 나라는 아무르강 하류에서 멀지 않은 바다의 커다란 ‘코’에 놓여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아무르강 하류 지역에는 바다를 따라 멀리 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무르강은 러시아 연해주의 북부에 있는 강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는 송화강이 북으로 흘러 아무르강과 만나 동해쪽으로 흘러나간다. 당시 러시아는 반도를 ‘코’라고 표기했다. 러시아가 동해를 낀 연해주 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조선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것이 기록에서 드러난다. 스빠파리는 “러시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아무르강 하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바닷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스빠파리의 기록은 중국에서 들은 얘기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하는 조선 사정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러시아 역사연구소 연구원 논문 입수

시베리아 출신 지도제작자인 레메조프의 17세기 후반 지도와 기록도 흥미롭다. 박연구원은 고려인인 보리스 박의 ‘러시아와 한국’이라는 책(러시아 원문)에 나타난 레메조프 관련 부분을 인용했다. 여기에는 레메조프가 조선 영토는 아무르강에서 시작된다고 그렸다는 것. 레메조프는 조선이 아무르강 남쪽 그리고 만주 동쪽에 길게 놓인 지역으로 묘사했다. 레메조프의 기록은 오스트리아에서 번역돼 책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스빠파리와 레메조프의 기록에서 일치하는 대목은 조선의 영토가 아무르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린 조선 국경은 두만강이 아닌 아무르강이었다. 박연구원은 “조선 영토가 바로 아무르강 남쪽에서 시작된 것은 당시 극동에 와 있거나 또는 극동 지역을 연구하던 외국인들(러시아인 포함) 사이에 흔히 거론되던 내용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기록이 일부 다른 점도 있지만 이들이 왜 한결같이 아무르강 남쪽에서 조선영토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는가를 박연구원은 17세기 만주지역 정세와 연결시켰다. 심양 북쪽에 거점을 둔 누르하치는 1590년대부터 동쪽으로 진출, 만주지역을 휩쓸고 정복에 나섰다. 1621년 심양에 들어가고 1644년 베이징을 점령한 다음 만주족은 중국으로 이주했다.

조선인 네르친스크 진출은 획기적 사실

소비에트 역사학자인 멜리호프의 기록에 의하면 만주족이란 심양 주변에 살던 여러 종족의 연합을 뜻했다. 심양 주위를 뺀 다른 만주 지역과 연해주, 아무르강 지역에는 퉁구스계와 몽골계인 다양한 소수 민족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다고 서술한 것이다. 박연구원은 “압록강에서 아무르강에 이르는 지역이 주인 없는 땅으로 남아 있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17세기말 러시아 연구자들이 연해주를 중국땅이 아닌 조선땅으로 보았다”고 주장했다. 만주 지역에도 중국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으므로 소수민족에 비해 그래도 큰 국가인 조선의 힘이 연해주에 미쳤다고 당시 러시아인들이 보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기록에서는 연해주의 동북쪽인 네르친스크까지 조선인이 실제로 진출했다는 기록도 이번에 소개됐다. 19세기말 저널리스트 스깔꼽스끼의 기록에는 “조선 상인들은 아르군 강을 따라 네르친스크와 나운(지금의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음)에 비단·종이·대나무 발·부채·담배·금·비단재료·중국비단 등을 가지고 와서 러시아 모피와 바꿨다”고 나타나 있다.

박연구원은 논문에서 18세기초 중국으로 파견된 끄리스니쯔의 기록도 소개하고 있다. 끄리스니쯔는 “아무르강 하구 쪽에 있는 반도사람들은 아무르강으로 들어가는 나운까지 다닌다”며 “나운이라는 도시까지 배를 타고 온 다음 거기에서 물건을 가지고 40여일에 걸쳐 베이징으로 간다”고 기록했다.

조선 상인들이 아무르강(흑룡강) 인근에 위치한 네르친스크까지 진출해 러시아인과 무역을 하고 또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다는 것도 국내 학계에는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존재를 통해 17세기 말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 남쪽에서 조선 영토가 시작된다고 봤을 것이라는 박연구원의 주장이다.

간도영유권 문제를 연구해온 포항공대 박선영교수(중국 근현대사)는 “러시아 자료가 처음 소개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특히 조선인이 네르친스크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박교수는 “만주 지역이 17세기에는 청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무인지대였음이 러시아 자료에도 일부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연구원은 “17세기 러시아 자료가 밝힌 아무르강 밑의 조선땅은 연해주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간도 지역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박연구원은 “만주지역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일부 기록은 지금 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간도 문제에 대한 뿌리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17세 중반부터 러시아는 미지의 지역을 찾아 동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때 청과 아무르강 중류에서 맞부딪치게 된다. 이후 러시아와 청은 결국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화해하게 된다. 이때 러시아는 아무르강 위쪽인 고르비짜강과 아르군강으로 국경선을 삼는 것으로 양보했다. 하지만 내륙이 아닌 연해주 지역은 여전히 미확정이었다.

연해주 역시 통일 후 영유권 주장 가능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동진이 좌절된 러시아가 다시 이곳으로 진출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러시아는 185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이 지역을 러시아 땅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러시아 농민들이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청은 1860년 11월 2일 베이징 조약을 맺는다. 17세기에는 조선땅이던 연해주 지역이 이 조약으로 러시아 땅으로 인정받는다. 이미 이곳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졸지에 남의 땅에 사는 게 된 셈이다. 베이징 조약 이후 조선과 러시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직접 국경을 접한다. 박연구원의 표현에 의하면 ‘러시아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르강에서 연해주를 차지’했다. 1860년 제2차아편전쟁으로 청이 영불연합군에 밀려 베이징이 위태로워졌을 때 러시아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베이징 조약을 맺은 것이다. 두만강 하구의 섬으로 조선땅으로 기록된 녹둔도도 이때 러시아령으로 들어가고 만다.

반면 이미 17세기에 조선인들이 연해주 지역까지 진출했지만 국력이 쇠약한 조선은 국제정세에 어두웠다. 러시아와 청의 베이징 조약 체결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두만강에서 러시아와 접하게 된 사실을 안 것은 베이징 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861년이다.

러시아군이 국경비를 세울 때에야 조선은 러시아와 이곳에서 국경을 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안다. 경흥부사 이석영은 조정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조선인들은 흉년이 들면 간도뿐만 아니라 연해주로 대거 이주한다. 박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러시아 기록에서는 1860년 이후 조선인들이 이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미 이전에 조선인들이 진출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조선인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이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이곳 연해주의 면적은 16만 5900㎢. 남북한 면적(22만1000㎢)에 버금가는 땅이다.

한나라당 권오을의원은 지난 4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고구려, 발해와 동북지방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이를 한국사에 편입해 기술해야 통일 후 간도 및 연해주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해주 역시 간도처럼 통일 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곳으로 지목한 셈이다.

지난해 결성된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도 간도에 이어 연해주의 영유권을 주장할 계획이다. 육낙현대표는 “당초 러시아와 외교 마찰을 빚을까 우려해서 삭제했으나 앞으로 운동본부의 대한민국 지도에 연해주도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육대표는 “연해주는 러시아가 진출하기 이전부터 조선인들이 개간해 살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뉴스메이커 / 윤호우 기자 200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