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5029'가 주권 문제인 이유

지난 4월 1일 캠벨 주한미군사 참모장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모두들 방위비 분담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했다. 필자는 그게 아니라 ‘작계 5029’와‘전략적 유연성’문제 때문이라고 오마이뉴스(4월 6일자)에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인터넷 한겨레'와 KBS-2TV '시사투나잇'만 주목하고는 묻힌 듯 했다. 그러다가 한겨레신문(4월 15일자)이 ‘작계 5029’문제를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그러자 조선일보(4월 16일자)도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캠벨의 ‘폭탄성’기자회견엔 작전계획 5029문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LA타임즈도 16일자 “한국, 미 대북계획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작계 5029’를 한국정부가 거부한 것은 한·미동맹에서 가장 최근의 긴장 징후”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작계 5029’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한·미동맹에 있어 심각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1.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가

북한지역은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우리 땅인가? 헌법상으로는 그렇다. 헌법 제3조가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헌법학계의 다수설은 ‘구한말 영토의 승계이론’이나 ‘유일합법정부론’등을 내세워 북한지역을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인정해 왔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은 국제법상으로도 통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김일영 교수의 최근 논문 「북한 붕괴 시 한국군의 역할 및 한계」를 주로 참조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은 결의 112(II)를 통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TCOK)의 감시 하에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해 한국에 (통일)정부를 수립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 결의가 북한의 거부로 실행되지 못하자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채택키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의거해 남한은 5월 10일 총선거를 치르고 8월 15일 정부를 수립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유엔은 결의 195(III)를 통해 1947년 11월 14일의 유엔 결의 112(II)가 달성되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남한 정부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합법정부’라고 인정했다.”

김일영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정부는 하루 빨리 1948년 12월 12일 유엔 결의 195(III)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정부는 이것을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이러한 해석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이런 주장은 김 교수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70년대부터 리영희 선생이 외롭게 주장해 온 바다. 물론 그 때는 이런 주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그렇다면 유엔 결의의 원문을 보자.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를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으며, 한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한국의 부분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권과 관할권을 지닌 합법적인 정부(대한민국)가 수립되었다. 이 정부는 한국의 그 부분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의 자유의사의 분명한 표현이었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한 선거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유일한 그러한 정부임을 선언한다.”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물론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이동복 교수도 리영희 선생과 마찬가지의 해석을 취하고 있다.

“유엔 총회 결의도 대한민국을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가 실시된 지역에 수립된 유일합법정부’라는 것으로 그러한 총선거가 실시되지 못한 북한 지역에서의 합법정부에 관하여 공란으로 남겨두는 제한적인 것이었다.”(이동복 교수 홈페이지, 2004년 7월 26일)

우리는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 땅’이듯 ‘북한 땅도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근거는 1948년 유엔 결의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조차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작계 5029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참고로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은 전문(前文)에서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 195호(III)를 상기하여”라고 규정한다. 한·일 수교 당시 “북한의 청구권은 북한 것”이라는 근거도 역시 1948년 유엔결의였다).

2.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누가 개입할 수 있을까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현재의 한미동맹 시스템에서는 한미연합사가 공동으로 북한에 개입한다. 다국적군의 개입은 유엔 결의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상태, 예를 들어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발했을 때의 개입주체는 누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경우 대한민국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공동개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우리의 근거는 북한은 우리 땅이라는 것이고 미국은 1948년 유엔 결의에 대한 다른 해석에 의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대량 난민을 염려하며 개입할 여지도 있다. 1948년 유엔결의가 갖는 주권의 한계 때문이다.

이 문제는 통일 이후 북한에 대한 통치주체의 문제로 연결된다. 전쟁이나 급변 사태를 거쳐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대한민국이 당연히 북한 땅에 대한 통치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당위와 법적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작계5029’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정부의 주권행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작전계획이 아니라) 개념계획을 재작성하기로 합의가 끝났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필자는 정부의 입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주변국과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3. ‘작계 5029’에 깔려 있는 선제공격의 위험성

부시 행정부는 2002년 5월 '방어계획 지침'을 채택하여 기존의 양대 전쟁 전략을 ‘1-4-2-1 계획개념’으로 정식화했다. 여기서 △“1”은 미국 본토의 완전한 방어 △“4”는 4개 지역에서의 전진억제 △“2”는 2개 지역전장에서의 “신속한 승리” △“1”은 1개 전장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2”는 이라크와 북한을 지칭한다.

