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한국은 일본어 씁니까, 중국어 씁니까?"

한-독 교류 122년... 독일서 한국은 여전히 '낯선 땅'

▲ 한국의 해 행사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팸플릿.
ⓒ2005 강구섭
베를린에 고구려 고분 벽화가 전시되고,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전통 취타대가 브란덴부르그 문을 통과해 시내를 행진한다?

한독 교류 122년을 맞이하는 올해 독일에서는 '한국의 날'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의 문화올림픽이라고 지칭되는 10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과 이에 앞서 9월 베를린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주간의 '주빈국'으로 선정된 우리나라는 한국의 문화, 예술, 역사, 전통을 알리는 300여개의 크고 작은 행사를 독일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열고 있다.

최근 동해의 일본해 표기나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 한일간의 갈등으로 국제사회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런 행사는 매우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한국과의 교류 122년을 맞이하는 독일에서도 한국을 너무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야?"

대우, 현대 자동차, 북한 핵, 북한=악의축, 한국전쟁, 김일성과 김정일….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매우 낯선 곳이다. 몇 년 전 주독 한국대사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한국을 '6·25 전쟁' '남북 분단' '북한 핵' '월드컵' 등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베를린 건설현장 벽에 붙어있는 한국 기업광고. 마리아씨는 독일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한국산 휴대폰이 한국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05 강구섭
서울에서 월드컵 등 국제 행사를 치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어디서 왔냐, 일본 or 중국?"이라는 말은 독일 속의 한국인들에게 아직까지도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일본어를 쓰냐, 중국어를 쓰냐"는 질문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1950년대 후반, 유학을 온 후 독일에 정착해 12년 간 함부르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한 바 있는 태용운 선생은 과거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일본,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독일 내 다양한 계층에 전통,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알려져 있지만 한국은 그저 이름만 알려져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국인 교포 2세 남편을 둔 독일인 마리아(28)씨 또한 한국은 독일인들이 여행지로 즐겨 찾는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보다도 덜 알려진, 아직은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낯선 나라인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마리아씨는 "월드컵 등의 국제 행사를 통해 한국이 알려졌고 근래 한국 영화가 독일에 소개되는 등 조금씩 한국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의 문화 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신문에, 푸틴은 방송에

최근 독일 TV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반대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반일시위를 연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전에 있었던 독도문제나 교과서 왜곡과 관련된 한-일간의 갈등에 대한 기사가 일부 종이신문에서만 몇 번 다뤄졌던 것에 비해 중-일 갈등은 연일 TV 뉴스에서 주요하게 보도되고 있다.

한-일, 중-일 간의 갈등을 관심 있게 지켜본 독일인 크뤼거(24·일본학 전공)는 "중-일 갈등은 자세히 보도되고 있는 반면 한-일 갈등은 중-일 갈등을 보도하면서 부가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 관련 언론 보도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 직전인 9일부터 14일까지 독일의 신문매체들은 30여 개의 관련기사를 내보내며 국빈을 '접대'했지만 TV 매체에서는 이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일 전파를 탄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 노 대통령 국빈방문 기간 동안 베를린 곳곳에는 독일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
ⓒ2005 강구섭
한국학과는 2개, 일본학과는 20개

이러한 상황은 '한국통'을 양성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의 전반적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독일대학의 한국학 개설 현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현재 한국학과가 정식 개설된 대학은 보훔, 함부르크 등 단 두 곳이다. 본, 튀빙겐 대학에 부전공 과정이 개설돼 있긴 하지만 18개 대학에 정식으로 학과가 개설돼 40여명의 교수와 5천여명의 학생이 등록해 있는 일본학, 20여개 대학에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중국학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대사관은 한국 관련 자료를 독일대학에 지속적으로 보급하는 등 한국학과 증설 방안을 다각도에서 모색중이다. 특히 오는 2005년 가을 신학기부터 베를린 자유대에 한국학과가 개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측의 계획은 일단 대학내에 한국학 강의를 개설한 후 이를 점차 정식학과로 키워나가겠다는 것. 그러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독일 대학들이 기존의 일부 학과마저 폐지를 추진하는 형국이라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한국 홍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 작년 독일 전역에서 상영돼 좋은 반응을 얻었던 한국영화 <올드보이>.
ⓒ2005 강구섭
"언론에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내용을 방송하도록 하는데 신경을 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이 한국의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도록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교환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한국문화센터를 독일에 여는 것이나, 여행지로서 한국에 대한 광고방송을 보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터키, 그리스, 사이프러스 등이 이런 광고를 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소냐 그림(26· 정치학 박사과정)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올해 한국의 날 행사는 굉장히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가 사람들에게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한의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남한과 북한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나도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남한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한국을 알리는 광고, 홍보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독일 통일 사례를 한국을 홍보하는데 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율리아 크뤼거(24·일본학 전공)

