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수난시대… 청와대는 타박하고 한미 관계 삐걱대고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가 봅니다."

19일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문제가 자꾸 꼬여만 간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실제 북핵 문제는 도통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됐다던 한.미 관계에서도 잇따라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여기에다 외교정책을 놓고 청와대와 엇박자를 드러내며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연일 터지는 현안을 막기에도 바쁜 판에 ▶시어머니 청와대▶말 안 듣는 북한▶의심하는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3중고를 겪는 모양새다.

◆ "외교부는 개혁의 사각지대" = 외교부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은 3월 초부터 심심찮게 불거졌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대일 관계에 있어서 할 말은 강하게 하라는 데도 외교부 사람들은 꼭 토를 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는 별도로 청와대 주변에선 "외교부는 개혁의 사각지대"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17일엔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파' 발언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외교부에 집중됐다. 외교부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전문 외교관은 대통령의 말씀이 곧 지침이다. 친미.반미란 너무 단순한 도식이다. 외교관에겐 오직 국익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왕보다 더 왕당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루이 14세 때의 속담을 인용해 지나친 친미 자세를 경계했다.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명인 셈이다.

19일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그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외교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며, 최고의 외교관도 대통령"이라고 했다.

◆ "북, 해도 너무한다" =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북핵 위기정국은 악화 일로에 있다. 급기야 북한은 최근 영변 원자로의 가동마저 중단했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한 당국자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 오죽하면 노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서도 얼굴을 붉힐 때는 붉히겠다'고 했겠느냐"며 북한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문제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LA 발언부터 우리가 이 정도까지 했으면 북한도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여전히 미국과의 직접대화만 요구하고 있으니…"라며 안타까워했다.

◆ "균형자 오해 말라" = 한.미 관계도 복잡하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후유증과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미국에 설명하기 위해 김숙 외교부 북미국장이 지난주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미 행정부.의회.학계 인사들에게 "밸런서(balancer)라는 단어를 절대 오해하지 마라. 세력균형자로 나가겠다는 게 절대 아니다. 평화와 번영의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기댈 곳은 미국밖에 없다는 점을 미국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한.미 간 실무라인엔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다음주 칠레에서 열리는 민주주의공동체(CD) 각료회의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오해를 불식시킬 방침이다.

◆ 억울함 속 자성론도 = 현재 외교부 내에는 "왜 정치권과 학계, 일부 언론이 외교부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느냐"는 분위기가 폭넓게 퍼져 있다.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반면 지난 연말 노 대통령이 외교부를 칭찬한 뒤 자만했던 것은 아니냐는 자성론도 들린다. "말로는 '다 괜찮다. 문제없다'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풀리는 현안은 없다""실적없이 말로만 하는 외교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내부 지적도 제기된다. 반 장관은 "외교가 외교부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국민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때"라고 했다.

(중앙일보 / 박신홍.김형수 기자 2005-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