미국은 이 전략을 통해 △ 정보 및 군사결정의 우위 △정밀타격 △군사력 신속투사 △전술적 신축성 △군대 방어력 제고 △지상, 해상 공중 및 우주 전장 지배능력 등을 추구하며,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미군 재배치 및 미군기지 재조정 작업도 바로 이 ‘1-4-2-1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이와 함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PSI의 명시적 목적은 “(대량살상무기) 의혹이 있는 화물을 적재한 항공기 및 선박을 탐색하고 불법무기 또는 이와 관련된 미사일 기술을 압류하는 데 있는 것” 이다. 이는 9·11 테러사태 이후 모든 가능한 수단 및 방법을 동원, 국제 테러에 연계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미국의 적극적인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이 그 주된 대상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예방적 선제공격으로 전쟁발발을 억제하고, 비대칭적 위험으로부터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예방적 선제공격”에 필수적인 “임박성”의 개념조차 국제법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는 북한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지역에 급변사태 발생시 ‘작계 5029’에 따라 “예방적 차원”에서의 군사개입이 한·미 연합사령부 공동이어야 하는지, 한국 단독이어야 하는지는 결국은 주권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명시적 공동의 작전계획 마련은 불필요한 자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이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17일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위험한 전쟁 계획” 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른 해석을 낳는다.

그리너트 미 7함대 사령관이 17일(현지시간) 미 군사전문지 <성조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상당히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북한이 붕괴하거나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면 미 7함대는 북한에 투입돼(go in) 질서 회복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또 “(북한이 붕괴하거나 불안정하게 되면) 아마도 피난민들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들은 북한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들어오려 하거나 바다로 향할 것이고 이는 한국에 또 다른 문제“라고 언급해 미 7함대 투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현돈 국방부 공보관은 19일 이에 대해 “작계 5029가 발전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복안을 말한 것으로 보이나 작계 5029가 중단됐으므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4. 주권 이후의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미국이 한국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상황이 곧 한미동맹을 해치는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오직 미국 주도에 의한 수직적 또는 획일적 관계를 최상의 한미동맹으로 바라보고, 일부 언론에서 한·미간의 이견을 보도할 때마다 이를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강변하는 시각은 이런 군사전략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나라당에게 묻는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에서는 그토록 북한 땅에 대한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한미동맹 논의에서는 왜 주권을 강조하지 않는 걸까?

NSC는 지난 한 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하는 상임위를 59회나 개최해 북핵, 주한미군 조정, 이라크 파병 등 핵심 안보현안을 다뤘다. 하지만 이런 NSC가 작계5029에 대해서 대단히 안이한 대처방식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첫째로, NSC는 2003년에 이미 ‘작계 5029’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대통령에게는 올 1월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이를 보고했다.

둘째, 보고나 문제제기 방식에서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NSC 고위관계자의 전략적 모호성이라기보다는 태만, 또는 부주의가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실무진의 문제제기에 의해서야 비로소 내부적으로 공론화와 보고의 과정을 거쳤다는 정보가 있다.

셋째, 한미는 1999년부터 개입여부를 놓고 논쟁을 거듭해오다 2003년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서 별도의 작전계획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군의 관여를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야 미국으로서는 자신들의 기대 또는 신뢰에 반하는 외교적 의사 표시가 한국으로부터 통보된 것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작계 5029’문제에 대한 NSC의 ‘안이한 현실인식’ 또는 ‘판단착오’ 또는 ‘예지능력의 결여’가 현재 갈등의 주요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 마디로 지난 일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 논의나 조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권사항’이라는 우리의 입장정리로 ‘작계5029’문제는 끝이 났을까? ‘작계5029’만의 문제는 끝났을 수 있다. 하지만 ‘급변 사태에 대한 대응’의 주체문제는 남아있다. 그리고 그 ‘대응’을 둘러 싼 ‘주권’ 논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는 갈등이나 논쟁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진정한 동맹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진실한 논의와 상호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 땅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주권과 미국이 생각하는 주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필자의 입장은 역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한반도 전역에 대한 주권은 대한민국이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 최재천 기자 2005-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