"한국에 대해 좀 많은 것이 알려지려면 아무래도 언론에 한국에 대한 것이 많이 방영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갈 만한 여행지로 한국을 많이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헬머 하이데(27·사회학 전공)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만난 몇몇 학생들이 제안하는 한국 홍보방법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를 적절히 이용할 것, 연간 3천만 명이 넘는 독일인 해외여행객을 유인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독 한국대사관의 문화, 홍보분야 담당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독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작업이 미진했다며 앞으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 전통 예술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소개하는 일이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이룩한 한국의 경제 성장 등은 국제사회에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문화적인 측면은 상대적으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

지난 62년 독일에 온 후 40년 이상 독일생활을 해온 재독교포 손아무개씨는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국이 스스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씨는 한국에 대한 좋은 내용이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소개되어도 국회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TV에 소개되고 나면 좋은 이미지는 더이상 기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부정적인 모습도 방송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경우, 부정적인 내용의 영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5년 독일 '한국의 해' 어떤 행사 열리나

2005년 한해 동안 독일 전역에서 총 300여개의 행사가 열린다. 주독 한국대사관측은 독일에서 한국관련 행사를 개최할 경우 독일 현지 언론에 행사를 홍보할 수 있도록 대사관 측과 사전에 협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 1월~2월(개최 도시, 행사명 및 내용) - 베를린, '오늘의 한국 영화 예술', 한국 영화 17편 상영
△ 2월 - 베를린, '베를린 국제영화제', 임권택 감독 작품 회고전
△ 3월- 베를린, '라이프찌히,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 '라이프찌히 국제도서전', 한국관 개설 / 베를린, '박경리 토지 III 독일어판 출판 기념회'
△ 4월- 베를린, 프랑크프르트, 드레스덴, 한독 산학연 정보, 인적, 기술 교류, 투자유치 등 산업기술 협력 및 기술공동 개발을 위한 미팅 / 드레스덴, 드레스덴 오페라단 비상임 지휘자 정명훈 음악회.
△ 5월 - 함부르크, 함부르크 개항 816주년 기념 "한국 페스티벌" / 본, 국제한국학 심포지움
△ 6월 - 노트라인베스트팔렌주, 한독 프로축구팀 친선경기 및 철강세미나 / 포철 축구단, 독일 레버쿠젠 축구단 친선경기 및 양독 철강협회 세미나 / 함부르크, 킬, 해군 순항함대 독일 항구도시 방문
△ 7월 - 두이스브룩-에센, 한국 경제 세미나, 한국 경제 현황 설명 및 한 독간 경협 강화 방안 모색
베를린, 오채회 동양화전, 여류동양화가 5인 전시(정은숙, 정미혜, 최연정, 박희명, 홍미림)
△ 8월 - 베를린, 장귀순/Harro Jachb 2인전, 재독 화가 장귀순과 Harro Jacob 베를린 예술대 교수 2인전
△ 9월 - 베를린, 베를린 아시아 태평양주간 주빈국 행사 / 베를린, 마인쯔 등, 국립극장 'Korea Fantisy' 공연 / 베를린, 베를린 거리 "Seoul" 광장 명명식 /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공연 / 윤이상 음악회 "변화, 동아시아..."
△ 10월 -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박람회 주빈국 행사 / 한국 출판의 역사, 현존하는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부터 고려대장경 등 유구한 한국의 출판 역사를 집중 소개 / 한국문학 순회 프로그램, 한국 문학작품 낭독회 개최 / 종묘제례악, 우리나라의 전통 연희 중 한국전통 종묘제례악과 궁중 ritual 공연 소개

(오마이뉴스 / 강구섭 기자 200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