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중·일 갈등 예견해 동북아균형자론 직접 제시”

“동북아정세는 탈냉전 이후 지난 10여년간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문화적으로는 유기적이며 상호의존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나, 외교·안보분야에서는 평화구조가 정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동북아정세를 안정과 평화의 질서로 만들어가는 중장기적 과정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 바로 ‘동북아 균형자론’이다.”

청와대가 일부 언론과 야당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27일 브리핑을 통해 “동북아균형자론은 존경받는 국제협력국가로 가기위한 전략”이라며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우리의 적극적인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는 이날 브리핑 원고 외에 △동북아균형자란 무엇인가 △동북아균형자론이 나오게 된 배경 △균형자를 추구할 현실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한·미 동맹과 양립 가능한가 △기타 제기될 수 있는 사안 등으로 구성된 ‘동북아균형자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한편, 동북아균형자론과 관련해 ‘한·미동맹 균열’ 등을 집중보도해온 보수언론의 시각과는 정반대로 균형자론을 통해 그동안 지나치게 미·일과의 공조에 경도된 우리의 국제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돼 흥미를 끌고 있다.

‘동북아 평화번영’은 참여정부의 화두

동북아균형자론은 2005년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제시됐지만 사실 참여정부의 출범 이래 지속적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살아왔는데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기회가 되고 있다”며 “21세기는 동북아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화두를 던졌다.

노 대통령은 이후 △같은 해 6월 9일 국빈 방문한 일본 국회연설에서 “한국을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허브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7월 9일 중국방문길에 청와대초청연설에서 “동북아는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질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유럽순방 중이던 지난해 12월 6일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동북아에 EU와 같은 개방적인 지역통합체를 만들고자 하는 기대를 피력한바 있다.

지속적으로 평화번영의 동북아시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셈. 더불어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드디어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타이틀이 제시된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일어났던 패권경쟁의 무대였다는 점과 주변 국가들이 강성해질 때마다 한반도로 힘을 뻗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대한 보존이고 동북아 각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한반도가 중국, 일본과 더불어 동북아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숙명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항상 미래의 잠재적 갈등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수립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동북아균형자론이 제시됐다.

한국은 ‘종속변수’ 아닌 ‘주요 행위자’

그동안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서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일각과 보수언론의 지적이 잇따랐다. 또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세력균형이론을 연상해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 필요에 따라 연합의 대상을 바꿔왔던 점과 혼동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을 가까이하는 동시에 한미동맹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에 있다. 특히 보수언론들이 그동안 한미동맹 균열을 운운하며 현실을 왜곡해왔다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안보를 특정세력이 독점했던 과거지향적 사고로는 외교안보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동북아균형자론은 한미 간에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동북아 평화번영을 이루겠다는 것이므로 한미동맹을 기초로 추진될 것”이라며 “한미 양국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균형자론은 무력이나 힘에 의존하지 않고 동북아 지역 내에서 중견국가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힘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의 힘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반도는 대륙분화와 해양문화의 소통의 공간”

한국은 전쟁을 추구해본 적이 없어 주변 국가로부터 불신을 받거나 패권주의를 의심받지 않는다. 또 많은 국가들이 인정하듯이 짧은 시간에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모범적으로 달성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아픈 현대사를 딛고 만들어낸 우리의 이런 성과에 자긍심을 갖자는 것이다. 과신도 문제지만 자학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현재 동북아 질서는 불투명하지만 우리가 희망을 갖는 것은 경제협력이나 문화교류, 인적교류가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문화와 해양문화, 동양과 서양이 두루 통하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밝혔다. 2004년 현재 한일간 상호방문자는 400만명, 한중간 상호방문자는 348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인적교류라는 상호작용과정에서 ‘한류’를 비롯한 우리의 문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는 초강대국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협력을 이루고 세계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라며 “다행스럽게도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최소한의 기초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균형자 역할은 우리의 전략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관용과 공존, 화해와 협력의 질서를 위한 규범과 원칙을 제안하고 주변국가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앞장설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각국의 협력을 촉진시켜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전략이자 생존전략이다.”

보수언론 사실상 한국 소외시키고 미국 지지

청와대는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보수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그간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불만을 표시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있었던 조기숙 홍보수석의 기자간담회.

이날 조 수석은 일부 보수언론을 겨냥해 “과거 북한의 위협을 가지고 ‘안보장사’를 하던 언론이 이제 한미동맹을 흔들어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시킴으로 새로운 안보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을 ‘편 가르기’로 몰아가는 보도행태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청와대가 가장 큰 불만은 청와대가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동북아균형자론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지만 보수언론들이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언론이 한미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균열’ 등의 표현을 운운하며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에는 의도성을 제기하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군은 본국으로 옮기는데 6조원, 한국에서 폐기하는데 1조원 정도가 소요되는 20년 이상 된 구식무기를 우리나라에 떠넘기려고 하고, 우리나라는 한미관계를 고려해 미국의 심기가 ‘틀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협상하려고 하는데 번번이 ‘한미동맹 균열’을 들먹이는 한국 언론의 행태가 어느 나라에 득이 되겠냐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의 입지를 좁혀 미국을 지지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일본 UN상임위 지지철회는 우리 외교력의 승리

현재 미국도 한국의 이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심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섭섭한 점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깰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아니라는 것이 청와대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본의 UN 상임이사국진출을 지지하던 미국의 입장이 바뀐 데는 우리 정부의 힘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통상이 중단되면 더 어려워지는 쪽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일본도 쉽게 한국과 등질 수 없는 입장이다.

일부 언론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 ‘한·미·일동맹’에 대해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애초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있지만 ‘한·미·일동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동안 한미일공조는 암묵적으로 존재했지만 ‘동맹’과 ‘공조’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강조했지만 “최근 한·미·일공조체제를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해 한국과 미국, 일본의 관계가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조정자역할 주장도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개념을 제일 먼저 제시한 사람이다.

노 대통령은 한 회의석상에서 “앞으로 동북아에서 갈등이 생긴다면 어떤 나라들이겠느냐”는 질문을 먼저 던졌고, 참석자들이 “당연히 중국과 일본”이라고 답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겠느냐”며 ‘균형자론’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다.

노 대통령은 중·일 간의 영토문제나 역사왜곡문제가 심각한 갈등을 야기할 것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사실 10년이나 20년, 나아가 100년 후를 바라본 제안이었지만 최근 불거진 극심한 중·일, 한·일 갈등에서 드러났듯이 이런 일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시작됐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윤경로 한성대 총장은 데일리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사실 대륙이 강할 때는 대륙 편에서, 일본이나 미국이 강할 때는 해양세력에 의지해온 경향이 있다”며 “노 대통령의 선언은 양측의 눈치를 보던 입장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갈등을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한바 있다.

그는 “당연히 일본이나 중국 어느 쪽에도 경도되지 않으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일부에서는 최근 독도문제가 불거지면서 조정자 역할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시각이 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가 해양세력에 경도됐었다는 점에서 차라리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 이기호 기자 2005-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