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석학이 본 동북아 균형자론

미국의 대표적인 석학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와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슨 홉킨스대 교수는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여건과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균형자론은 한국의 현실성 있는 전략적 비전이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 사관을 제시했던 커밍스 교수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저서 ‘역사의 종언’으로 세계 지성계에 충격을 주었던 후쿠야마 교수는 26일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열린 세미나가 끝난 뒤 세계일보와 각각 인터뷰를 갖고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세계일보는 두 교수에게 균형자론, 한일 및 중일 갈등, 한미 관계 등에 관해 동일한 질문을 하고 두 교수의 시각을 비교한다.

커밍스 교수는 우선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가 공동 협력하는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제약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시절에는 미국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한미 간 상호 협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 핵 문제로 북미 간 갈등이 심화하면 한미 관계 역시 원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유리된 채 독자적인 힘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균형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한국의 균형자론에 대해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역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은 강대국이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한국이 그 같은 강대국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후쿠야먀 교수는 특히 “한미 동맹관계와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양립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 조약으로 맺어진 동맹국인데, 한국이 균형 유지를 위해 중간지대에 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두 교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중일 간 갈등이 북한 핵 문제 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는 북한과 미국”이라며 “이 때문에 6자회담의 나머지 참가국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커밍스 교수와 후쿠야먀 교수는 한일, 중일 갈등과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일본이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일본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중국과 일본이 재분열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모델에 따라 과거사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동북아 지역에서도 전후 유럽의 접근 방식이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 국기연 특파원 200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