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 불퇴’

최고인민회의서 핵무기고 증설 천명 계획… 내부적 최후 통지 의미

“최고인민회의서 핵무기고 증대 실천 결정”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3차회의에서 우리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지지와, 핵무기고 증대 방침을 실천할 데 대한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런 회의 내용을 대외에 공개할 것이다.”

서울과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 따르면 북한의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최근 미국 관리들과의 비밀회동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당초 3월 4일 열릴 예정이던 최고인민회의가 이런 결정을 하기 위해 연기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북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계속되는 한 북한은 자위 차원에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고인민회의의 핵무기고 증대 결정 방침을 통지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예산 심의와 각종 법령을 승인하는 역할만 주로 해온 최고인민회의가 핵문제와 관련한 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내부 사정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온 북한이 고위인사를 통해 장래의 조치를 사전 통보한 것은 더더구나 없던 일이다.

최고인민회의는 형식적으로는 인민의 대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최고인민회의의 지지 결정은 핵무기 보유 선언에 대한 행정적 최후 절차다. 외무성 성명을 통한 핵무기 보유선언이 대외적 통지라면 최고인민회의의 지지 결정은 내부적 통지가 되는 셈이다. 북한은 이제 핵보유 사실을 철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핵무기고 증대 방침에 대한 결정은 한층 심각하다. 핵무기를 늘리기 위한 실천적 움직임이 행정 및 당 조직을 통해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과 6자회담의 군축 의제 포함 주장에 이어 또다른 ‘폭탄선언’을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의 1차 북핵위기를 주도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 강경책으로 일관한 점을 감안하면 한 차석대사의 말은 실현 가능성이 낮지 않다.

우리 정부도 최고인민회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당초 지난 3월 4일 개최예정이던 최고인민회의가 연기된 것과 관련해 “최고인민회의 연기가 핵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번 회의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그와 관련한 가시적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의 반응이다. 북한이 6자회담 참석을 거부하고 초강경 입장을 계속하는 것을 언제까지고 무시할 수만은 없으며,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강경파 사이에서는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미국 내에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구하는 의견이 여전히 많지만 군사적 대응을 할 때가 됐다는 견해가 국방부 관리들을 중심으로 무게있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한 차석대사 발언대로 핵무기고 증대를 결정하고, 이의 실천에 들어간다면 미국은 군사적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르면 4월 셋째 주에 미국이 그같은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첩보도 있다.

그 계획에는 일본과 태평양에 전략무기를 증강배치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은 작년 중반부터 일본에 2척의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등을 전진배치한 바 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미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비행금지구역(레드 존) 설정과 대량살상무기확대방지구상(PSI) 활동의 대폭 증대 등의 방침을 강구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PSI 활동 증대는 북한이 전쟁선포로 간주할 수 있는 엄중한 조치다.

그는 또 주한미군 고위인사가 최근 주한미군 병원 관계자들을 불러 “언제라도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의사와 간호사들이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또다시 강하게 제기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북한과 미국의 강경 방침이 맞부딪치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이달 또는 내달 안에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쯤 되면 북핵문제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부는 상대적으로 유화적 조치가 되는 셈이다.

중국의 고위관리들도 북·미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시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외교부 고위관리는 공개석상에서 “두 나라간 군사 충돌이 있을 경우 중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협상용인가

물론 최고인민회의의 핵무기고 증대 방침에 대한 추인을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와 6자회담에서의 협상력 강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10일의 핵보유 선언에 이어 지난 3월 31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가 핵무기 보유국이 된 만큼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으로 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를 꾀하면서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것을 내세워 6자회담 불참명분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이미 부시 미 행정부와는 대화를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대미 외교 공세를 통해 그럭저럭 시간을 끌려고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북핵문제의 또 하나의 관건은 한반도 정세의 이상기류다. 한국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한·중간 군사교류 움직임 등에 대해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러잖아도 소원한 한·미간 거리가 더욱 멀어지는 조짐을 보이는가 하면 북핵 공조체제를 이뤄온 한국과 일본이 독도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최근 이라크 주둔 중인 자이툰부대 병력 조정을 하면서 274명을 줄인다고 밝히자 미 국방부 관계자가 주미한국대사관측에 사전조율이 없었다며 감정 섞인 항의를 한 것이 그 증거다.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이 방위비 분담금이 줄어 운영비를 절감하는 차원에서 주한미군에서 일해온 한국인 근로자 1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한·미·일 간의 불화 조짐은 3국이 균열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줄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정세와 북핵문제 해결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고 우려했다.

북핵문제가 심각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유일한 희망적 메시지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올 상반기 북한 방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거듭 천명해온 후주석이 어떤 방식으로든 김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북핵 문제의 해결은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위기 심화는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뉴스메이커 / 김경은 기자 2005-4-15)