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할론' 상종가... 김정일 축출설도

'6월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서 '중국 역할론'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그런 '의지'도 있다는 게 중국 역할론이다.

그러나 중국 역할론은 지난 2월 10일 북한이 핵보유 선언 및 6자 회담 무기한 참가 중단을 선언하기 전과 그 뒤의 내포된 뜻이 상당히 달라졌다. 특히 현재로서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올 가능성이 없고 미국도 6자 회담 포기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 역할론은 마치 야누스처럼 변모했다.

2월 10일 이전의 중국 역할론은 중국이 압력 또는 설득을 통해 북한이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북한을 6자 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역할을 의미했다. 즉, 북핵 문제의 중재자 역할이었다.

그러나 2월 10일 이후의 중국 역할론은 다르다.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대북 경제제재 등의 강경책에 중국이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망은 더 나아가 아예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핵을 가진' 김정일 정권을 제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포함한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는 일본과 대만 등의 핵 보유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도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한다. 제 아무리 혈맹이라고 하지만 조만간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인내심도 바닥날 것이며, 결국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 정책 또는 비외교적·비평화적 수단에 중국도 동의하거나 묵인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중국 역할론이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중재자 역할'에 방점이 찍혔다면, 현재의 중국 역할론은 중국을 '최종 해결사'로 상정하고 있다.

"중국도 인내심 바닥... 북한 압박할 것"

중국 역할론은 미 조지 부시 행정부의 기본 정책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6자 회담이라는 틀을 고수했다. "이는 북핵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부시 정권은 "중국과의 협조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우리는 할만큼 했다"며 북한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미국의 강경책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남한 정부도 부쩍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2월 10일 이전에 한국 정부가 말한 중국 역할론은 '북한에 대한 설득'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말하는 중국 역할론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22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는 입장이었으나 이후 그들의 인내심도 바닥난 것으로 보고있다.

6자 회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남한 정부에 "우리는 절대 북한의 핵 보유를 참을 수 없다"며 직접적인 어조로 김정일 정권을 비판했다는 설도 있다.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직후인 지난 2월 17일 김하중 주중 대사는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에 들어온 외부 물자의 70∼80%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중 간에 철도가 몇개 있고 도로가 15개 정도 있다, 이 가운데 어느날 중국이 보수를 이유로 도로 3개 정도만 막아 물자가 못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느냐"고 설명했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도 "중국이 올해나 내년 초까지는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등에 반대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그러나 궁극적으로 미국과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의 입장은 핵없는 김정일 정권까지는 용납하겠다는 것인데 북한은 핵을 가진 정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며 "만약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는 대신 북한에 핵 없는 친중 정권이 설 수 있다면 중국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반론 "중국 북한의 핵보유 묵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반론도 강하다. 김정일 정권이 핵물질을 외부로 유출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은 한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 또는 한반도 전쟁 보다는 차라리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현재 미국과 남한 정부가 말하는 중국 역할론은 순수 이론이나 시나리오, 또는 미국의 희망에 불과하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은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좋을 것"이라며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고 압록강까지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2050년까지 경제대국이 되는 것이 목표로,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안정이 핵심"이라며 "동아시아의 안정은 곧 한반도의 안정이고, 이는 곧 북한의 안정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은 설사 평양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도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중국의 입장은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이 양보해야 자신들도 움직일 근거가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은 랴오닝·지린·헤이루장성 등 기존의 동북 3성 외에 북한을 마치 자신들의 '동북 4성'정도로 본다"며 "평양의 가장 핵심지역에 중국 대사관이 있다, 북·중의 역사적·지정학적 관계를 본다면 중국 역할론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 발휘는 철저하게 미국의 대만에 대한 영향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즉, 미국이 대만 문제에 있어 중국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는 한, 중국이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북핵 문제가 계속 악화돼어 북한의 핵보유 선언까지 나온 것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과장됐고 중국 역할론이 현실성이 없다는 증거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각)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대북 제재를 가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6자 회담 파기로 이어져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의도를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계속 이같은 입장을 고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흡사 한반도의 운명은 중국의 손에 달려있는 느낌이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