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原石탁본 ‘청명본’ 첫선

고려대박물관이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고구려 특별전’(5월 7일∼7월 10일)에 광개토대왕비의 희귀 탁본 3점이 한꺼번에 전시된다. 이 탁본들은 그동안 비문(碑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광개토대왕비의 실체를 밝혀 줄 중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중에는 광개토대왕비 연구를 위한 대표적 원석탁본(原石拓本·아무런 가공 없이 비석의 상태 그대로 뜬 탁본)인 이른바 ‘청명(靑溟)본’과 ‘미즈다니(水谷)본’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학자(漢學者)인 고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선생이 소장했던 청명본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미즈다니본은 일본 지바(千葉)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탁본으로 고려대박물관은 이 탁본의 필름을 들여와 실물 크기의 패널로 만들어 전시한다. 박물관 측은 또 이들 원석탁본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회탁본(石灰拓本·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글자 바깥에 회칠을 한 뒤 뜬 탁본)도 함께 전시한다.

미즈다니본은 광복 후 일본학자 미즈다니 데지로(水谷悌二郞) 씨가 공개한 탁본으로 광개토대왕비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탁본은 1880년대 일본군 대위 사코 가게노부(酒勾景信)가 처음 소개한 ‘사코본’. 그러나 미즈다니 씨는 이 사코본이 글자를 임의로 판독해 외곽선을 뜨고 그 바깥에 먹을 칠해 만든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란 사실과, 당시 유포돼 있던 많은 탁본들도 원석탁본이 아닌 석회탁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청명본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탁본 중 유일하게 탁본 과정에 대한 발문(跋文)이 있어 제작연대가 확실하다. 발문에는 1889년 청나라 종실 인사를 포함한 6인이 탁공(拓工) 이운종(李雲從)에게 탁본을 뜨게 했으며, 10여 벌의 탁본이 만들어져 한 벌의 값은 백은(白銀) 10금이었다고 적혀 있다.

임창순 선생의 아들 임세권(任世權) 안동대 교수는 “미즈다니본에는 청명본에 없는 훼손부분이 보여 청명본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즈다니본의 일부 깨어져 나간 부분은 석회가 떨어져 나간 뒤의 상태일 수 있어 원석탁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 이철희 기자 200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